Languages
가
Korean

A
English
웹진 山:門
2026년 가을호
ALL
CHOICE
REVIEW
FOCUS
PEOPLE
COLUMN
아버지 고 유준열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소리의 세계에 들어선 유태평양은 여섯 살에 세 시간이 넘는 <흥보가>를 완창하며 최연소 완창자로 이름을 알렸다. 일찌감치 ‘소리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10년 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며 또 한 번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이후 지난 10년간 창극단의 중심 단원으로 활약하며 다양한 서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온 국립창극단의 변화와 전성기를 함께했다.유태평양은 조통달, 성창순 명창을 사사하며 정통 소리꾼의 길을 걸어온 한편, 어린 시절 아프리카 타악을 배우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학하는 등 일찍부터 낯선 음악과 예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판소리 사설과 소리를 재즈의 어법으로 풀어낸 <그루브 in 판소리>는 이러한 유태평양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오랜 시간 레퍼토리로 이어져 최근까지도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전통과 다른 음악적 언어가 만났을 때 판소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탐색해 온 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전통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흔히 원형을 보전하는 일과 동시대적 언어로 변형하고 실험하는 일로 나뉜다. 유태평양은 그 두 길을 모두 걸어온 창작자다. 판소리의 원형과 미학을 충실히 익히고 전승하는 동시에, 재즈와 다른 장르의 음악, 창극과 새로운 무대 형식 속에서 소리가 지닌 가능성을 꾸준히 시험해왔다. 그의 작업이 쌓일수록 보전과 실험은 서로 분리된 두 방향이라기보다 하나의 창작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기 시작했다.10년간의 국립창극단 생활을 마치고 올해 독립한 그는 여우락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거쳐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새로운 브랜딩 공연 ‘소리제전’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2026년 <소리제전: 소리연애(戀愛)>는 그가 오랫동안 이어온 판소리의 전승과 확장, 보전과 실험의 경험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무대다. 유태평양은 “어쩌면 그동안 해온 작업들이 이번 작업을 하기 위한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그가 여러 장르와 형식으로 소리를 확장해 온 끝에 다시 바라본 ‘소리의 원형’은 무엇일까. 그 원형에서 출발해 <소리제전: 소리연애>에서 새롭게 펼쳐 보이고자 한 소리는 어떤 모습일까.  연극성을 강조한 판소리​- 국립창극단을 나와 독립한 해에 <소리제전>의 예술감독을 맡게 됐습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창극단을 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나름대로 방향을 정해놓고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실연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다른 실연자들을 위한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서울돈화문국악당이라는 공간이 중요했어요. 자연음향을 지향하는 공연장이고, 무대 형태도 옛날의 마당과 닮아 있잖아요. 저에게 돈화문국악당은 전통이나 우리의 원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곳에서 대단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덧붙이기보다 오히려 원형에서 출발해보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원형 안에서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판소리의 요소를 다시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 판소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요소는 무엇인가요?​“판소리와 창극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특히 완창 판소리는 아무래도 소리에 집중합니다. 소리꾼의 음악적 역량이 가장 중요하고, 연기나 발림 같은 요소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죠. 반대로 창극은 연극적 요소나 몸짓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어떤 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판소리에는 창극에는 없는 굉장한 장점이 있어요.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1인 다역’입니다. 그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기적 요소는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판소리의 발림과 연극성을 조금 더 파고들려고 합니다. 전통적인 완창 공연에서는 소리꾼과 고수만 참여하지만 이번에는 연출가가 함께합니다. 판소리 각 대목에서 어디를 바라볼 것인지, 왜 그곳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의미로 손을 움직이는지를 제3자의 눈으로 함께 살펴보는 거죠. 대신 소리 자체는 전통 판소리를 최대한 지키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전승받고 배운 소리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어요.” - 판소리를 모노드라마처럼 연극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조금 다릅니다. 서양 연극에서 완전히 그 인물이 되는 방식과 판소리의 연기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창극에서 심봉사를 맡으면 심봉사의 감정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판소리에서는 ‘유태평양이 보여주는 심봉사’라는 한 겹의 층이 존재해요. 소리꾼은 자신을 일종의 해설자나 번역자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심봉사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심봉사는 이렇게 살았어요”라고 이야기하다가 잠깐 심봉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거죠. 저는 분명히 ‘판소리 안에서만 가능한 연기’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소리꾼과 연출가가 함께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작업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 연출가가 필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겠군요.“제가 완창을 하면서 “내가 왜 거기에서 저 손을 들었지?”, “왜 저 말을 굳이 했지?”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판소리 발림에는 음악적인 종지 때문에 관습적으로 하는 동작도 많아요. 스승에게 전승받은 동작도 있고, 공연 중 관객의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연기도 있고요. 그것이 잘 맞으면 굉장히 좋은 효과가 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공연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객관적으로 봐주는 제3자의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리꾼들이 연출가에게 바라는 것도 사실 단순해요. ‘의미 없는 발림과 의미 없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왜 이 동작을 하고 왜 여기로 움직이는지 명분을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즉흥성도 마찬가지예요. 창극단에서 10년 동안 여러 연출가와 작업하면서 제가 절실하게 배운 것이 ‘연습된 애드리브’와 준비되지 않은 애드리브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짜인 판 안에서의 즉흥성이 있어야 합니다. 판소리에도 그런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소리꾼의 역량을 오히려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존과 실험의 만남- 이번 <소리제전: 소리연애>는 전통예술의 다양한 공연 형태에서 어디쯤 위치한다고 생각하나요?“저는 전통예술에는 크게 두 층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보존이고 다른 하나는 실험입니다. 전승받은 그대로를 무대에서 연행하는 것이 한쪽 끝이라면, 기존의 틀을 거의 해체하고 그 안의 재료만 가지고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다른 한쪽 끝일 겁니다. 저는 그 중간 어딘가를 공략하고 싶었어요. 전통의 것을 가져오지만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조립하는 거죠. 농담처럼 표현하면 ‘조선시대의 그릇을 가져와 그 위에 피자를 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릇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맛은 조금 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장치나 영상 같은 외부적인 요소를 최대한 절제했습니다. <소리제전: 소리연애>에서 소개하는 세 작품이 기본적으로 같은 세트를 사용하고, 소품도 최소화했어요. 판소리는 결국 소리꾼과 고수가 빛나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판소리가 대단한 세트도 조명도 없이 마당에서 공연됐습니다. 부채 하나를 든 소리꾼과 고수가 사람들을 몇 시간씩 붙들어 놓았어요. 그들이 가만히 서서 소리만 했을까? 분명 연기도 하고 몸짓도 하고 관객들과 끊임없이 교감했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원초적인 힘을 지금의 관객에게 다시 보여주려고 합니다.”  - 과거의 관객과 오늘날의 관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형식으로 현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옛날의 공연자를 그대로 데려와 지금 공연한다면 당연히 시대적인 차이가 크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나 옛날의 재료를 가지고 지금을 사는 창작자들이 작업한다면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국립창극단에서 작업하면서 확인한 것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사설의 편집입니다. 같은 판소리 사설이라도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도 같은 장면을 어디까지 프레임 안에 넣고 어디를 잘라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판소리 역시 전체 사설 가운데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관점으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주제도, 관객이 느끼는 흥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출가와 함께 사설을 어떻게 편집하고 배열할 것인지, 또 어떤 몸짓과 방식으로 소리를 전달할 것인지에 집중하려 합니다.” - 이번에 심청가, 춘향가, 적벽가를 선택한 것도 그런 가능성 때문인가요?“처음부터 그 세 바탕을 생각했습니다. 흥보가와 수궁가는 원래도 굉장히 재미있는 판소리예요. 그래서 오히려 너무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연극적인 요소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심청가와 춘향가, 적벽가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적벽가는 창극으로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작품이지만 저는 어릴 때 박동진 선생님의 <적벽가> 완창 영상을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창극으로 만들기는 어려워도 한 명이 하는 판소리로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기억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참여하는 소리꾼을 정할 때도 소리를 잘하고 완창 경험이 있는 것은 기본이지만, 연극적인 공연을 소화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봤습니다. 그리고 창극 경험이 있는 연출가들을 연결했어요. 판소리를 연극으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자체가 지닌 연극성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제목이 <소리제전: 소리연애>입니다. ‘연애’라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아주 직관적으로 떠오른 제목이에요. ‘연기와 사랑에 빠진 소리’라는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소리제전> 자체가 하나의 잔치이고 연회였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있었고요. 한자로 풀었을 때 연기적인 요소와 사랑이라는 의미가 함께 연결되는, 여러 겹의 뜻이 들어갔으면 했습니다.” - 이번 공연을 통해 가장 얻고 싶은 성과는 무엇인가요?“하나의 방식을 제시하는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관객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오히려 앞으로 판소리를 이어갈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지금까지 완창은 한 명의 소리꾼이 준비해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완창도 하나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들듯 더 많은 공을 들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한 명이어도 그 한 편의 공연을 위해 연출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공연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소리꾼 개인의 능력도 더욱 돋보일 수 있습니다. 신재효 선생의 단편가사 <광대가>에는 광대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오늘날 배우에게 요구되는 덕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득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대 위에 존재하는지,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전달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이미 그 시대에도 중요한 문제였던 겁니다. 오늘의 광대들은 그 네 가지를 얼마나 잘 이어가고 있었을까. 이번 공연이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판소리 완창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작은 출발점이 되어 새로운 양식으로 계속 발전해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1 / 7
지난 8월 18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는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10주년 기념 포럼’이 진행되었다. 돈화문국악당 대관단체와 전통예술 분야 종사자, 국악분야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한 기념 포럼에서는 국악 전용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운영 방향과 주요 사업 현황 등을 공유하는 한편, 공공극장으로서 강화해야 할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역할과 과제를 살폈다. 공연장을 매개로 한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공공극장의 개방성 확대를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한 이번 포럼은 공연장 위탁운영사인 ㈜컬처브릿지가 주최했다. 내실 있는 국악 전용 공연장의 위상 강화2016년 9월 1일에 개관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서울시가 2014년에 발표한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에 의거하여 조성된 앵커 시설로, 이 종합계획은 4대 분야 32개 세부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서울시 국악 정책을 대표하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은 한옥의 아름다움 속에서 국악 본연의 소리 구현을 위한 자연음향 환경을 갖춘 140석 규모의 장르 특화 인프라로 출발한 셈이다. 현재 전통 분야의 예술가나 민간단체의 창작 활성화를 위하여 공연장 대관과 공동기획, 자체 기획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연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내실 있는 창작 플랫폼으로써, 공연과 교육체험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개관 당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매력적인 국악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면, 지금은 공연관람객 개발과 함께 전통예술 분야 예술가와 종사자가 필요로 하는 현장의 수요 충족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서울돈화문국악당을 이용한 예술가를 비롯한 운영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경력 초기 예술가(신진예술가)에게 활동 기반과 전문성 구축을 돕는 플랫폼으로 해당 공연장을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다른 공연장보다 저렴하게 책정한 대관료를 꼽을 수도 있지만, 국악당에 속한 전문 스태프의 세심한 무대기술 및 홍보 지원, 쾌적한 관람 환경 제공은 국악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위상을 다지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고 본다. 여기에 국악 활성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기관과의 협력 체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단순히 대관 공연장의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공연의 유통이나 창작자의 경력 형성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예산 운용과 지원 규모의 한계는 있지만, 공연장을 매개로 공간·제작·홍보 지원을 결합한 간접지원 체계를 수립해 예술가의 창작 활성 기반을 충실히 해가는 중이다. 현장 종사자와 파트너쉽을 가질 수 있는 공연장 신뢰도를 쌓고 창작의 동기를 제공하는 전문예술 플랫폼으로써 현장 종사자가 인식한다는 것은 서울돈화문국악당 운영 10년의 성과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다음 과제가 뒤따를 것이다.포럼 참석자는 국악당의 운영 포지셔닝과 차별화된 브랜드 구축에 관해서는 향후에도 지속적인 노력과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의 주요 문화재・관광지가 밀집해 있는 장소적 특성을 갖춘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경쟁력이 높다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현장 종사자가 원하는 국악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운영 강화는 계속해가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공연장 소재지의 특성상 공연 활동을 위한 악기나 장치 등을 운반하는 주차장의 보강 등 편의적인 여건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대관 비수기를 활용하여 이미 활동 중인 예술가 외에도 전공 학생이나 아마추어 등의 잠재 예술가도 공연장을 이용할 수 있는 경로 마련이나 이들의 공연장 진입 동기를 제공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현장에 부응하는 공연장의 역할 찾기서울돈화문국악당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의견 청취를 바란 주최 측은 그간 국악당의 정체성을 성급히 정의하기보다는 전통성과 동시대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술 현장의 다양한 시도와 흐름을 주시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국악당의 다음 역할과 과제를 모색하면서도 예술 현장에서 원하는 공연장의 역할을 찾기 위함이다. 또한,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10년을 기념하는 것과 맞물려 운영사는 현장의 니즈 파악을 통해 국악 전용 공연장의 위상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문화나눔이나 약자와의 동행 정책과 연계한 공공성 강화에 부응하는 것도 국악당의 주요한 운영 목적 중에 하나라는 것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국악당 콘텐츠의 품질 향상을 위한 현장의 관심과 제안에 귀 기울여 관객의 인지도가 높은 ‘산조대전’, ‘일소당음악회’와 같은 기존 대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고도화할 것이며, 프로그램별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 모색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오는 10월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만나게 될 ‘소리제전’에 유태평양 예술감독이 참여하게 된 배경 역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대표할 만한 신규 프로그램을 발굴하기 위함이라는 것. 바로 전통성과 동시대성에 관한 고민과 질문을 이어가면서도 국악 전용 공연장을 매개로 예술생태계의 기반 마련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주체와의 만남과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을 강조했다.주최 측은 올해 전통예술 분야의 차세대 기획자나 프로듀서를 양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나 향후 장학재단과 연계한 기획 인턴십 도입, 공연장을 매개로 하는 현장 실습 프로그램 마련 등을 통한 전문인력 육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공연장 간의 긴밀한 협력 체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며, 현재 국악당의 협력 주체로 참여하는 대상의 확대 또한 필요하다. 전통 분야의 활성을 위한 예술 현장과 시민-지역-학교-기업-기관을 잇는 사회적·문화적 연결고리는 계속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지금처럼 계속 현장의 지지와 신뢰를 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번 포럼은 이러한 고민의 답을 찾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2 / 7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다섯 여섯 알? 완두콩 두 알이 딱 붙어서아니, 완두콩 한 알이 요상하게 벌어져서 어찌 보면 눈사람 같고 저찌 보면 오뚜기 같다.콩콩 튀지를 못하고 떼굴떼굴 구르지 못해 코공, 코공, 뒤뚱뒤뚱 걸어간다.❞ 어떤 언어들은 그 자체만으로 풍성해지는 말맛이 있다. 특히나 공연 언어를 창작하고,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주요 상징이 되는 캐릭터를 창조하거나, 무형의 오브제에 상상력을 덧붙일 때도, 움직임의 흐름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리듬과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된다.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신작 <코공> 역시, 제목이 주는 편안함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리듬감이 있다. 그것은 몸짓과 소리, 재담을 중심으로 전통 연희의 흥미로움을 발견해 왔던 이들의 언어와 닮았다.  연희적 몸짓으로 만나는, 코와 콩의 여정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신작 <코공>의 출발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정운이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출발했지만,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서로 가까운 존재들 사이의 관계로 이야기가 확장됐다. 그런 관계의 갈등과 감정, 관계의 변화를 전통 연희의 움직임과 장단을 중심으로 공연적 상상력을 더했다. 하지만, 작가적 관점과 이야기의 구성이 전부 공연으로 무대화는 되는 것은 아니다. <코공>이라는 또 다른 형식적 시도를 가능케 했던 과정에는 지난여름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5주간 진행됐던 연희 체험 프로그램 ‘연희 모험 극장’이 공연 확장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저희가 서울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여름에 공공 프로그램으로 ‘연희 모험 극장’을 진행했는데, 탈춤을 주제로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이번 작품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어요. 당시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름이 가진 의미와 현재의 상태를 ‘장단과 반복되는 몸짓’으로 시각화해 보는 시도였어요. 아이와 부모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만의 탈춤을 완성해 내는 모습을 보며, ‘연희적 신체 언어’가 가진 강력한 소통력과 내면 표현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어요.<코공>은 그 경험을 한 단계 확장한 작품이에요. 탈이나 거창한 장치에 의존하기보다, ‘콩’이라는 특수한 정체성과 관계 속에서 겪는 감정의 상태, 갈등의 파동을 배우들의 독창적인 탈춤적 움직임과 장단으로 시각화해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 연출 김정운  인간이 아닌, 그렇다고 사물도 아닌, 특수한 정체성을 가진 ‘콩’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전통 연희의 몸짓이 가진 강력한 소통력과 내적 표현의 가능성으로 접근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기저에는 자신만의 탈춤을 만들어가던 참여자들의 모습에서 발견되었다. 연희극에서 문법처럼 필요한 순간에 활용되는 춤과 움직임이 아니라, 깊은 언어와 감정을 몸짓 자체로 표현해 보는 것, 전통 연희가 특정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개인의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 언어가 될 수 있는가, 광대생각의 또 다른 도전이다. 문제는 이를 표현하는 배우들이다. 콩을? 콩들의 관계를? 작품의 초기 기획 단계에서 주요 표현 방식을 오브제로 생각했던 이유도 이러한 고민 때문이었다. ❝너무 다른 세계니까요. 처음에 오브제로 상상했던 것도 ‘이건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관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콩은 자연물이기도 하고, 인간과는 다른 규칙과 법칙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오브제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이것을 연희자들이 몸으로 해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죠.❞ - 작가, 연출 김정운❝우려스러웠던 것은 단순히 콩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콩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콩이라는 생명체는 어떤 감정을 가질까?, 그 감정을 다시 콩의 몸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더 친한 관계일수록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정들이 있고, 표현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고, 표현이 잘못되어 전달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코와 공의 여정을 보면서 서로 가깝지만 어떨 때는 멀게 느껴지고, 또 너무 멀리 있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는데, 그 바탕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통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것, 그런 것들이 작품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아요.❞ - 대표 선영욱(코 役)  연희의 개방성과 유동성,무대 위 그려진 또 다른 마당<코공>이 무대화되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흥미로움은 소리와 재담의 만남이다. 재담을 ‘장단 안에서 말해지는 선율 있고 음률 있는 말하기’라고 정의하고 있는 광대생각은 재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굉장히 특화된 연희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공연 역시, 전통 장단과 재담을 어떻게 살리고 붙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양악기인 전자기타와 베이스, 카혼을 활용한다. 서양의 선율 악기로 전통 장단을 연주하고, 그것을 재담과 만나게 하는 시도들이 어떤 정서로 확장되는가도 주목해 볼만한 요소다.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무대 공간이다. <코공>은 무대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배우와 함께 움직이는 공간으로 상상했다. 콩들의 움직임에 따라 장소 이동이 많은 작품의 특성 때문에 연희자의 호흡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공간들을 고민했다. 지난해 광대생각의 신작 <열매달>에서 함께 작업했던 신승렬 감독이 이번에도 참여했다. ❝연극과 전통연희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서 무대의 역할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신승렬 감독님과의 협업은 전통연희가 벌어지는 판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극장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코공>은 이끼밭, 갈잎밭, 하늘끝 벼랑, 꽃밭, 콩밭 등 시시각각 장소가 이동하는 여정극입니다. 이 수많은 공간 변화를 고정된 세트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희자들의 움직임과 이야기가 함께 숨 쉬며 유기적으로 변형되는 환경으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고민과 아이디어들이 구체화 되고 실현된다면, 무대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코와 공의 심리적, 공간적 여정을 생생하게 보조하고 확장하는 유기적인 플레이어로 존재하게 될 거예요.❞ - 작가, 연출 김정운  서로 다른 속도,기다릴 수 있는 마음 거대한 담론과 자극적인 무대가 많아지는 요즈음,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코공>을 슬며시 들여다보면 어느덧 입가에 선한 미소가 담긴다. 어린아이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같기도 하고, 웃음기 가득한 개구쟁이 꼬마들의 익살스러운 투정도 보이고,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견뎌내며, 가끔은 쉬어도 가고 싶은 어른의 모습도 보인다. 그 속에서 <코공>이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하다. ❝어린이들에게는 “남들처럼 빠르게 구르거나 높이 튀어 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다르게 생겼어도, 가다 넘어지고 긁히더라도 상관없어.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건 정말 신나고, 멋진 일”이라고 말하고 싶고, 이 공연을 보러 온 부모님과 어른들에게는 “나의 사랑하는 ‘콩’이 스스로 구르다 상처 입을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꺼이 믿고 기다려줄 준비가 되셨나요? 하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결국 각자의 자리에서 떼구르르 구르다가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성장을 손뼉 치며 반가워할 수 있는 건강한 거리감과 독립의 가치가 가족 모두의 마음에 묵직한 온기로 남기를 바라고 있어요. ❞ - 작가, 연출 김정운<코공>은 아이들이 전통 연희의 가치, 전통 연희의 멋과 맛을 느끼면서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공연, 전통 연희가 지루한 옛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가 함께 어울리고 놀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작품을 개발해 온 광대생각의 지향점과 닿아있다. 이야기는 분명하고, 표현은 흥미롭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을 담담히 생각해 보게도 한다.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즐겁게 상기된 얼굴이 될 수 있을 만큼, 함께 하는 공연, 누구나 마음껏 볼 수 있고, 놀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단체의 공연 언어가 이번에는 <코공>으로 현현된다. 2026 서울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 광대생각 신작 <코공>​일시: 2026. 10. 30. ~ 10. 31.(금,토) / 평일 19:30, 주말 11:00, 14:00장소: 서울돈화문국악당문의: 02.3210.7001  
3 / 7
스쳐 가는 감각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람을 맞고, 불을 바라보고, 땅을 밟는다. 매일 스쳐 가지만 좀처럼 의식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익숙한 일상에서도 문득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이 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작은 감각 하나가 생각을 불러내기도 한다.헤이스트링(Hey string)이 202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사유’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사람과 사물, 공간과 날씨, 감정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놓치고 있던 감각과 생각을 음악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서큘레이터>는 ‘사유’의 두 번째 시리즈다. 이번 작품에서 헤이스트링이 주목한 것은 물, 불, 공기, 흙이다. 네 가지 원소는 서로 만나고 변화하며 끊임없이 다른 상태로 이어진다. 공연의 시선은 그 움직임을 따라 자연에서 인간으로 이동한다.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엇이 내게 남는가.  가야금의 가능성, 사유의 구조로헤이스트링은 오지현, 김지효, 박지현으로 이루어진 가야금 창작음악 그룹이다. 이들은 새로운 장르를 연주한다는 개념을 넘어선다. 오히려 가야금이라는 악기 안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탐색해 온 팀이라 할 수 있다.25현가야금과 철현금 등 서로 다른 재질과 발현 방식에서 생기는 음색을 활용한다. 전통적 주법에 머물지 않고 현을 두드리거나 마찰하며 활과 채를 사용하는 등 발음법 자체를 확장해왔다. 세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음형은 반복되고 중첩되며 변형된다. 작은 소리가 다른 소리로 옮겨가고, 서로 겹치면서 하나의 큰 음향을 만들어 간다.이들의 창작적 관심은 점차 악기의 물성에서 인간의 감각과 기억, 그리고 사유로 확장되었다. 초기에는 전통악기의 새로운 사운드를 탐색하는 데 무게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음악이 관객에게 어떤 경험과 생각을 남길 수 있는가를 고민해 왔다. 공간, 설치, 퍼포머의 움직임이 음악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그런 점에서 <서큘레이터>는 헤이스트링이 걸어온 창작의 궤적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악기에서 소리로, 소리에서 감각으로, 감각에서 사유로, 다시 자연과 인간으로 관심의 범위를 확장해온 흐름 위에 놓여 있다.  물과 불과 공기와 흙공기는 움직이고, 불은 번지며, 물은 흐르고, 흙은 쌓인다. 하나의 상태는 고정되지 않고 다른 상태로 넘어간다. 헤이스트링의 음악도 작은 리듬과 음형이 반복되고 전달되며 중첩과 변형을 거친다. 원소를 단지 소리로 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고 이어지는 원소의 속성을 음악의 구조 안으로 가져오는 셈이다. 자연의 순환과 음악의 생성 방식이 이 지점에서 만난다.이번 작품에서는 소리가 신체와 오브제까지 확장된다. 기존의 세 연주자에 퍼포머 오예현이 함께하며, 가야금 음악과 움직임, 설치, 공간 안의 사물 변화가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퍼포머의 행위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각 원소가 가진 생명력과 순환의 과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장치다. 공기에서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움직임이 확장되고, 불에서는 촛불을 중심으로 몸의 궤적이 만들어진다. 흙에서는 포대에서 흘러나온 흙이 바닥에 쌓이고 그 안에 퍼포머의 발이 묻힌다. 이처럼 <서큘레이터>는 가야금·신체·오브제·공간의 관계를 다루는 복합적 퍼포먼스에 가깝다. 자연, 인간 그리고 다시 사유자연의 원소에서 출발한 공연은 후반부에 ‘걷기, 달리기’라는 인간의 신체로 이동하고, 마지막에는 ‘사유의 리듬’에 도달한다. 이 흐름은 <서큘레이터>가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음을 드러낸다. 자연을 향하던 시선은 신체를 거쳐 다시 인간의 내면으로 돌아온다.마지막 장면에서는 퍼포머가 퇴장하고 세 연주자의 음악만 남는다. 앞선 장면을 채웠던 신체와 오브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관객은 자신이 보고 들었던 감각을 되짚는다. 자연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일로 전환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한때 내 안에 머무르던 것들에 대하여<서큘레이터>는 관객에게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으로 작품을 해석하기를 기대한다. 2024년 초연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거의 없는 화이트박스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번에는 서울남산국악당의 극장 무대로 옮겨온다. 공간의 구조가 달라진 만큼 음악과 퍼포먼스, 원소의 움직임이 객석까지 어떻게 확장될지 또한 이번 공연에서 확인할 지점이다. 어쩌면 공연 이후 남는 것은 거창한 메시지가 아닐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와 흐르는 물을 잠시 바라보고,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느끼는 것.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감각이 다시 의식되는 순간, 공연에서 시작된 사유는 일상으로 이어진다.우리가 지나온 시간에는 수많은 사람과 사물, 감각과 기억이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무엇은 기억이 되고, 무엇은 감각이 되어 지금의 우리를 이룬다. <서큘레이터>가 자연의 순환을 따라 되돌려놓는 시선은 결국 한 지점을 향한다.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한때 내 안에 머무르던 것들에 대하여.   헤이스트링 <서큘레이터>일시: 2026. 10. 15.(목) 19:30장소: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문의: 02.6358.5500​  
4 / 7
정회천이 타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산조는 ‘국악의 꽃’이요, 가야금산조는 ‘꽃 중의 꽃’이다.” 황병기 명인(1936~2018)이 한 말이다. 산조 유파별 전바탕 연주가 본격적으로 이어진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산조 여러 유파가 연주될 때 빠지지 않는 산조가 있다. ‘성금연류’와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다. 이 산조는 ‘최옥삼류’, ‘최옥산류’,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라고 불린다. 이렇게 부르는 명칭에는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이 산조를 타는 많은 연주자는 저마다 개성이 있고, 모두 출중한 연주 기량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연주자에 의해서 이 산조는 가장 중요한 가야금산조의 하나로 부각되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정회천이다.이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들은 정회천 연주는 매우 생동감이 느껴지는 산조였다. 정회천이 타는 이 산조는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비교적 최근에는 2024년 8월 16일 전주세계소리축제 ‘산조의 밤’에서 들었던 연주였다. 이때의 연주는 함동정월 명인의 1980년대 연주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들려준 연주는 1970년대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시기는 함동정월 명인도 젊었고, 정회천은 청년의 활기가 넘치는 시기였는데, 정회천 명인은 마치 그 시기를 생각하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산조로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불과 같은 에너지를 전달해 주었다. 그날은 마치 갑자기 밖에 비가 쏟아졌는데, 정회천의 가야금은 물의 기운을 불의 기운으로 모두 말려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정회천은 일찍부터 함동정월류로 이름을 알린 연주자다. 오래전부터 그의 연주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날의 연주를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정회천이 함동정월류를 얼마나 잘 타는가’라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회천은 이 산조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앞에서 말했듯, 함동정월류를 잘 연주하는 사람은 많다. 각자의 시각과 음악적 감각에 따라 이 산조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많다. 그러므로 정회천만이 함동정월류를 잘 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정회천에게는 다른 연주자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는 이 산조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산조를 이루는 네 가지 ― ​가락·장단·성음·흐름산조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가락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산조에는 적어도 네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락, 장단, 성음, 흐름이다. 가락은 무엇을 타는가의 문제다. 장단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문제다. 성음은 누구의 소리로 만드는가의 문제다. 흐름은 한바탕 전체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의 문제다. 이 네 가지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가락이 장단을 만나고, 장단이 성음을 만나며, 그 모든 것이 한바탕의 흐름 속에서 하나가 된다.그리고 산조 연주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호흡이다. 가락과 장단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호흡이 없으면 산조는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산조의 긴 흐름을 어디에서 쉬고, 어디에서 밀고, 어디에서 풀어낼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그런데 산조에는 호흡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맥박이다. 호흡이 산조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생명이라면, 맥박은 산조를 앞으로 밀어가는 힘이다. 호흡이 길고 깊은 흐름이라면, 맥박은 순간순간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이다. 호흡이 없으면 음악은 메마르고, 맥박이 없으면 음악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회천의 연주에서 내가 느낀 것은 ‘호흡과 맥박이 동시에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스승에게서 배운 산조정회천의 산조를 이야기하면서 김명환과 함동정월을 빼놓을 수 없다. 최옥산이 세상을 떠난 뒤, 최옥산제 산조를 직접 알고 있던 중요한 인물은 김명환과 함동정월이었다. 정회천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이 두 사람에게서 이 산조를 배웠다. 김명환에게는 장단을 배웠고, 함동정월에게는 가야금산조의 몸과 소리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것을 배웠기에 정회천의 산조에는 논리와 감성이 함께 있다. 산조는 악보만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아니다. 스승의 손을 보고, 소리를 듣고, 장단을 함께하고, 그 사람의 음악적 태도까지 받아들이면서 전해진다.그래서 산조를 배우는 일은 가락을 배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정회천은 젊은 시절부터 김명환과 함동정월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그들의 연주만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음악적 성격까지 접했다. 이것이 오늘날 정회천이 갖는 중요한 자산이다. 산조는 가락을 전하는 음악이면서 사람을 전하는 음악이다. 1970년대의 산조를 기억한다는 것오늘날 많은 연주자가 함동정월류를 훌륭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함동정월류와 1970년대의 함동정월류가 완전히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산조는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1960년대의 산조가 있고, 1970년대의 산조가 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산조가 있다. 같은 이름의 같은 유파라 해도 연주자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락의 배치와 호흡, 장단의 밀고 당김, 성음의 깊이, 한바탕의 흐름이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그런 의미에서 정회천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은 1980년대 이후 자리 잡은 함동정월류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실제로 연주되었던 함동정월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회천은 그 시기의 산조를 직접 배웠고, 그 음악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시기의 산조를 기억하는 연주자로 이재숙(예술원회원)과 정회천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정회천이 타는 산조에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함동정월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의 함동정월류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정회천의 연주를 듣는 일은 한 명인의 연주를 듣는 일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산조를 다시 만나는 일이 된다.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산조최옥산제 함동정월류를 이야기할 때 내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이 있다. 이 산조에서 이른바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대목이다. 산조에는 각각의 유파를 특징짓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어떻게 타느냐를 보면 연주자가 그 산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듯한 대목은 특히 함동정월류의 역동적인 성격을 느끼게 한다. 평탄한 길을 달리는 말이 아니다. 자갈을 밟으며 말이 튀어 오르고, 다시 땅을 딛고, 또 앞으로 치고 나간다. 가락이 튀고 장단이 밀고 나가며 손끝의 움직임이 살아난다.여기에는 호흡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다. 바로 산조의 맥박이다. 과연 이 대목을 누가 가장 잘 연주하는가. 이 글에서 굳이 그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함동정월류를 각자의 방식으로 잘 타는 연주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산조라도 어떤 연주자는 가락에서 강점을 보이고, 어떤 연주자는 장단에서 뛰어나며, 또 어떤 연주자는 성음이나 전체적인 흐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그것이 산조의 매력이다. 다만, 이 대목을 들으면 정회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회천의 오른손과 왼손에는 오늘날의 연주자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수법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방식의 손기술이 아니다. 1970년대 함동정월에게서 배운 음악적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면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어느 시대의 산조를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물과 불, 바다와 산 ― 정회천은 불이고 산이다‘최옥삼’과 ‘최옥산’이라는 표기는 모두 사용되어 왔다. 정회천은 특히 ‘최옥산’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 글에서도 그의 뜻을 존중하여 ‘최옥산제’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최옥산’이라는 이름을 바라보다가 산조를 듣는 또 하나의 감각이 떠올랐다. 바로 ‘산’이다. 평론가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 산조는 물과 같고, 어떤 산조는 불과 같다. 또 어떤 산조는 바다와 같고, 어떤 산조는 산과 같다. 물과 같은 산조는 흐른다. 가락과 가락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고, 장단과 장단 사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엇인가가 앞에서 끌고 간다기보다 음악 전체가 스스로 흘러간다. 바다와 같은 산조는 그 흐름이 더욱 넓고 깊다. 한 가락이 특별히 앞에 나서기보다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에서 방향을 바꾸었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게 펼쳐진다.반대로 불과 같은 산조는 타오른다. 안에서부터 에너지가 생기고 어느 순간 불꽃처럼 튀어 오른다. 가락이 움직이고 장단이 살아나면서 음악의 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산과 같은 산조는 눈에 보인다. 음악의 덩어리가 분명하다. 가락의 윤곽이 있고, 장단의 골격이 있으며, 한바탕의 존재감이 크다. 산의 능선과 봉우리와 골짜기가 눈에 들어오듯 음악의 큰 덩어리가 눈앞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물과 산은 흐름과 존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와 산은 넓이와 덩어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불은 에너지의 방향이 다르다. 물이 스며들고 흘러간다면 불은 치고 올라오고 번진다.어느 것이 더 좋은 산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과 같은 산조가 있고 불과 같은 산조가 있으며, 바다와 같은 산조가 있고 산과 같은 산조가 있다. 이것은 우열을 가르는 구별이 아니다. 산조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를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구별이다.내가 듣기에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는 물이나 바다보다는 산과 불에 가깝다. 가락의 덩어리가 분명하다. 음악의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그 덩어리 안에서 계속 에너지가 움직인다. 특히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대목에서는 그 성격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평탄한 길을 유유히 흘러가는 물의 움직임이 아니다. 자갈을 밟으며 말이 튀어 오르고, 다시 땅을 딛고, 또 앞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정회천을 불의 연주자이자 산의 연주자라 부르려 한다. 정회천의 산조에는 산처럼 큰 덩어리가 있다. 가락의 존재감이 분명하고 한바탕의 골격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산은 가만히 서 있는 산이 아니다. 그 안에 불이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가 있다.앞에서 말한 산조의 두 요소, 호흡과 맥박도 여기에서 만난다. 산은 호흡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큰 덩어리와 긴 흐름이 있다. 불은 맥박이다. 순간순간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있다. 정회천의 특별함은 바로 이 둘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산처럼 존재하면서 불처럼 움직인다. 산조를 잘 탄다는 것은 수법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가락을 알고, 장단을 알고, 자기의 성음을 만들고, 한바탕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호흡과 맥박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정회천에게는 그것이 있다. 그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를 단순히 잘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산조가 지나온 한 시대의 호흡과 맥박을 기억하는 연주자다.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동정월 명인’을 한 모습으로만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1970년대의 함동정월류, 1980년대의 함동정월류, 1990년대의 함동정월류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귀 기울여 살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회천은 매우 중요한 연주자다. 그의 손에는 1970년대가 있고, 그의 산조에는 그 시대의 호흡과 맥박이 있다. 지금 정회천이 타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에는, 산처럼 남아 있는 한 시대와 불처럼 살아 움직이는 한 시대의 에너지가 함께 있다.  
5 / 7
한국에서 전통적 가치를 지닌 춤들은 근대 이후 새로운 의식 속에서 변용을 거듭하였다. 이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객과 만나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함에 기인한다. 정재(呈才)는 궁중이나 교방에서 극장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종목의 전승과 양식의 정화(精化)를 이루었고, 민간에서 이루어지던 춤들은 대중과 접촉을 통해 무대예술로 재구성되거나 전문적인 예술로 양식화 과정을 거쳤다.이러한 흐름은 무대예술로 구조적 변용인 동시에, 전승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하는 내재적 동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는 여러 지역의 춤 어법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유파로 정립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한국 전통춤의 지속적인 체화와 확장을 가능케 한 미학적 기틀이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선도적 예인들이 군집을 이루어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갔으며, 전통춤의 동시대적 전승을 주도하였다. 이 같은 전승 체제의 정립은 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춤의 정신적 가치와 원형 보존을 견인하며, 자연스럽게 후학 양성과 전승 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그 대표적인 전범(典範)으로 이매방과 그의 뜻을 따르는 예인 집단을 들 수 있다. 이매방은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권번의 함국향에게 춤을 배우며 춤길에 들어선 이래, 이대조 등 여러 스승을 사사하여 승무, 살풀이춤 등 그만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닌 춤 세계를 구축한 한국 전통춤의 대표적 인물로 인식된다. 이러한 면모는 그가 전통춤을 독창적인 예술 양식으로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학 양성을 통해 한국 전통춤의 외연과 내공을 함께 다지며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낸 점에 기인한다. 이매방 사후 후학들 역시 주체적인 실천을 통해 춤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전통의 저변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그 미학적 계보를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두 축의 조화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진 <유지숙·임정민의 춤>(2026년 7월 31일)은 이매방 춤의 본질이 동시대 생명력과 만나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연행으로 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구현해 낸 소중한 자리였다. 이는 이매방과 진유림, 그리고 그의 제자들로 단단히 이어지는 전수일맥(傳授一脈)의 예맥(藝脈)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현현(顯現)하는 미학적 실상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규모의 화려함보다 묵직한 실천적 춤사위가 어떻게 깊은 예술적 울림으로 응축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무대였다 할 수 있다.이번 무대는 청어람전통춤보존회가 이매방 춤의 원형을 굳건히 지키는 한편,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예술적 지평을 넓혀 가고 있음을 유감없이 들어낸 자리였다. 더불어 이매방 춤의 다채로운 수용 양상을 확인하면서, 진유림에 의해 창안된 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4대에 걸쳐 이어져 온 예맥(藝脈)의 견고한 지속성을 구현한 무대였다. 그래서 이날 무대를 채운 ‘승무’, ‘연흥무’, ‘호남검무’, ‘살풀이춤’, ‘규장농월(장고춤)’은 전통의 본질을 지켜내는 축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축이 조화를 이루는 현장이었다.먼저 진유림의 ‘승무’는 이매방 승무의 본질인 유려하면서도 엄격한 공력 그리고 맺고 푸는 북가락의 정수를 충실히 발현한 무대였다. 진유림은 국가무형유산 승무 및 살풀이춤 이수자이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일가를 이루었으며, 청어람전통춤보존회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춤의 올곧은 전승과 독자적 체화(體化)를 실현해 온 예인이다. 이러한 행보는 승무와 살풀이춤 등 전통춤의 엄정한 원형을 계승하는 동시에, ‘허튼 법고’를 비롯하여 ‘대신무’, ‘연흥무’, ‘규장농월’ 등 전통의 미학적 본질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확장해 낸 그의 창작 및 재해석 작업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무엇보다 그의 춤 바탕은 이매방에 그 본원(本源)을 두면서, 전통의 체화 방식에 있어서는 동일함과 다름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독자적 미학이 드러낸다. 이는 음양의 조화, 은현(隱現)과 강유(剛柔)가 교차하며 선명하게 빚어내는 미학적 긴장감에 기인한다. 특히 승무의 법고과장은 염불과장에서 감정을 내면화한 구도(求道)의 과정을 거친 뒤, 응축된 에너지를 타악적 긴장감으로 대담하게 분출해 내는 서사적 절정이 핵심이다. 여기서 진유림은 이매방 춤 특유의 선 굵은 북가락 속에 담대함과 세밀함을 교차시키며 전통의 본원을 주체적인 춤 어법으로 완숙하게 구현해 냈다.특히 이날 연행된 승무는 긴 호흡의 완판을 보여준 무대였다. 그런데 그동안 진유림의 춤이 겉으로는 화려함과 강건함을 드러내고 내부로는 이를 유동적으로 풀어내는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성향이 강했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유연한 춤선 속에 단단한 내공을 축적해 내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기교를 드러내기 위한 화려한 동작을 절제하는 대신, 정교하게 다듬어진 호흡을 통해 내면의 기(氣)를 침착하면서도 깊이 있게 발현하여 고도의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무대의 완급을 조율하는 긴 장삼의 흩뿌림과 맺음과 풀림의 세밀한 동선 구성은 과시적 움직임 없이도 장내를 압도하는 묵직한 중량감을 확보한 것이다. 창조적 갱신의 과정이어진 무대에서는 진유림이 창안한 ‘연흥무’가 유지숙과 임정민에 의해 연행되었다. ‘연흥무’는 전통춤의 본질적인 춤사위를 고스란히 내재한 채, 봄기운이 머금은 화사한 생동감과 서정적 정취를 가득 담아낸 춤이다. 여기에 부채가 선사하는 유연한 궤적을 따라 춤사위는 부드럽고 풍성하게 펼쳐지지만, 결코 흥에 휘둘리지 않고 밀고 당기는 완급의 호흡을 통해 깊은 절제미를 품어내는 매력도 존재한다. 이 무대에서 유지숙과 임정민은 서로 다른 예술적 표상과 개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춤의 합을 이루어냈다. 특히 두 사람의 춤은 과거의 춤사위를 단순히 답습하고 반복하는 이습(肄習)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춤의 본질적 가치와 미학적 특질 위에 동시대적 감각을 투영하여 단순한 재현의 차원을 넘어서는 각자의 독자적인 춤 언어를 구축해 냈다. 이는 전통의 전승이 보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의식과 조응하며 끊임없이 확장되는 창조적 갱신(更新)의 과정임을 명확히 보여준다.‘호남검무’는 호남 민속춤의 풍류적 기운과 정교한 춤사위 그리고 검(劍)이 자아내는 고도의 역동성이 접목되어 검무 양식의 미학적 정수를 실증해 보이는 종목이다. 여기서 검의 예리한 선(線)은 춤에 서슬 푸른 긴장감과 기백을 더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그것이 고도의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둥글고 유연한 사위와 깊은 호흡의 감화(感化)가 필수적이다. 특히 선명한 완급의 대비와 맺고 끊는 절제미는 춤의 입체감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리며, 끝내 호남춤 고유의 깊은 흥과 멋을 피워낸다.노혜민, 반재희, 허윤서가 함께 펼친 장쾌한 3인무는 이러한 호남검무의 역동성과 조형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 무대는 이매방에서 진유림 그리고 유지숙, 김정민을 거쳐 그 제자들에게 이어져 온 춤의 계보와 전승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세 무용수의 춤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가 축적해 온 호남춤의 미감과 춤사위가 오늘의 무대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정민의 ‘살풀이춤’은 살풀이가 지닌 기미(氣味), 즉 맺고 푸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특한 기운과 맛을 고스란히 드러낸 무대였다. 살풀이춤의 미학은 단지 슬픔이나 한(恨)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맺힌 것을 푸는 그 순간의 몰입 그리고 정서의 찰나 속에서 비로소 춤의 깊이가 완성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내면의 심리적 사유와 깊이 맞닿아 있다. 임정민은 이 내면의 흐름을 강건한 내공으로 풀어내었다. 유려한 움직임 밑바탕에는 중심을 단단히 잡는 공력이 작동하고 있었으며, 맺고 푸는 호흡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넘어 춤의 정서를 한층 겹겹이 확장시켰다. 특히 수건을 타고 확장되는 공간적 궤적은 신체 파동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단전에서 끌어올린 절제된 호흡을 통해 묵직한 정서적 울림을 남겼다. 이렇게 임정민의 ‘살풀이춤’은 단순히 한(恨)을 푸는 차원을 넘어, 내면의 사유와 정서적 긴장을 춤의 동력으로 전환해 낸 모습이었다. 풍류의 집약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유지숙의 ‘규장농월(장고춤)’은 맑고 경쾌한 장구 가락에 응답하는 다채로운 춤사위와 경기민요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의 풍류가 집약된 무대였다. 특히 은근히 배어나는 교태미와 묵직한 내공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악가무(樂歌舞)가 지닌 미학적 격조를 독창적인 춤 언어로 완결해 내었다.이 춤의 특징은 악기와 춤이 단지 박자를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대등한 호흡으로 교감한다는 데 있다. 특히 악기의 경쾌한 가락 속에서도 춤은 중심을 잃지 않으며,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어 관객의 본성을 자극한다. 유지숙은 이러한 조화 속에서 아늑하고 오묘한 깊이를 더하며,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인 유현미(幽玄美)의 진수를 감각적으로 구현하였다.여기에 발 놀음에서 발현되는 아기자기한 맛과 교태가 돋보이면서도 그 바탕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담아(淡雅)한 기품이 흘러넘친다. 악기의 경쾌한 가락 속에서도 춤은 중심을 잃지 않으며,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어 보는 이의 본성을 자극한 것이다.  이렇게 유지숙은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몸짓을 보여주는 춤꾼으로 기억할 수 있다. 내면의 본질인 ‘질(質)’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표현인 ‘문(文)’에 눌리지 않고, 외형의 꾸밈 역시 내면의 깊이를 가리지 않는 조화로움이 그의 춤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경쾌한 가락과 교태로운 발 놀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기품은 바로 이 문과 질의 완벽한 균형에서 비롯된다. 결국 유지숙은 화려함과 절제,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묵직하고 그윽한 춤의 본질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이처럼 이번 공연은 이매방에서 진유림 그리고 그의 제자로 이어지는 예맥(藝脈)이 전통의 원형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그 미학적 DNA를 어떻게 ‘창조적 전통’으로 발현되는지 그 정당성을 선명하게 보였다. 또한 이번 무대는 화려한 외식(外飾)보다 질박하면서도 진솔한 예도(藝道)의 마음이 돋보인 자리였다. 스승을 기리는 제자의 지극한 정성에서 비롯된 이 무대는 춤맥이 동시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전승되고 무대 위에 현현(顯現)하여 관객과 깊이 교감하는지 그 단단한 진정성을 마음으로 전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6 / 7
나는 전통연희를 오래 해왔다. 무대에 올라 북을 연주하고, 사람들과 공연을 만들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일은 익숙했다. 몸으로 익힌 것들이 있었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도 많았다. 그러던 중 연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기획’이라는 기술을 하나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이해하고 직접 움직여보고 싶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획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여러 공연과 프로젝트의 기획과 운영을 직접 해보기 시작했다. 기획서를 써보고, 사람들과 일정을 조율하고, 예산을 짜고, 공연이 실제 무대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현장 경험이 쌓였다. 처음에는 하나씩 해낼 때마다 내가 기획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해볼수록 오히려 어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장면을 만들고 어떤 연희를 넣을지, 어떤 사람들이 함께해야 할지는 비교적 익숙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공연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필요한 공연인지, 관객은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막히는 순간이 많았다.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공연으로 만드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아이디어를 하나의 기획으로 구조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연희자로서 가지고 있는 경험과 기획자로서 필요한 시선 사이에 아직 간극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단순히 현장 경험을 더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다른 기획자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질문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의 아이디어를 실제 공연으로 만들어가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전농스쿨에 참여하게 됐다. 연희자에서 기획자로의 체질 개선전농스쿨 1차 이론교육에서는 현재 전통예술 현장의 흐름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전문가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만들고 운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전통예술을 조금 다른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전통을 과거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내가 연희자로서 해오던 작업을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2차 멘토링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와 내가 만들고 있는 기획을 들여다보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준비하고 있는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멘토링은 기획안의 문장이나 형식을 고치는 것보다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왜 기획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멘토링을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다. 우리 팀(연희점추리) 대표님이 내가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활동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며 ‘연희자에서 기획자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들었던 말이었는데, 멘토링 과정에서 내 이야기를 설명하다가 문득 그 말을 꺼내게 됐다.“저는 지금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체질 개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내고 나니 내가 그동안 기획을 하며 느꼈던 어려움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동안 기획자가 되려면 기획서를 잘 쓰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계속 채우려고만 했다. 하지만 내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만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하는 데 익숙했던 내가, 한 발 떨어져서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누구와 만나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했다. 연희자로서의 경험을 버리고 기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익숙하게 해온 방식에 새로운 시선을 더하는 과정이었다. 덜어내자 오히려 선명해졌다공연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고 자주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왜 그 공연을 보러 갔는지,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보고 난 뒤 어떤 생각이 남았는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았다. 공연을 보고 ‘재미있었다’, ‘좋았다’, ‘아쉬웠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멘토링을 통해 공연 관람 역시 기획자의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 공연을 볼 때면 왜 이 공간을 선택했는지, 관객은 어느 순간 집중하는지, 음악과 움직임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공연을 보는 일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획을 위한 자료를 쌓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아이디어와 리서치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디어는 씨앗이고, 리서치는 그 씨앗을 키우는 물과 거름, 햇빛과 같다는 설명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디어에 새로운 것을 계속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기획이 완성되지 않는다.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는지,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와 근거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이런 생각은 내가 준비하고 있던 <집 따라 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처음에는 남산골한옥마을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을 담고 싶었다. 국사당, 물길,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흥미로운 소재가 떠오르면 하나씩 넣고 싶었다. 좋은 것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멘토링을 거치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여다보니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집을 지키는 신’과 ‘잊혀가는 공동체’에 가까웠다. 소재를 하나씩 덜어내자 오히려 작품의 방향이 선명해졌다.굿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 과정에서 달라졌다. 동해안별신굿을 직접 관람하고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굿이 단순히 과거의 형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삶과 공동체를 이어가는 현재형의 의례라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신을 깨우고, 모시고, 사람들을 모으고, 안녕을 기원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려보내는 굿의 흐름 자체가 하나의 공연 구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 따라 온 것들>에서는 굿의 구조를 빌려 성주를 깨우고, 관객을 공간으로 초대하고,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을 만들고자 했다.공간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서울남산국악당의 공연장만을 공연의 배경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시작해 서울남산국악당으로 이어지는 이동 자체를 공연의 경험으로 만들고, 굿과 연희뿐 아니라 파쿠르라는 새로운 움직임까지 연결해 관객이 직접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구조를 고민하게 됐다. 이런 변화에는 그룹 멘토링의 영향도 컸다. 다른 참여자들의 기획을 들으며 내 기획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기획들을 듣다 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더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창작 내용만 잘 만드는 것으로 기획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예산, 공간, 운영, 관객, 협력과 같은 현실적인 구조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나의 기획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했다면,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게 할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 과정에서 내가 연희자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 내가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배워야 할 것은 많다. 하지만 무대에 직접 서보고, 연습하고, 공연을 만들어본 경험은 기획자로서도 분명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만의 기획 방식을 찾아서전농스쿨을 통해 기획의 정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막연하게 어려워하기보다 무엇을 확인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기 전에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먼저 묻게 될 것 같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좋고 싫다는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느껴지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획 안에서도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아직 나는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여전히 서툴고, 때로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서툶을 단순히 부족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필요한 것을 찾아 배우는 과정 역시 기획자가 되어가는 과정일 테니까.나는 앞으로도 공연을 만들고 기획할 것이다. 내가 오래 해온 전통연희가 오늘의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 연희자로서 쌓아온 경험을 기획자로서 어떻게 새로운 공연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보고 싶다.전농스쿨이 끝난 지금도 답은 아직 많지 않다. 대신 이전보다 질문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겼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완성된 답을 갖는 것보다, 내가 가진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 확인해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연희자에게 기획이라는 기술을 하나 더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획서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익숙하게 해온 공연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가 가진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고, 하나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람과 공간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아직 그 기술을 익히는 중이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이 보고, 듣고, 기록하고, 질문하면서 나만의 기획 방식을 만들어가고 싶다. 
7 / 7
인스타그램 위젯
인스타그램
월간일정 위젯
월간일정
오시는길 위젯
오시는길
주차안내 위젯
주차안내
대관서식 위젯
대관서식
문의하기위젯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