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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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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산조는 오늘도 현재진행형
서울돈화문국악당 <2026 산조대전>
장수홍
아름다운 한옥 극장, 서울돈화문국악당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북촌의 끝자락이자, 창덕궁을 마주한 국악로의 시작점에 단아하게 한옥으로 지어진 국악전문 공연장이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자연음향으로 우리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우리 악기 본연의 소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2026 산조대전>이 오는 4월 2일~19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3주간 개최된다. 2021년 시작한 산조대전은 공력이 깃든 명인의 산조부터 차세대 산조 연주가를 만날 수 있는 무대로 국립국악원의 ‘토요상설 명품공연’, 국립창극단의 ‘완창판소리’와 더불어 빠르게 서울돈화문국악당을 대표하는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는 확장이라는 주제로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26 산조대전 : 관계의 확장산조대전은 매년 주제를 가지고 산조의 깊이와 미학을 집중 조명 해 왔다. 넓이, 깊이, 성음, 지킴과 변화, 산조의 확장성 등 주제에 따라 허튼가락이라고 하는 산조 정신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온전히 산조에 취해 몰입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로 인식되어 왔다. <2026 산조대전>의 예술감독은 평소 산조대전과 인연이 깊은 대금연주가 김상연(전남대학교 교수)이 맡았다. 김상연 예술감독은 “2026년 산조대전의 주제는 확장입니다. 명인들의 오래된 가락과 성음들을 무대에서 펼쳐내고, 20대의 젊은 연주자들이 명인들의 공력이 깃든 산조 가락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다시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명인 오마주 무대가 펼쳐집니다. 또 시민들이 직접 산조 무대에 참여하여 시민예술로 확장성 있게 나아가는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번 산조대전의 주제, 확장은 김상연 예술감독의 평소 화두이기도 하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전통과 창작의 관계, 연주자와 관객의 관계 등 관계의 확장으로 산조를 만날 수 있는 ‘명인전’, ‘명인오마주’, ‘본 공연’, ‘시민 산조’, ‘신(新)산조병주-일합일리(一合一離)‘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산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산조는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기악독주곡으로 연주자와 반주자 두 사람이 장구나, 북과 함께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서 빠른 장단으로 이어가며 장단에 맞춰 연주한다. 산조는 연주자의 예술 기량과 예술세계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그만큼 전통음악에서 산조의 지위는 하나의 장르 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산조는 시대의 음악이자, 예술가의 음악이다. 연주자들은 예술적 탐미와 예술 표현을 위해 악기를 개량하고 산조가야금을 만들었다. 가야금의 진화는 새로운 악기 주법을 개발하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며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가능하게 했다. 산조는 빠르게 거문고-대금-아쟁-해금-피리로 확장되어 전승-계승되고 있다. 최근에는 철현금과 퉁소 산조가 등장하였고 또한 작년 산조대전에서는 생황과 훈 산조가 초연되었다. 산조대전은 산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장이 되고 있다.전통음악인 산조가 고착화 되지 않고, 동시대성을 가져갈 수 있는 건 연주가들이 산조를 이어가는 마음과 정신이 아닐까. 김상연 예술감독은 “오랫동안 원형에 대한 답습이 이루어진 다음에 음악적인 지적 호기심들이 악기로 발현되고, 반복의 과정을 거쳐 자기 산조가 됩니다. 산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통을 하는 거예요. 저희 스승이신 서용석 선생님의 산조 정신이기도 합니다. (산조대전 인터뷰 중)” 이미 2021년 산조대전에서 김상연류 대금산조를 발표한 바 있는 그가 말하는 산조 정신이다. 명인전과 명인오마주 <2026 산조대전>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담은 프로그램 ‘명인전’과 ‘명인오마주’로 시작한다. ‘명인전’에서는 대금뿐 아니라 모든 관악기의 귀재이자 이생강류 대금산조를 만든 이생강 명인과 민속음악의 맥을 이어온 가야금연주자 지순자 명인의 오래된 가락과 성음을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산조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온 명인들을 통해 전통의 깊이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작고 명인들의 삶을 회고하는 ‘명인오마주(대금편)’에서는 산조의 유파를 창조한 역대 명인들의 예술세계를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한다. 20대의 젊은 연주가들이 명인들의 공력이 깃든 산조 가락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재해석해서 연주하는데, 대금산조를 만든 박종기, 김동진, 서용석, 한주환 명인의 산조를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해석으로, 계승을 넘어 확장으로 산조의 흐름을 이해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연결의 자리가 될 것이다. 본공연 v 新 산조병주<2026 산조대전> ‘본공연’에는 17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오른다. 어떤 이는 스승의 음악에 더 집중하고 있고, 어떤 이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하고 있다. 흔히 산조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인생이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축적이자 희노애락의 경험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것처럼 산조 역시 연주자의 전(全) 인생 속에서 성장하고, 깊어 간다. 이처럼 인생을 품은 산조는 연주자의 해석력에 따라 변화무쌍하기에 17명의 연주가들이 풀어낼 산조가 기다려진다. 연주자의 공력과 성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2026 산조대전>에서 관객들은 연주자의 숨결, 악기의 농현과 시김새, 장단 사이에서 펼쳐지는 즉흥의 미학을 온전히 즐기며 긴장과 이완 속에서 몰입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산조대전에서는 산조의 또 다른 확장성을 모색하며 ‘新산조병주’를 구성했다. 산조는 독주곡이지만. 옛 명인들은 종종 함께 모여 산조를 연주한 예가 있다. 올해 ‘新산조병주’에서는 안기옥 산조 가락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거문고·가야금 병주 현화(絃和)와 대풍류와 산조를 정비한 지영희, 박범훈 명인의 음악을 기반으로 경기시나위 음악의 경쾌함을 즐길 수 있는 대금·해금·피리 병주, 마지막으로 서용석 명인의 음악 세계를 대금과 아쟁으로 재구성한 대금·아쟁 산조 병주를 통해 허튼가락의 진수를 전해줄 것이다. 지음지기, 연주가들의 교감과 호흡, 앙상블을 통해 산조 병주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민산조, 향유를 넘어 주체적 참여자로 전문예술가의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산조, 고품격 공연을 지향해 온 산조대전에서 ‘시민산조’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김상연 예술감독은 “일반인 강좌가 늘어나면서 전통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항유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음악은 접근하기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승하고 이어가고 있는 산조, 전통음악을 보다 많은 분들과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조가 주체적인 시민예술로 발전한다면 산조를 비롯해 무형유산을 즐기는 향유자도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2026년 서울돈화문국악당 산조대전에서 시작하는 ‘시민산조’가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산조대전이 보여준 티켓 파워가 전통음악계에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만, 여전히 산조를 비롯한 전통음악은 낯설고 어려운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향유자의 주체적인 문화 참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리라 기대한다. 무엇보다 피아노가 모두의 악기로 인식되듯, 전통악기가 모두의 악기로 인식되고 향유된다면 산조, 전통음악의 멋진 흥과 정수를 함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2026 산조대전>에서 펼쳐진 ‘시민산조’가 기대되는 이유다. 3주간 펼쳐지는 <2026 산조대전>, 어떤 공연을 봐야 할지 고민 중인 분들을 위해 산조의 공력이 깃든 울림과 거장의 삶이 궁금하다면 ‘명인전’을, 예비 명인들의 원형에 대한 탐구와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명인오마주’를, 산조 본연의 매력과 예술가의 인생을 마주하고 싶다면 ‘본공연’을, 그리고 탐구와 시도로 명인들의 음악세계를 재해석한 새로운 산조가 궁금하다면 ‘新산조병주’를, 마지막으로 산조가 좋아 산조를 시작한 향유자들의 울림이 궁금하다면 ‘시민산조’ 를 추천한다. 모든 공연은 산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평론가와 연주가들의 해설이 더해져 깊고, 넓고, 친근하게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서울은 2025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10위권의 도시로 선정됐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이나 북촌한옥마을,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한국의 고유한 전통의 아름다움과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북촌의 끝자락에 아름다운 공간인 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한국문화의 체험장으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2026 산조대전>도 하나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6 산조대전일시 : 2026. 04. 02 ~ 04. 19 (목·금·토·일) / 평일 19:30, 주말 16:00장소 : 서울돈화문국악당문의 : 02.3210.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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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피플┃ 그들은 추억이라 했고 우리는 역사라 불렀다
일소당 음악회 예술감독 송현민
김일송
‘일무’ 같은 이른바 줄춤을 뜻하는 ‘일(佾)’과 풍류를 뜻하는 ‘소(韶)’를 따 ‘춤과 음악이 있는 집’이라 이름 붙여진 일소당(佾韶堂). 매년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새해 첫 문을 여는 이 기획 프로그램에는 사실 우리 음악사의 아픈 단면이 새겨져 있다. 일소당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왕직 아악부(李王職 雅樂部)’의 공연장 이름이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황실의 권위를 격하하기 위해 설립한 이 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궁중음악의 전승과 연주를 도맡았던 유일한 창구였다. 치욕스러운 시대의 산물이었으나, 우리 음악의 명맥이 위태롭게 흐르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던 셈이다. 지명의 향수에서 시대의 상징으로서울돈화문국악당의 대표 기획 프로그램인 ‘일소당 음악회’는 과거 ‘일소당’이 가졌던 장소성과 역사성 위에서 기획되었다. 2022년부터 이 프로그램의 키를 잡은 송현민 예술감독은 바로 이 복잡한 장소성과 역사성 위에서 ‘일소당 음악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종로’와 ‘일소당’이라는 지명과 공간의 이야기를 예술가들의 기억을 빌려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비중이 컸어요.❞실제로 2022년 첫 공연에서는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최중웅이 국악사양성소 재학시절의 시간을 들려주었고, 아쟁연주자 김영길은 아쟁의 거장 박종선과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거문고산조 전승교육사 김무길은 일소당 인근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에서의 학창 시절을 회고했고, 정가 가객 김영기는 국악사양성소에서 재직했던 아버지 김용의 이야기를 꺼냈다. 피리 명인 한세현은 배고프던 시절 종로 일대 요정에서 민속음악을 이어가던 일화를, 대금 명인 원장현은 박귀희 명창이 운영하던 운당여관에서의 시간을 들려주었다.첫 해의 호응을 바탕으로 ‘일소당 음악회’는 돈화문국악당의 대표 기획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에는 정가 명인 이동규가 당대 최고의 가객이었던 부친 이병성의 일화를 전했고, 삼현육각 예능보유자 최경만과 서도소리 명인 김광숙은 국악예술학교 시절을 회고했다. 판소리 고법 명인 김청만 역시 종로에서 마주했던 명인·명창들의 풍모를 풀어놓았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며 음악회도 조금씩 변화했다. 일소당과 종로의 기억을 직접 간직한 세대가 줄어들면서, 프로그램은 특정 장소의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전통예술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상징적 기획물로 변화하였다. 일소당의 추억이나, 종로와 직접적 인연이 없어도, 한국의 예술과 오랜 시간과 함께 해온 그들만의 ‘기억’과 ‘음악’을 나누는 자리로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종로’라는 장소성이 출발점이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특정 지명에 대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전통예술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는 장으로 넓어졌어요. 예인 각자의 기억과 예술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구조로 바뀌었죠.❞ 사진첩을 함께 넘기는 공연‘일소당 음악회’는 일반적인 연주회와는 조금 다르다. 명인의 기예를 감상하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한 예인의 삶과 시간을 듣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연주와 대화가 함께 진행되는 토크 콘서트 형식을 취하지만, 그 중심에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일화들이 놓여 있다. 이 변화는 2024년부터 더욱 분명해졌다.❝2022년, 2023년 두 해 동안 여러 명인들과 무대를 만들면서 관객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보게 됐어요. 그 순간은 연주 자체보다도 명인이 자신의 기억을 꺼내는 때였어요. 그래서 점점 이야기의 비중을 늘리게 됐죠. 예전에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대화를 넣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졌다고 할까요.❞관객은 단순히 연주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예인이 지나온 시간을 듣는 순간, 음악은 전혀 다른 울림을 갖게 된다. 명인이 자신의 삶을 펼쳐놓는 순간, 관객은 한 예인의 개인사뿐 아니라 그 삶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환경까지 함께 보게 된다. 한 개인의 삶 속에 스승과 제자, 교육 제도와 시대적 환경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이 음악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오래된 사진에 있다. ‘사진첩을 함께 넘기는 공연’은 ‘일소당 음악회’를 다른 음악회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무대 위에는 악기와 소리뿐 아니라 예인들의 옛 사진이 함께 놓인다. 관객은 그 사진을 통해 음악이 태어난 시간과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누가 보면 도둑인 줄 알 거예요. 사진첩을 전부 꺼내서 몇십 년치 사진을 다 뒤져보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그분들도 오랫동안 펼쳐보지 않던 사진을 다시 꺼내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시죠. 우리는 그 사진들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가져와, 기존의 자료들하고 비교해요. 그러면서 중요한 사진만 다시 골라 음악회의 흐름을 만들어요.❞ 이 무대에 등장하는 사진 대부분은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개인 기록들이다. 유년 시절의 모습, 스승과 동료들과 함께한 순간, 수학하던 시절의 풍경들. 이런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하나씩 펼쳐질 때 공연장은 자연스럽게 한 시대의 풍경으로 채워진다. 그 순간, 관객과 예인의 관계도 달라진다. 그는 그 순간을 ‘감상이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라 표현한다. 그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다. 예인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 공연의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무대그는 이 프로그램의 기획뿐 아니라 공연의 사회와 해설도 맡고 있다. 공연의 사회자로 무대에 서며 그는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을 유지하려 애쓴다고 한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따라가기보다, 예인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설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해설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객의 귀에 길을 내는 안내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아, 저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도록 돕는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예술감독으로서의 방향 설정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예인에게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송현민은 바로 그 지점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예술가가 축적해온 시간, 예를 들어 전승의 계보, 교육의 궤적, 시대와 함께 변해온 방식을 중요하게 보려고 해요. 전통예술은 작품만 남는 예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남기는 예술이니까요.❞그래서 그는 ‘연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같은 산조라도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에 따라 소리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소당 음악회’가 전통예술계에서 수행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무형유산의 특성상 문헌만으로는 전승의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기록의 문제예요. 구술 채록이나 기록화가 중요한데, 의외로 전통예술계에는 체계적인 아카이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소당 음악회’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구술 기록을 만드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 음악회는 연주이면서 이야기이고, 동시에 사진 기록이기도 하다. 소리와 말, 그리고 이미지가 한 자리에서 만나며 한 예인의 시간이 천천히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일소당 음악회’는 공연인 동시에 사라져가는 무형유산을 기록하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문자로 남는 기록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식의 기억이다. 이와 관련해 그의 일화를 대신한다. 2024년 지성자 명인과 함께했던 무대에 대한 소회다. ❝오랜 세월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명인의 고생담이 이야기 구석구석마다 놓였습니다. 탄탄대로의 삶이 아니었고, 눈물꽃이 피어나는 길가로 조심스레, 하지만 대담하게 걸어온 인생이었죠. 공연의 마지막에 선생의 젊은 시절 녹음을 마무리로 들어보는데, 선생의 노래가 들려오는 가운데 대화를 나누는 게 참 좋더군요. 그래서 물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렇게 고생을 하시면서 가야금과 함께 살아온 인생인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으실 겁니까?”라고요. 중간에 잠시 생각을 하시는데, 그 사이로 선생의 음반 음악이 들려왔어요. 잠시 후 “그럼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을 겁니다”라고 답변하셨어요.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린 공연장을 채운 음악을 조용히 들었어요. 관객들도 침묵을 지키면서, 그 예인의 다짐과 확신을 존중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냥 감동 받았던 순간,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결국 ‘일소당 음악회’가 남기는 것은 한 편의 연주가 아니다. 한 예인이 지나온 시간, 그 시간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의 공기까지 함께 기록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난날의 추억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아카이브가 될 때, 그것은 박제되지 않은 한국 전통예술사의 단단한 역사가 된다. 명인이 사진첩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순간, 우리 전통예술사의 한 페이지가 작성된다. ‘일소당 음악회’가 계속 이어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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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대덕돈화(大德敦化)’로 빚어내야 할 ‘품격의 국악’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10주년에 부쳐
윤중강
황홀한 입지, 국악로의 역사적 무게를 잇다2016년 9월 1일, 서울돈화문국악당(이하 ‘돈화문국악당’)이 개관했다. 당시 개관 축사에서 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2018)는 이곳을 일컬어 ‘황홀한 입지’라는 단어를 썼다. 돈화문국악당이 자리한 곳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와 조선성악연구회, 그리고 해방 후 국립국악원이 자리했던 국악의 심장부다. 또한 수많은 ‘인간문화재’들이 제자를 길러낸 ‘국악로’의 역사적 무게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황홀한 입지’라고 했던 것이고, 이는 또한 당시 국악계의 어른들의 커다란 바람을 내포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큰 극장에서 다소 요란스럽게 펼쳐진 공연의 성과와 한계를 두루 알고 있는 분들로서는 이곳만큼은 ‘품격의 국악’을 소통하는 장소로 지속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국악계의 어른들과 전통음악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애호가들은, 국악의 본질이 축소되거나 왜곡된 것에 대한 걱정을 밑바탕에 깔고 이곳이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격조 있는 ‘품격의 국악’을 소통하는 장소가 되길 갈망하며 이 공간의 성격을 격 있게 잘 유지하길 바랐다. 10주년을 맞은 지금, 돈화문국악당은 그 바람대로 국악의 본질을 격 있게 유지하며 ‘작지만 큰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0년의 축하 인사를 마땅히 받아야 할 극장이며 그것은 단지 국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품격 있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해 온 알찬 콘텐츠의 힘이다. 특히 2025년부터 컬쳐브릿지가 운영주체가 되었는데, 돈화문국악당이 그간 성공한 브랜드를 잘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공연콘텐츠를 신중하게 계발해서 알리는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돈화문국악당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을까? 돈화문국악당이 지켜야 할 공연장의 성격은 무엇인가? 돈화문국악당의 탄생은 국악의 ‘역사적 거점의 부활’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국악의 ‘정체성 회복’과 연결된다. 국악의 정체성 중의 하나로서 ‘자연 음향 중심’의 ‘고품격 국악 전문 공연장’을 지향한 것이 돈화문국악당이다. 그간 우리가 간과했던 연주자의 숨소리와 악기의 미세한 울림까지 관객에게 직접 전달되는 자연 음향(Unplugged)을 지향했다. 21세기형 율방(律房), 자연 음향으로 빚은 소통의 무대이런 공연장의 성격은 ‘산조대전’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 산조대전은 매년 예술감독을 달리하면서, 우리 음악 산조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매우 잘 보여주었다. 올해는 대금 명인 김상연이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우리 시대 최고 명인의 산조를 접하는 것을 비롯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신인이 ‘산조대전’에 합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가야금, 거문고 등 산조가 가진 기악 독주곡의 예술적 극치를 두텁게 쌓아 올린 것이다. 돈화문국악당과 같은 곳을 예전에는 율방(律房)이라고 했다. 지역마다 율방이 있었고, 여기서 풍류로 소통을 했다. 여러 곳에서 초청한 음악을 들었고, 귀명창들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그것은 율방을 찾아온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을 추는 율객(律客)이 자신의 예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서울의 수많은 공연장 중에서 예술가와 시민이 가장 근거리에서 만나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돈화문국악당이기에, 많은 예술가들에게 돈화문국악당은 ‘가장 두려우면서도 가장 오르고 싶은 무대’로 자리 잡았다.돈화문국악당은 예전 율방이 그렇듯이, 담소가 이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20세기의 국악인들의 삶과 예술은 ‘운당여관 음악회’를 시작으로 해서 ‘일소당 음악회’로 이어지면서 공연의 질과 내용의 밀도를 높였다. 송현민 예술감독의 진행으로 명인들의 삶과 예술을 사진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토크콘서트는 예전 조선에서 일제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율방(律房) 문화’의 성격을 잘 이어온 공연으로서 여타 어떤 공연장의 콘텐츠와도 차별이 된다.‘일소당 음악회’는 그 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스승의 스승’을 알게 해주고, 그를 통해서 50년 전에서 100년까지 전통음악계의 공기를 느끼고 숨 쉬게 해주었다고 극찬하고 싶다.과거 서울의 극장들은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동양극장에서 공간사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역할은 숨어 있는 우수한 존재를 예술적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21세기의 ‘돈화문국악당’은 20세기의 ‘공간사랑’과 연결된다. 1980년대의 공간사랑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숨은 명인을 중앙무대에 초대해서, 그분의 예술을 품격 있게 자리하는 데 기여했다. 창무극의 공옥진이 그랬고, 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이 그랬고, 서도소리와 서도춤의 양소운이 그랬다. 돈화문국악당 역시 지역의 숨은 명인을 발굴해 그 가치를 두텁게(敦)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돈화(敦化)’의 사명, 전통의 두께로 시민의 삶을 도탑게돈화문국악당이라는 공연장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돈화문국악당의 키워드는 ‘돈화(敦化)’이다. 이는 『중용(中庸)』 제30장에 나오는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소덕천류 (小德川流), 대덕돈화 (大德敦化). 즉, “작은 덕은 시냇물처럼 흘러 만물을 적셔 기르고, 큰 덕은 두텁게 만물을 변화시켜(敦化) 천지의 화육(化育)을 돕는다”는 말이다.이를 통해서 공연장의 존재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돈화문국악당은 전통의 ‘두께’를 보여주고 만들어가는 공연장이다. 그리고 그 ‘두터운 소리’가 시민(관객)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삶의 근본적인 변화(敦化)에 기여해야 한다. ‘도탑다’와 ‘두텁게 한다’는 뜻을 담은 ‘돈(敦)’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변형시키다’는 것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더욱 ‘도탑게(두텁게)’ 만드는 힘이다.이런 의미에서 돈화문국악당은 단지 융합과 실험의 인큐베이팅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악계에서는 ‘실험과 융합’, 인큐베이팅과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무소불위의 우선순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화를 반대하기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예술의 본질이 너무도 쉽게 간과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음향장치와 영상장치 등 디지털의 힘을 빌려야 하는 공연은 자연음향을 지향하는 돈화문국악당과 전혀 맞지 않다.플랫폼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이 없다는 것과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플랫폼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나, 결코 예술에서의 플랫폼은 과정일 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예술을 매개로 해서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돈화’(두터운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돈화문국악당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돈화문국악당은 우리 시대의 율방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 애호가들이 모여서 함께 즐기는 ‘21세기형 율방’으로 거듭나야 한다. 돈화문국악당의 10년을 돌아보면 이 공연장에서 올린 작품 중에는 우리 음악의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시민들에게 ‘삶과 예술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연결해주는’ 동시대의 작품이 분명 존재했다. 앞으로 돈화문국악당은 이러한 작품을 더욱 계발해야 한다.앞으로의 과제는 가무악희(歌舞樂戱)의 조화로운 완성이다. 서울의 중인 이상의 지식층이 사랑했던 노래(歌)를 돈화문국악당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다. 또한 집단 예술로 치부되던 연희(戱) 속에서 ‘개인놀이’의 정수를 뽑아내 돈화문국악당만의 밀도 높은 콘텐츠로 풀어내야 한다. 2인의 출연만으로도 전통예술의 완성도를 보여준 ‘일무일악’이 그 훌륭한 참고가 될 것이다.‘서울돈화문국악당’은 왕의 거처 바로 건너 ‘황홀한 입지’에서 10년의 훌륭한 성과를 만들었다. 앞으로 10년은 어떠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예술의 큰 덕으로 시민의 삶을 도탑게 만든다’는 사명을 더욱더 새겨야 한다. 존재하는 것 곧 ‘전통’을 통해서 더 도탑게 만드는 것, 곧 ‘동시대의 전통’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앞으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행복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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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소리 그리고 공간, 해체와 재조합의 횡단적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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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마당을 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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