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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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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서울 그리고 소리가을, 서울의 한가운데 서울남산국악당과 이를 품은 너른 남산골한옥마을의 이곳저곳에서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2025년 10월 8~9일)이 개최된다. 같은 자리에서 지난 두 번의 축제가 11월에 열리었던 것과는 달리 10월 초순, 한가위 연휴의 후반부로 당겨 이루어지는 이번 행사는 아마도 추석을 지나는 귀성객들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겨냥하려는 듯하다.판소리에 기반한 다양한 공연과 더불어, 전통음악문화와 관련된 여러 체험 프로그램들이 한껏 높아진 하늘 아래 펼쳐질 전망이다. 감염병 사태 이후 공연계 및 축제판의 수많은 시도들이 고군분투하다 스러지고 마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러한 중규모의 축제가 1, 2회를 넘어 ‘3’이라는 숫자를 달고 살아남은 것은 그 자체로 참 멋지고 다행인 일이다.장르성의 희구와 저변의 확대라는 두 토끼월드판소리페스티벌은 그 이름에서 보듯 판소리라는 한반도의 대표 전통 장르가 가진 넓고 깊은 현재를 축제의 장으로 꺼내려는 목적, 그리고 기존 한반도의 소리 연행자 및 애호가가 이루어온 장을 넘어서서 더 넓은 소리하기와 듣기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함께 포괄하고 있다. 장르 안과 그 깊이를 염두에 둔 전자의 목적과, 장르 외연 및 그 향유자의 지평을 넓히려는 후자의 목적은 각기 거대하며 때로 상충할 염려조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축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은 이 두 크고 어려운 과제를 함께 펼쳐보려는 야심찬 도전을 담고 있다.먼저 ‘판소리 축제’라는 차원에 초점을 두어 보자. 흔히 추상적, 당위적 구호에 담겨 만들어지는 ‘국악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라, 판소리라는 한 장르가 수백 년을 거치며 만들어 내어온 고유한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축제로서 이 축제는 독연(獨演) 형태의 전통적 소리판을 여럿 펼쳐내는 한편, 소리에 기반하여 파생된 여러 장르 즉 병창이나 창극에 연한 여러 연행들을 프로그램에 포함하고 있다.이틀 오후 내내 여러 세대·배경을 지닌 여성 소리꾼들이 차례로 다양한 전통 소리 바탕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한가위 판소리 한마당>(관훈동 민씨 가옥 및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그리고 두 번째 날 오후에 펼쳐질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이시웅의 강산제 심청가 완창(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등이 축제 프로그램의 중심에 자리한 가운데, 어린 고등학생 유망주들의 가야금병창 독연과 가온병창단, 중앙가야금병창단 및 세계가야금병창단의 병창 합주 등이 장르성의 자장 안에서 관객에 선보여지며, 판소리 합창과 같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도들도 이루어진다. 한편 야외 특설무대에서는 개막 공연의 <수궁, 길을 묻다>와 양일에 걸쳐 선보여질 <공중제비전> 등 전통 소리 바탕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소리극 작품들이 올려질 예정이다.한편 한옥마을 속 전문 공연장 콤플렉스인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일 프로그램들도 판소리라는 장르가 품은 고유한 매력과 서사를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크라운해태홀에서 양일간 열리는 두 개의 연행은 ‘완창’과 ‘독공’이라는, 판소리의 역사와 소리꾼의 여정에 관한 키워드를 각각 품고 있다. 위에 언급되기도 한 소리꾼 이시영의 공연은 완창이라는, 장르사 속에서 비교적 최근에 확립된 연행 형태이기는 하지만 모든 소리꾼들의 경건한 도전이 향하는 어떤 ‘봉우리’로서 관객에게 건네어진다.‘독공’은 소리꾼이 겪는 그러한 도전의 지난함, 나아가 성음을 빚고 매만지기 위한 수련의 숙명을 보여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청년 소리꾼을 위한 ‘100일 독공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젊은 소리꾼 차혜지가,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성취를 춘향가 한판을 통해 드러낸다. 한편 국악당 내 체험실에서 이틀에 걸쳐 열릴 <고음반 감상회>는 조선 말기의 두 명창 박기홍, 박만순 명창의 소리를 한국고음반연구회 노재명 대표의 해설과 함께 전하며 현 판소리를 피워낸 옛 역사를 환기한다. 이러한 서사들 모두 단순한 ‘판소리 공연 모음’이 아니라 소리와 소리꾼의 ‘이야기’를 통해 장르의 본질을 되새기고 또 공유하려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즐거운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월드’, 그리고 ‘페스티벌’이라는 말 속에 숨은 저변 확대의 기획은 첫날 저녁의 메인 콘서트 그리고 폐막 공연에 특히 깃들어있는 듯하다. 주최 측인 세계판소리협회가 진행해온 내국인 및 외국인 대상 판소리 교육 프로젝트의 수강생들이 10월 8일의 메인 콘서트 에 올라 각각 <춘향가>와 <수궁가>의 눈대목을 부른다. 또 폐막 연행에서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소리를 가르쳐온 소리꾼 민혜성의 연출로 국적과 전문성, 장애 유무 등의 경계를 넘어서 꾸려진 합창이 이루어진다. ‘세계’ 혹은 ‘월드’라는 말이 붙은 거의 모든 전통문화 관련 프로젝트가 한류 혹은 국제문화교류 지원금 정책에 편승하려는 얕은 수의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 가운데, 실제 내국인 시민 및 외국 국적의 애호가를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이 ‘프로’들의 연출 속에서 축제의 가운데에 서는 일을 보는 일은 반갑다. 애호가이자 비평가로서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다양한 방문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천우각 야외무대가 철저히 판소리라는 장르를 염두에 둔 연행들로 가득 채워진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같은 자리에서 열린 제2회 축제를 관람객으로 찾은 바 있다. 위에 언급한 ‘두 토끼’를 잡기 위한 다채로운 노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널찍한 야외무대에서 판소리 및 판소리 축제의 본질로부터 먼 레퍼토리들이 ‘전통’과의 ‘하이브리드’를 겉으로만 표방한 (소리꾼 한둘이 낀) 서양음악적 앙상블의 안이한 연행을 통해 펼쳐지는 모습에 씁쓸해했었다. 소리 기반의 극적 연행예술과 병창, 합창 등이 교차되는 이번의 야외무대 라인업이, 당위나 허상으로서의 대중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실재적인 잠재적 장르 향유자를 향하고 발굴해내는 데 있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라 여기기에, 훨씬 축제의 이름에 걸맞은 내용으로서 관객에게 다가설 것이라 생각한다.판소리의 진수를 해마다 피우는 가을 축제가 되기를수많은 잠재적 귀명창들이 거니는 서울 한복판에서, 야외 공연과 실내 공연이 모두 근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축제의 장소는 귀하다. 특히 판소리를 주제로 한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이러한 장소성이 굉장히 그 장르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요하다. 판소리사 자체가 거리와 시장과 잔치라는 말 그대로 야외의 판에서 시작되어, 20세기를 거치며 무대·실내예술로 그 외연을 확장해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축제가 그 첫걸음부터 남산골한옥마을 및 서울남산국악당과 함께한 것은 참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전통 바탕과 창작 사설, 기본 판소리와 병창, 중창, 소리극 등을 실내 및 실외 무대에서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세 번째 걸음까지를 버텨온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이 앞으로도 옛 서울의 자리, 깊은 가을의 풍경 속에서 판소리 장르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펼쳐낼 수 있기를, 소리와 소리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응원해본다.​ 서울남산국악당 커넥트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일시 : 2025. 10. 8~9(수·목) 19:30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문의 :02.6358.5500 / http://www.sgt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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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은 동시대 살아있는 예술로 확장 가능한가?’ 전통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서울남산국악당 대표 브랜드 공연 ‘남산컨템포러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모여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현장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원일, 김재덕, 카입, 앙상블 시나위, 박경소, 잠비나이 등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무용, 미디어아트, 연극과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탐색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무대를 선보였다.서울남산국악당은 한국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며, ‘남산에 담는 이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남산컨템포러리를 5년 만에 부활시켰다. 이에 올해 11월 2025 남산컨템포러리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서령과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차진엽, 거문고연주자 심은용, 그리고 소리꾼 권송희를 만나보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서령에게 묻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남산컨템포러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다.              남산컨템포러리는 어떤 프로젝트인가?​“남산컨템포러리는 전통예술이 문화유산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살아 있는 예술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어요. <전통, 길을 묻다>라는 부제도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경험을 가진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통이라는 주제로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어떤 여정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기획자로서의 바람을 담아 시작한 작업입니다.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뭔가 새로운 실험과 도전들이 있었으면 좋겠고, 경계를 넘어가는 조금 더 확장성을 갖는, 어떤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올해 다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소감은 어떠한가? “남산컨템포러리를 기억해주고, 다시 소환해줘서 정말 기뻤어요. 그리고 정말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2025년의 컨템포러리는 어떠해야 하지? 오늘날의 남산컨템포러리는 어떠해야 할까? 이미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이전의 5년보다 굉장히 급박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5년이었잖아요. 그때부터 머리가 굉장히 복잡했어요. 그런데 어디를 가든 메모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오늘 이 시대, 전통예술을 우리는 어떻게 상상하고 있고, 꿈꾸고 있고,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질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 다시 한번 처음에 했던 그 질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재소환하는 프로젝트라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을 텐데,                   이번 아티스트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많은 아티스트들이 떠올랐지만, 10년 전에 못다 이룬 꿈이 있었던 세 아티스트가 그림처럼 겹쳐지면서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그리고 여러 키워드를 메모해 봤는데 교집합으로 연결되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다시 만나 각자의 예술적 성장과 시대적 감각을 바탕으로 ‘지금의 전통’을 새롭게 묻고자 합니다. 전통은 단순한 복제나 보존의 대상이 아닌, 오늘의 삶과 예술, 기술, 환경, 여성성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언어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사용되는 전통’, ‘살아있는 전통’을 새롭게 상상하고 실험하려 합니다.”   - 2025 남산컨템포러리는 어떤 구성으로 진행될 예정인가?“다이얼로그 퍼포먼스 기반의 유기적 옴니버스 구성으로 각자 독립적인 작품을 시작하지만, 상호 교감을 통해 다른 세계가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작업에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이자 부클레 연주자 정중엽 씨가 사운드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소리 감각을 확장시켜줄 예정이고요.”    안무가 차진엽×연주자 심은용×소리꾼 권소희에게 묻다 - 솔리스트 작업에서 집중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만의 리듬을 갖고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호흡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요즘 한국 춤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움직임이 어떻게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이런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좀 더 세상과 연결이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있구나, 내 주변에서 움직이는 것들과 나는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한국 춤이 그러한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어떤 춤으로 무엇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그런 태도나 어떤 접근 방식이냐가 저에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내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 어떻게 거스르지 않고 더 잘 연결할지, 그래서 저는 그 공간을 열심히 탐색하고 싶고 그 공간이기 때문에 출 수 있는 춤을 추고 싶어요.” (차진엽)차진엽은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폐회식,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서울시발레단의 <백조의 잠수> 등에서 비중 있는 안무를 맡아,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몸의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다. 탐구하고 사유하는 안무가 차진엽(Collective A의 예술감독)은 나다운 춤, 자신의 춤을 찾기 위해 몸의 언어에 집중하고 있다. 자기만의 춤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춤을 배우고, 명인의 삶을 관찰하고, 함께 하는 아티스트들과 깊은 대화를 통해 삶의 태도를 예술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통, 호흡, 내면에 집중하며 그려내는 차진엽은 이야기(춤)로 아티스트와 관객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시공간의 감각을 깨우는 순간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즉흥 연주를 하면서 나의 음악스타일, 나의 소리를 조금 더 확실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거문고 소리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고 있습니다. 거문고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음의 길이가 짧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틈과 틈 사이를 중시하려고 해요. 음과 음 사이 공백이 소멸이 아니라 울림으로 퍼져 나가서 그 소리가 사라져도 그 여운은 남아 우리를 감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번 솔로 무대에서는 거문고 소리의 본질을 보존하면서, 변형되고, 음악적·음향적으로 확장되는 소리와 에너지를 담아내려고 합니다.”         (심은용)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 거문고연주자 심은용은 연극, 무용, 영상,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경계 없는 협업 작업을 통해 예술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잠비나이에서의 활동이 도전과 실험의 장이었다면, 국립현대무용단 , <덕수궁프로젝트 with 현대미술작가 윤석남>,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는 타 장르와의 협업과 개인 창작 활동을 통해 여성, 인권 등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소리를 탐구하며 예술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이번 공연에서 심은용은 거문고와 엠비언트 사운드를 기반으로 놋다리밟기, 여성놀이의 음악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며 감각을 확장하는 음악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성 민요와 자장가 그리고 기억의 소리를 가지고 오래 호흡을 맞춘 정중엽 씨와 함께 부클라 사운드로 재구성한 퍼포먼스를 합니다. 아이를 낳고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 더 넓어지더라고요. 제가 계속 불렀던 흥보가, 판소리 속 엄마에 대한 캐릭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류애적으로 너무 짠했어요. 조선 시대에 왜 이런 캐릭터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힘으로 계속 불리었는지 좀 더 알게 됐어요.” (권송희)권송희는 ‘범 내려온다’로 전 세계에 한국음악의 매력을 전파한 밴드 ‘이날치’의 원년 멤버이자 신진 아티스트의 등용문 국악방송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음악감독, 국극을 예술시장으로 소환시킨 드라마 <정년이> 소리감독 등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21세기 대표 소리꾼이다. 권송희는 스스로 ‘21세기 소리꾼’이라고 칭하며, 전통에 머물지 않고, 전통 판소리를 오늘의 음악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페미니즘 시선으로 바라본 춘향, 억압된 사회에 강요받는 사회적 약자 심청이 권송희의 20~30대 예술세계를 담아냈다면,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권송희가 바라보고 해석한 2025년 여성은 어떤 모습일지, 권송희의 노래가 기다려진다.  - 다른 세계, 다른 감각을 마주하는 시간이 협업이 아닌가 싶다. 각자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협업하거나 협업을 지속하는 아티스트는 그냥 제가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취향, 음악적, 예술적 감각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뢰와 믿음,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좋은 협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질문을 통해서 또 뭔가를 탐구하고 그러면서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어떤 질문들이 생기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할 때 사실 저는 굉장히 흥미로움을 느끼거든요.” (차진엽)  “협업이라는 작업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서로 적응하고 알아가는 과정 안에서 자극받고, 그것을 통해 내가 놓치고 갔던 부분들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그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은 좀 다를 것 같아요. 10년 전에 함께 시작한 공연이 아쉽게 취소됐지만, 10년 동안 저희는 감사하게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좋아하고, 존경하고, 배울 점이 많은 두 분과의 작업이라 뭔가 더 기대가 됩니다.” (심은용)   “오랜만에 하는 협업 작업이에요. 협업은 진짜 쉽지 않아요. 함께 하는 사람, 기획 의도, 나의 상황, 기간에 따라 작업이 괴로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는 작업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은 정말 좋아하는 분들과 언젠가 함께 하고 싶었던 작업이라 너무 설레요.” (권송희) ​  남산컨템포러리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그대로 올리는 단순한 콜라보레이션의 무대가 아닌, 질문하고 묻고 답하기를 거듭하며 공연을 완성해 가는 협업의 무대이자, 그들의 고민과 상상력으로 도전하는 현장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여성, 전통, 원형, 자연, 내면 등 교집합이 많은 세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서로에게 어떤 자극이 파장이 되어 발현될지 궁금해진다.우리의 일상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낯선 경험과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나의 감각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남산컨템포러리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2025 남산컨템포러리 - 전통, 길을 다시 묻다​일시 : 2025. 11. 13~14(목·금) 19:30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문의 : 02.635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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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땅>에는 ‘인연이 빚은 잔치’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한국의 춤꾼들과 악사들, 일본 나고야에서 온 ‘놀이판’이 함께 한 토요일이었다. 놀이판은 1985년 재일동포들이 다음 세대에게 한국의 전통예술을 알려주고자 시작한 일본의 조선인 모임이다.  나고야의 ‘놀이판’, 축제의 땅을 깔아오다 1980년대 초, 나고야 주변에 남아있는 전쟁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징용으로 건설된 군사시설의 흔적을 조사·연구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공동 보육소를 만들어 아이들을 함께 키우게 된 것이 ‘놀이판’의 시작이었다. 1985년 여름부터 그들은 ‘재일 교포 3세에게 민족 교육을’이란 구호로 놀이판이라 이름을 짓고 사물놀이를 가르친다. 선생이 없어 한국에서 배워 온 이에게 배우거나 비디오와 CD로 가락들을 흉내 냈다. 국경을 넘은 장구 소리는 일본 내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도 넘나들며 일본인들이 입회하기도 한다.1995년 여름부터 놀이판이 커졌다. 김운태(채상소고춤)와 노름마치를 초청해 합숙하며 농악을 연습했다. 모임은 나고야를 넘어 전역으로 퍼지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가 되었다. 매해 9월마다 열리는 나고야의 이마이케마쓰리(今池祭り)에 참가하여 한국의 춤과 음악을 알리며 모두의 축제가 되게 했다.1997년 11월에는 기후현 마루야마 댐 공사에 강제동원되어 죽은 한국인들을 위한 마루야마 진혼제를 펼쳐졌다. 남해안별신굿의 정영만이 주도하고, 나고야 동별원(東別院)에서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풍물굿을 올렸다.2000년 2월에는 놀이판의 공동설립자 이나가키 마사토가 입원했다. 죽음을 앞둔 그의 소원은 장사익의 콘서트를 여는 것이었다. 공연은 나고야의 라이브클럽 도쿠조(得三)에서 열렸고, 이나가키 마사토는 5일 후에 눈을 감았다. ​  2003년 7월, 나고야에서 <축제의 땅에서>가 올랐다. 놀이판 18년의 역사를 자축하는 자리였다. 18년 전에 장구를 맸던 아이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어머니의 장구를 물려받았다. 이듬해인 2004년 8월에는 <축제의 땅에서>란 이름으로 첫 내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2010년 8월에는 <한일판굿-인연이 빚은 잔치>(한국문화의 집)를 공연했고, 그간 일본으로 건너가 놀이판에 교육을 베푼 선생과 명인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2011년 1월 <백년의 약속>을 나고야 예술창조센터에 올렸다. 2017년 8월, 놀이판은 <축제> 공연(한국문화의 집)에 초청되고, 인사동에서 풍물을 울렸다.2025년은 놀이판 창단 40주년인 해이다. 한국은 광복 80주년, 일본은 종전 80주년, 한일수교 60주년. 만감의 역사가 교차하던 8월, 놀이판은 창단 40주년 공연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가졌다. 이를 위해 5월부터 김운태와 연희단팔산대에게 농악을 배우고, 영상통화로 틈틈이 연습했다. <축제의 땅>은 8월 16일 오후 3시와 7시에 펼쳐져, 30년 동안 놀이판과 함께 한 한국의 예인들이 총출연했다. 기획과 연출을 맡은 진옥섭은 “마개를 금방 딴 신명이 폭죽처럼 터지는 축제”라고 장담했다. ​이국땅에서 세대를 이어가는 전통예술3시 공연에서 김주홍, 장인숙, 장유정, 고연세, 김연정, 김운태, 장사익 그리고 놀이판의 멤버들이 달궈놓은 열기는 7시까지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각 공연은 출연진이 달랐다. 다만 놀이판은 3시 공연에 이어 7시 공연에서도 ‘학춤’과 ‘판굿’을 선보였고, 장사익도 두 공연에 모두 함께했다.조성돈의 ‘소고춤’이 축제를 연다. 진옥섭 왈 “꽃을 이고 춤을 추는 남자”란다. 흔히 광대들의 무대를 깔아주는 판광대(기획자)로서는 치밀하고, 광대들의 무대를 열어주는 말광대(해설자)로서는 말과 말 사이에 웃음을 끼워 넣는다는 그다.진옥섭은 저서 『노름마치』에 수록된 이윤석, 황재기 등의 사진 밑에 ‘춤추는 사내들’이라고 적어 넣었다. 그중 한 명이 황재기(1922~2003)인데, 조성돈은 황재기로부터 꽃을 이고 추는 춤(소고춤)을 배웠고, 1980년대 채상소고에 춤가락을 더해 자기 춤으로 다듬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작은 북(소고) 역시 맵다. 연신 두드려 흥을 돋운다.​ 이어진 순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놀이판의 ‘학춤’이다. 피아노곡 ‘라 캄파넬라’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전환하고, 놀이판 멤버들은 도포를 펄럭이며, 수직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한 발짝씩 나와 오와 열을 갖춘다. 아주 섬세하고 고도의 훈련으로 정제된 춤사위는 아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값진 무대였던 이유는 나이든 학부터 어린 학까지 함께 했다는 점이다. 어린 학은 어림잡아 6살쯤으로 보인다. 아마도 걸음마를 뗀 다음 그 꼬마는 한국춤을 재밌게 배웠을 것이다. 그 어린 학도 어느 순간에는 자식을 품고, 걸음마와 함께 학춤을 가르쳐줄 것이다. 놀이판 멤버들이 학춤을 배울 때, 아마도 녹음된 음원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음악광대로 무장한 반주단의 흥은 그들이 학춤을 출 때 한 뼘씩 더 높이 뛸 수 있는 흥의 돋움대를 만들어주었다.  놀이판의 든든한 지지자(박찬호)를 추억하며 <축제의 땅>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 박찬호이다. 대중음악연구자 이준희가 나와서 박찬호의 업적을 소개하고 인연을 추억한다. 2024년에 고인이 된 박찬호는 1943년 일본 나고야 출생이다. 와세다대 문학부를 졸업했고 재일 한국학생동맹과 재일 한국청년동맹 활동, 1977~1984년 민족시보사 편집차장과 편집장을 역임했다. 박찬호의 저서 『한국가요사』는 1987년 일본어로 간행되고, 1992년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증보되어 2009년에 2권의 묵직한 책으로 나왔다. 그는 이전까지 야화·회고담 중심이던 가요사 연구를 사료 기반의 학술서로 끌어올리며 학계의 지평을 넓혔다. 생전에는 놀이판의 후원자이기도 했다.이준희는 ‘번지 없는 주막’을 부른다. 1940년 백년설이 부른 노래이자, 박찬호가 생전에 즐겨 부른 노래란다. 이준희의 목소리가 묘했다. 날끼와 지기(知氣)가 겹친, 선비와 광대 사이의 묘한 레이어다. 여러 논문을 쓴 학자로서의 먹물이 흐르면서도, 취기로 몰아가는 알코올의 휘발성이 담겨 있었다. 3시 공연에서는 장유정이 박찬호를 추억했다.​ 흥이 한을 넘고, 흥이 아픔을 녹였다<축제의 땅>이 다시 춤으로 물들었다. 김혜윤이 선보인 ‘교방굿거리춤’은 김수악이 최완자에게 배운 굿거리에 김녹주에게 배운 소고놀이를 절묘하게 합쳐 만든 춤이다. 맨손으로 추다가, 너풀거리는 치맛자락을 허리끈으로 질끈 동여맨 김혜윤이 소고를 들고 연신 두드리며 흥을 돋운다. 흥이 덮은 땅에는 슬픔이 녹아들기도 했다. 특히 놀이판이 오간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픔과 슬픔의 역사가 녹아 있다. 그러니 닦아내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박영수의 ‘살풀이’는 더욱 애절했다. 손에 들린 수건으로 문질러 그 역사적 아픔이 닦여나가길 바라는 몸부림이었다.이윤석의 ‘덧배기춤’은 화려하지 않은데, 가장 화려한 박수를 받았다. 그는 힘과 멋을 빼버리고 춤을 춘다. 아니, 오히려 털털거리는 듯한 춤으로 형식적인 멋을 다 털어내는 것 같다. 덧배기춤에서 ‘덧’은 거듭이라는 뜻이고, ‘배기’는 박다라는 뜻이다. 하여, 땅을 꾹 찍어 누르는 배김새가 인상적이다. 이윤석은 다리와 하체를 ‘척’하고 움직여 단단히 자리를 잡은 뒤, 상체를 강하게 다시 한번 ‘척’하고 흔들어 상체의 힘이 하체로 전달했다. 상체의 힘이 아래로 전달되어 땅을 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살이 풀리고(살풀이), 덧배기춤으로 땅이 다져졌으니 기뻐해야 할 차례다. 한잔 들이켜야 하지 않은가. 박경랑의 ‘교방소반춤’이 나온다. 춤꾼의 머리에 얹어진 소반 위로 술이 넘실거리는 술잔이 놓여 있다. 이것을 엎지르지 않게 하는 ‘기술’이 어느새 춤사위의 ‘예술’로 승화된다. 권주잔을 받아 마시면 모든 액운이 사라진다는 정영만의 노래와 함께 박영랑이 어느 관객 앞으로 가고, 관객은 술잔을 들어 비운다. 박경랑은 이고 있던 소반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비녀를 뽑아 소고처럼 두드렸다. ​ 한‧일 축제에 띄운 흥의 달을 상상하며 ‘한’과 함께 흐르면 느리지만, ‘흥’과 함께 흐를 때 물살처럼 빠른 것이 시간이다. 2시간이 훌쩍 넘었다. 농악대 악기와 대열을 갖춘 놀이판이 관객석 뒤에서 등장했다. 꽹과리‧장구‧북‧징을 울리며 무대로 서서히 걸어 내려가는 그들을 보며, 그들이 일군 사십 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고난도의 기교로 돌리는 상모가 아니더라도, 북채와 장구채의 화려한 기교가 아니더라도 앞서 본 ‘학춤’처럼 그들이 지나온 길을 상상해 보고 떠올리게 했다. ‘저 속에 김주홍이 들어가 함께 했겠구나’ ‘조성돈이 상모를 움직이게 하는 법을 가르쳤겠구나’ 등 이번 축제를 함께 한 이들이 섞여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장사익의 무대가 끝을 맺었다. 20세기 아리랑이 있었다면, 그의 ‘찔레꽃’은 21세기의 아리랑이다. 진옥섭은 공연 초입에 “여러분들 도망 못 가도록 장사익 선생을 가장 마지막 무대로 잡아두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장사익이 아니었더라도 그 자리에 모두 있었을 것이다. 축제의 시간이었고, 우리가 모르던 역사가 흘렀고, 양국이 춤과 소리로 물들인 순간이었으니, 누가 이런 놀이판을 마다할 것인가? 토요일 밤, 축제의 땅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모인 이들이 흥의 달을 띄웠다. 그들의 흥은 막이 내려도 이어질 것 같았다. 모두 하나 되어 40주년 맞은 놀이판의 역사와 미래를 축하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은 한일 양국이 깐 축제의 ‘땅’에서, 새로운 감흥과 감동이 요이 ‘땅!’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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