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언제나 완성된 무대가 아니었다. 흥이 오르면 더 하고, 날이 저물면 자연스레 멈추는 곳. 광대가 재주를 펼치면 구경꾼이 모여들고, 구경꾼의 추임새가 다시 광대를 살리는 곳. 안과 밖의 경계도, 보는 이와 하는 이의 구분도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판소리에서 ‘판’이, 탈춤에서 ‘마당’이 그랬다. 전통 공연예술에서 마당이란 공간은 애초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무대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장(場)이었다.
그 마당이 다시 열린다. 5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 야외마당에서 <2026 남산 마당페스타>가 펼쳐진다. 노동절 연휴를 품은 봄날, 사흘에 걸쳐 하루 네 차례 30분씩, 열두 팀의 무대가 차례로 이어진다. 전석 무료다. 올해의 라인업은 두 층위로 구성된다. 서울남산국악당의 대표 청년 창작지원 사업 ‘젊은국악 단장’ 출신 예술가들의 특별 공연과, 공모를 통해 새로 발굴된 자유참가팀이 같은 마당 위에 선다. 서울 도심 한복판, 남산 자락 한옥 마당으로 어떤 소리와 몸짓이 모여들지. 이 축제는 그 가능성 자체를 하나의 기획으로 삼는다.
단일 공연을 넘어, 축제의 시간으로
축제형 공연이 가진 힘은 단일 공연과는 다른 데 있다. 한 팀의 예술가가 완성된 작품을 올리고 관객이 그것을 감상하는 구조에서는, 공연의 가치가 완성도로 수렴되고 무대 위와 아래 사이의 거리가 또렷해진다. 단단한 완성도는 분명 미덕이다. 그러나 축제의 문법은 다르다. 여러 팀이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질 때 관객의 발걸음이 자유로워지고, 걷다가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드는 무대 앞에서 자연스레 발을 멈추게 된다. 완성된 것을 관람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마주칠지 모른 채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경험, 그것이 축제가 단일 공연과 다른 지점이다.
에든버러 프린지나 아비뇽 페스티벌이 반세기 넘게 이어온 것도 이 ‘우연한 만남’의 힘 덕분이다. 서울에서도 대학로 소극장 문화나 거리예술축제가 오랫동안 이 방식의 유효성을 증명해 왔다. 서울남산국악당 역시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과 전통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혀온 공연장이다.
마당페스타는 그 흐름 위에서 마당 특유의 개방감을 십분 살린 축제다. 서울남산국악당 야외마당은 이 구조를 담기에 좋은 그릇이다. 한옥의 처마와 열린 하늘, 마당을 가로지르는 봄바람, 이 공간은 닫힌 객석의 문법이 아닌 마당 고유의 문법으로 작동한다. 300석 실내 공연장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거기에 있다. 30분이라는 짧은 단위 역시 이 공간과 잘 맞는다. 긴 호흡의 감상보다, 짧고 밀도 있는 조우를 반복하는 방식이 야외마당의 리듬에 어울린다. 관객은 그 사이사이 마당을 걷고, 바람을 맞고, 다음 무대를 기다리며 이미 축제의 일부가 된다.
완성된 미학을 넘어, 발굴의 역동성으로
지난해〈2025 남산 마당페스타>는 서울남산국악당이 새롭게 꾸린 봄 야외 축제의 출발이었다. 서울남산국악당의 대표 청년 창작지원 사업인 ‘젊은국악 단장’을 통해 발굴되고, 이후 수년간 현장에서 역량과 인지도를 쌓아온 예술가들이 무대를 채웠다. 2018 헤이스트링, 2019 박선주, 2020 백다솜, 2021 상자루, 2022 이이슬·최종인, 2023 노은실, 2024 이나연 등 긴 시간 공을 들이고 성장을 지켜봐 온 예술가들을 마당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야외마당에서도 높은 완성도와 함께 다양한 협업과 실험을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마당페스타라는 이름에 신뢰의 무게를 실어준 해였다.
2026년, 서울남산국악당은 이 견고한 토양 위에 ‘공모형’이라는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 단장 출신 예술가들의 특별 공연이 축제의 중심축을 잡는 가운데,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야외에서 관객과 직접 호흡할 수 있는 만 40세 미만 청년 예술가라면 누구든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참가팀을 공모로 함께 꾸린다. 검증된 완성도와 새로운 발굴이 한 마당 안에 공존하는 구조다. 단장 출신 팀은 마당페스타를 찾는 관객에게 신뢰를 주고, 공모로 선발된 팀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관객과 직접 부딪혀볼 기회를 갖는다.
전통예술 안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켜켜이 쌓여 있다. 사사(師事)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기회, 이미 이름을 얻은 예술가와 아직 얻지 못한 예술가 사이의 거리. 2026년의 마당페스타는 그 거리를 단번에 없애는 대신, 두 층위를 한 마당에 나란히 세움으로써 새로운 예술가들이 자생력을 시험하는 실질적인 기회를 열어두는 쪽을 택했다.
다만 열린 문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의미하려면,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팀당 50만 원이라는 지원금은 창작의 대가로서는 분명 아쉬운 지점이다. 이 소박한 예산이 청년들의 열정에 기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서울남산국악당은 참가 예술가들을 단순한 출연자가 아닌 축제를 이끄는 주체로 대우하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어야 한다. 50만 원은 창작의 대가이기보다는, 이들의 가능성을 기록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향후 더 큰 무대로 성장시키는 ‘마중물’로 기능해야 한다. 공공 극장이 제공해야 할 가치는 금전적 보상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홍보와 공연 영상 아카이빙 지원은 청년 예술가들이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실질적인 포트폴리오가 된다. 이러한 무형의 지원이야말로 단순한 출연 기회를 넘어 예술가로서의 이력을 함께 쌓아주는 플랫폼의 역할이며, 서울남산국악당이 공연장이나 대관처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창작 주체들이 자생력을 시험하고 가능성을 공인받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당지기가 된다는 것
이번 마당페스타는 참가 예술가를 ‘마당지기’라 부른다. 출연자나 공연자가 아닌, 마당지기. 이 호칭은 공간을 살아있게 하는 사람, 그 자리의 흥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30분의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당의 분위기 전체를 함께 직조해 나가는 사람, 마당지기란 그런 역할이다. 그리고 마당지기가 있는 자리에서 관객 역시 달라진다.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높낮이가 사라진 마당의 구조는 관객을 단순한 관조자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탈바꿈시킨다. 공연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추임새를 넣고 흥을 돋우며 판의 흐름을 함께 완성해가는 공동의 기획자이자 연희자로 자연스레 서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전통 연희의 가장 오래된 직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광대는 무대 위의 예술가이기 전에 그 판을 책임진 마당지기였다. 구경꾼이 마당 안으로 들어오도록, 경계가 지워지도록, 보는 이와 하는 이가 하나가 되도록…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광대의 본업이었다. 마당페스타의 ‘마당지기’라는 호칭에는 이 오래된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일방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그 시간 마당을 관객과 함께 살아있게 만들어가자는 초대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서울특별시와 크라운해태 후원으로 이어온 ‘단장’ 사업이 예술적 원석을 발굴하고 정성스레 길러낸 시간이었다면, 2026년의 ‘마당페스타’ 자유참가제는 그 원석들이 대중이라는 거친 마당의 바람을 맞으며 자생력을 시험하는 기회가 된다. 2025년, ‘단장’의 이름으로 일궈낸 ‘마당페스타’의 성취가 이 브랜드의 뿌리였다면, 2026년의 변화는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더 넓은 생태계로 잎을 틔우는 과정이다. 이 일련의 흐름이 쌓여 갈 때, 서울남산국악당을 기점으로 한 ‘전통의 현대화’는 박제된 구호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오늘의 풍경으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봄날, 그 마당으로
5월의 남산은 더없이 아름답다. 봄볕이 한옥 기와 위에 내려앉고, 마당에는 바람이 분다. 노동절 연휴를 맞아 남산골을 찾은 시민들이 뜻하지 않게 귀를 기울이게 될 가야금 소리,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장구 장단. 완성된 무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리가 마당을 채울지 모른 채 들어서는 경험, <2026 남산 마당페스타>는 바로 그 불확실성을 기획한다.
공모를 통해 모인 청년 예술가들이 어떤 소리와 몸짓으로 이 마당을 채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 알 수 없음이 리스크인 동시에, 마당 특유의 설렘이다. 기획된 완성보다 살아있는 현재가 마당의 문법이었으니. 이름을 얻기 전의 예술가, 아직 단단히 굳지 않은 소리, 처음 마당에 내놓는 청년의 두근거림. 그것이 이 축제가 품으려는 것이다. 2025년의 마당페스타가 ‘이것이 마당이다’를 증명했다면, 2026년의 마당페스타는 ‘마당에서 이렇게 자란다’를 보여주지 않을까? 전통예술의 내일이 완성된 무대보다 이런 마당의 흥 속에서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5월 남산행을 서두르게 한다.
| 김서령 | |
| 문화예술기획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연, 축제, 문화공간 프로젝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해석과 창제작 플랫폼 기획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남산국악당 <남산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국립정동극장 <청춘만발>, 대구문화예술회관 |
| 김서령 |
| 문화예술기획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연, 축제, 문화공간 프로젝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며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해석과 창제작 플랫폼 기획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남산국악당 <남산컨템포러리–전통, 길을 묻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국립정동극장 <청춘만발>, 대구문화예술회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