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쾌한 두 남자의 사랑(舍廊)방*
공연의 비수기인 1월, 두 남성 경기민요 가창자 고금성과 이희문의 <고이(高李) 접어부르는 완창 12잡가(雜歌)> 공연이 이틀간 만석을 이끌어내며 설레는 한 해의 공연계를 열었다. 고-이 두 사람이 ‘산 공부’처럼 준비했다고 소개할 정도로, 12잡가 완창 공연은 예술가에게는 공력을 완성하는 학습의 공간이지만,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단조롭고 어려운, 자칫 경직된 무대가 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기대됐던 이유는 민요 전공 1기로 민요의 세계로 입문해 올곧게 경서도 민요의 길을 고수해 온 고금성과 동시대적 감각으로 민요를 당대 음악의 반열에 올린 ‘민요 셀러브리티’ 이희문이 함께 기획한 무대라는 점이었다.
고금성과 이희문은 여성 장르로 여겨질 정도로 여성이 주류인 민요 가창자 가운데 드문 남성 가창자라는 점 외에도 경기민요 이수자며 나이도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단 한 분의 스승도 겹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고금성은 안비취, 전숙희, 김혜란, 최창남 사사, 이희문은 고주랑, 이춘희, 김광숙, 이금미, 김호성, 박상옥 사사), 고서(古書)에서 막 나온 듯한 한 사람과 개성으로 무장한 ‘민요의 이단아’라는 이미지로 민요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틀간 진행된 공연에서 관객은 한 공연을 통해 12곡을 모두 감상하지만, 각 가창자는 하루에 6곡씩 맡아 이틀 공연을 통해 12곡을 모두 공연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1부 ‘애(愛)’는 <소춘향가>, <십장가>, <집장가>, <출인가>, <방물가>, <형장가>, 2부 ‘잡(雜)’은 <제비가>, <선유가>, <달거리>, <적벽가>, <유산가>, <평양가>로 구성되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한 공연에서 1부는 고금성과 이희문이 각각 독창자로 등장해 직접 장구를 치며 각 악곡을 소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2부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한 사람이 소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장구를 잡고, 두 사람이 함께 재담을 주고받으며 소리를 이어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서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두 남성 가객은 진지함과 재기발랄함을 넘나들며 오랜 ‘찐친’의 우정과 케미로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관객들을 유쾌하고 친절하며 다정한 두 예술가의 친밀한 사랑방으로 초대했다.
격의(隔意)없이 격조(格調)를 담다
잡가는 민요 가창자들에게 학습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지만, 반복되는 구조와 즉자적 사설의 짧고 화려하며 친숙한 민요에 비해 긴 사설과 세련된 어법을 지닌 길고 장중한 장르로, 이수자 발표회 같은 공연이 아니라면 12곡 전체를 무대에서 들을 기회는 매우 드물다.
원래 완창은 판소리 전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무대에서 연행하는 것을 지칭한다. 경기 12잡가 전곡을 연창으로 부른다는 뜻으로 명명된 ‘경기 12잡가 완창’은 현대에 발명된 연행방식으로, 잡가의 음악적 깊이와 연행자의 공력을 무대에 올린다. 그런 점에서 잡가 완창은 예술가는 탐색(探索)하고 관객들은 탐미(耽美)하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이 공연의 또 다른 미덕은 남성 민요 소리의 탐색이라는 지점에 있다. 여성 스승에게 민요를 사사한 두 남성 가창자는 옛 음반에서 ‘결이 다른’ 남성 소리의 원형을 찾았다. ‘꽃같이 화려한’, ‘꾀꼬리 같은 기교의’ 여성 소리화된 민요의 전승된 소리를 씨줄로, “목구멍도 얼굴도 다 다른데 개성 있게 불러보고 싶은” 해석과 번역의 자신의 언어를 날줄로 삼아, 과거로부터 길어 올린 전통의 소리를 예술가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관객들은 판소리의 언어가 잡가의 언어로 변모되는 이야기로 시작해, 각각의 작품은 어떤 내용인지, 고금성과 이희문은 이 노래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잡가의 시김새, 성음, 발성, 음색, 기교, 호흡까지 음악 언어에 귀 기울이며 잡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잡가에 입문하는 노래인 <유산가>부터 제일 긴 노래인 <적벽가>까지, 고음으로 구성된 <평양가>에서는 고금성의 관록의 고제 소리와 이희문의 맑고 청아한 소리까지 구분해 감상할 수 있었다. 관객과 격의 없이 풀어낸 서사와 재담 속에서도 관객은 잡가의 예술적 격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얼터모던 동시대 잡가의 존재감
니꼴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주창한 얼터모던(altermodern)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다문화주의 시대에 서로 다른 복합적 시간들의 중첩(헤테로크로니, heterochrony, 다시간성), 탐험과 번역, 중심이 아닌 위치에서 발현된다는 특징을 갖는 대안적 모더니즘을 지칭한다(Nicolas Bourriaud, Altermodern: Tate Triennial, Tate Publishing, 2009). 즉 하나가 아닌 복수의 가능성, 하나의 경로 대신 다차원의 대안, 하나의 화석화된 역사의 시간 개념이 아닌 현재의 모든 차원과 방향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 전통예술은 타 예술장르에 비해 동시대성과 거리가 멀거나 심지어 동시대성이 결여된 예술로 여겨져 왔다. 특히 한국 전통음악의 본질주의적 접근은 원형의 권위를 통해 동시대적 연행에는 ‘훼손’이나 ‘왜곡’의 라벨을 붙임으로써 동시대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차단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얼터모던의 동시대성의 개념 위에서, 전통음악은 전승된 재래의 전통음악과 현대적으로 창작된 전통음악 양자를 통해 모두 동시대성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창작된 컨템포러리 음악만이 동시대 음악은 아니다. 전통음악도 당대 음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큐레이터이기도 한 이희문의 그간의 작업은 전통 레퍼토리를 당대에 호출해 동시대 음악으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었고, 고-이 경기잡가 완창은 그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당대 예술가의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 수행에는 당대 관객의 전통음악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업 또한 포함된다.
전통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번역과 해석을 통해 동시대 예술로서의 생명을 갖는다. 그런 차원에서 고-이 12잡가 완창은 전통의 외피를 입은 당대 예술가들의 도발적 작업으로, 당당히 당대의 예술임을 선언하며 시간이 중첩되는 얼터모던의 동시대 예술로 호명된다. 무엇보다 이 공연에서 두 예술가는 기획과 연행을 통해 그간 잡가/민요가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온 과정, 그리고 어떤 역사가 선택되고 배제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환기한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던져 온 한국사회에서 민요의 지위에 대한 질문과 그 지위의 복원 시도는, 전통의 전승자이자 큐레이터로서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다시 묻고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를 새로이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는 당대의 기악음악이나 창작음악에 비해 비주류로 위치했던 민요의 근현대 역사에 관객들이 눈을 뜨도록 초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제 소리를 지키며 전통의 전승자로서의 자리를 지켜온 고금성과 민요 셀러브리티로 당대 민요의 동시대성을 앞장서서 주창해온 이희문이 구성하는 구심력과 원심력의 긴장과 조화 또한 이 공연의 무게를 더한다. 두 사람의 사랑방은 유쾌했으나 결코 가볍지 않았다. 두 사람의 오랜 행보가 지켜온 시간의 무게에 동시대 관객이 화답한 공연으로 기억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