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홀한 입지, 국악로의 역사적 무게를 잇다
2016년 9월 1일, 서울돈화문국악당(이하 ‘돈화문국악당’)이 개관했다. 당시 개관 축사에서 가야금 명인 황병기(1936~2018)는 이곳을 일컬어 ‘황홀한 입지’라는 단어를 썼다. 돈화문국악당이 자리한 곳은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와 조선성악연구회, 그리고 해방 후 국립국악원이 자리했던 국악의 심장부다. 또한 수많은 ‘인간문화재’들이 제자를 길러낸 ‘국악로’의 역사적 무게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황홀한 입지’라고 했던 것이고, 이는 또한 당시 국악계의 어른들의 커다란 바람을 내포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큰 극장에서 다소 요란스럽게 펼쳐진 공연의 성과와 한계를 두루 알고 있는 분들로서는 이곳만큼은 ‘품격의 국악’을 소통하는 장소로 지속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국악계의 어른들과 전통음악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애호가들은, 국악의 본질이 축소되거나 왜곡된 것에 대한 걱정을 밑바탕에 깔고 이곳이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격조 있는 ‘품격의 국악’을 소통하는 장소가 되길 갈망하며 이 공간의 성격을 격 있게 잘 유지하길 바랐다.
10주년을 맞은 지금, 돈화문국악당은 그 바람대로 국악의 본질을 격 있게 유지하며 ‘작지만 큰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0년의 축하 인사를 마땅히 받아야 할 극장이며 그것은 단지 국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품격 있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해 온 알찬 콘텐츠의 힘이다. 특히 2025년부터 컬쳐브릿지가 운영주체가 되었는데, 돈화문국악당이 그간 성공한 브랜드를 잘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공연콘텐츠를 신중하게 계발해서 알리는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돈화문국악당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을까? 돈화문국악당이 지켜야 할 공연장의 성격은 무엇인가? 돈화문국악당의 탄생은 국악의 ‘역사적 거점의 부활’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국악의 ‘정체성 회복’과 연결된다. 국악의 정체성 중의 하나로서 ‘자연 음향 중심’의 ‘고품격 국악 전문 공연장’을 지향한 것이 돈화문국악당이다. 그간 우리가 간과했던 연주자의 숨소리와 악기의 미세한 울림까지 관객에게 직접 전달되는 자연 음향(Unplugged)을 지향했다.
21세기형 율방(律房), 자연 음향으로 빚은 소통의 무대
이런 공연장의 성격은 ‘산조대전’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 산조대전은 매년 예술감독을 달리하면서, 우리 음악 산조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매우 잘 보여주었다. 올해는 대금 명인 김상연이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우리 시대 최고 명인의 산조를 접하는 것을 비롯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신인이 ‘산조대전’에 합류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가야금, 거문고 등 산조가 가진 기악 독주곡의 예술적 극치를 두텁게 쌓아 올린 것이다.
돈화문국악당과 같은 곳을 예전에는 율방(律房)이라고 했다. 지역마다 율방이 있었고, 여기서 풍류로 소통을 했다. 여러 곳에서 초청한 음악을 들었고, 귀명창들은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그것은 율방을 찾아온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을 추는 율객(律客)이 자신의 예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의 수많은 공연장 중에서 예술가와 시민이 가장 근거리에서 만나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돈화문국악당이기에, 많은 예술가들에게 돈화문국악당은 ‘가장 두려우면서도 가장 오르고 싶은 무대’로 자리 잡았다.
돈화문국악당은 예전 율방이 그렇듯이, 담소가 이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20세기의 국악인들의 삶과 예술은 ‘운당여관 음악회’를 시작으로 해서 ‘일소당 음악회’로 이어지면서 공연의 질과 내용의 밀도를 높였다. 송현민 예술감독의 진행으로 명인들의 삶과 예술을 사진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토크콘서트는 예전 조선에서 일제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율방(律房) 문화’의 성격을 잘 이어온 공연으로서 여타 어떤 공연장의 콘텐츠와도 차별이 된다.
‘일소당 음악회’는 그 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스승의 스승’을 알게 해주고, 그를 통해서 50년 전에서 100년까지 전통음악계의 공기를 느끼고 숨 쉬게 해주었다고 극찬하고 싶다.
과거 서울의 극장들은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동양극장에서 공간사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역할은 숨어 있는 우수한 존재를 예술적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21세기의 ‘돈화문국악당’은 20세기의 ‘공간사랑’과 연결된다. 1980년대의 공간사랑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숨은 명인을 중앙무대에 초대해서, 그분의 예술을 품격 있게 자리하는 데 기여했다. 창무극의 공옥진이 그랬고, 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이 그랬고, 서도소리와 서도춤의 양소운이 그랬다. 돈화문국악당 역시 지역의 숨은 명인을 발굴해 그 가치를 두텁게(敦)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돈화(敦化)’의 사명, 전통의 두께로 시민의 삶을 도탑게
돈화문국악당이라는 공연장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돈화문국악당의 키워드는 ‘돈화(敦化)’이다. 이는 『중용(中庸)』 제30장에 나오는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소덕천류 (小德川流), 대덕돈화 (大德敦化). 즉, “작은 덕은 시냇물처럼 흘러 만물을 적셔 기르고, 큰 덕은 두텁게 만물을 변화시켜(敦化) 천지의 화육(化育)을 돕는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서 공연장의 존재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돈화문국악당은 전통의 ‘두께’를 보여주고 만들어가는 공연장이다. 그리고 그 ‘두터운 소리’가 시민(관객)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삶의 근본적인 변화(敦化)에 기여해야 한다. ‘도탑다’와 ‘두텁게 한다’는 뜻을 담은 ‘돈(敦)’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변형시키다’는 것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더욱 ‘도탑게(두텁게)’ 만드는 힘이다.
이런 의미에서 돈화문국악당은 단지 융합과 실험의 인큐베이팅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국악계에서는 ‘실험과 융합’, 인큐베이팅과 플랫폼이라는 이름이 무소불위의 우선순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화를 반대하기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예술의 본질이 너무도 쉽게 간과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음향장치와 영상장치 등 디지털의 힘을 빌려야 하는 공연은 자연음향을 지향하는 돈화문국악당과 전혀 맞지 않다.
플랫폼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이 없다는 것과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플랫폼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간과하는 것은 아니나, 결코 예술에서의 플랫폼은 과정일 뿐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예술을 매개로 해서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어야 한다. 특히 ‘돈화’(두터운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돈화문국악당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
돈화문국악당은 우리 시대의 율방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 애호가들이 모여서 함께 즐기는 ‘21세기형 율방’으로 거듭나야 한다. 돈화문국악당의 10년을 돌아보면 이 공연장에서 올린 작품 중에는 우리 음악의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시민들에게 ‘삶과 예술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연결해주는’ 동시대의 작품이 분명 존재했다. 앞으로 돈화문국악당은 이러한 작품을 더욱 계발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가무악희(歌舞樂戱)의 조화로운 완성이다. 서울의 중인 이상의 지식층이 사랑했던 노래(歌)를 돈화문국악당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콘텐츠로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다. 또한 집단 예술로 치부되던 연희(戱) 속에서 ‘개인놀이’의 정수를 뽑아내 돈화문국악당만의 밀도 높은 콘텐츠로 풀어내야 한다. 2인의 출연만으로도 전통예술의 완성도를 보여준 ‘일무일악’이 그 훌륭한 참고가 될 것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왕의 거처 바로 건너 ‘황홀한 입지’에서 10년의 훌륭한 성과를 만들었다. 앞으로 10년은 어떠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예술의 큰 덕으로 시민의 삶을 도탑게 만든다’는 사명을 더욱더 새겨야 한다. 존재하는 것 곧 ‘전통’을 통해서 더 도탑게 만드는 것, 곧 ‘동시대의 전통’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앞으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행복한 숙제이다.
| 윤중강 | |
| 문화평론가이자 국악평론가로, 판소리·산조·민속악 등 전통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비평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강의와 집필, 공연 해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확장해왔다. 또한 주요 문화예술기관의 자문 및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며 국악 담론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 윤중강 |
| 문화평론가이자 국악평론가로, 판소리·산조·민속악 등 전통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비평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강의와 집필, 공연 해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확장해왔다. 또한 주요 문화예술기관의 자문 및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며 국악 담론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