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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봄
PEOPLE
피플┃ 그들은 추억이라 했고 우리는 역사라 불렀다
일소당 음악회 예술감독 송현민
김일송


‘일무’ 같은 이른바 줄춤을 뜻하는 ‘일(佾)’과 풍류를 뜻하는 ‘소(韶)’를 따 ‘춤과 음악이 있는 집’이라 이름 붙여진 일소당(佾韶堂). 매년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새해 첫 문을 여는 이 기획 프로그램에는 사실 우리 음악사의 아픈 단면이 새겨져 있다. 일소당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왕직 아악부(李王職 雅樂部)’의 공연장 이름이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황실의 권위를 격하하기 위해 설립한 이 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궁중음악의 전승과 연주를 도맡았던 유일한 창구였다. 치욕스러운 시대의 산물이었으나, 우리 음악의 명맥이 위태롭게 흐르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던 셈이다. 

 

지명의 향수에서 시대의 상징으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대표 기획 프로그램인 ‘일소당 음악회’는 과거 ‘일소당’이 가졌던 장소성과 역사성 위에서 기획되었다. 2022년부터 이 프로그램의 키를 잡은 송현민 예술감독은 바로 이 복잡한 장소성과 역사성 위에서 ‘일소당 음악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종로’와 ‘일소당’이라는 지명과 공간의 이야기를 예술가들의 기억을 빌려 관객에게 설명해주는 비중이 컸어요.❞

실제로 2022년 첫 공연에서는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최중웅이 국악사양성소 재학시절의 시간을 들려주었고, 아쟁연주자 김영길은 아쟁의 거장 박종선과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거문고산조 전승교육사 김무길은 일소당 인근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에서의 학창 시절을 회고했고, 정가 가객 김영기는 국악사양성소에서 재직했던 아버지 김용의 이야기를 꺼냈다. 피리 명인 한세현은 배고프던 시절 종로 일대 요정에서 민속음악을 이어가던 일화를, 대금 명인 원장현은 박귀희 명창이 운영하던 운당여관에서의 시간을 들려주었다.

첫 해의 호응을 바탕으로 ‘일소당 음악회’는 돈화문국악당의 대표 기획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에는 정가 명인 이동규가 당대 최고의 가객이었던 부친 이병성의 일화를 전했고, 삼현육각 예능보유자 최경만과 서도소리 명인 김광숙은 국악예술학교 시절을 회고했다. 판소리 고법 명인 김청만 역시 종로에서 마주했던 명인·명창들의 풍모를 풀어놓았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며 음악회도 조금씩 변화했다. 일소당과 종로의 기억을 직접 간직한 세대가 줄어들면서, 프로그램은 특정 장소의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전통예술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상징적 기획물로 변화하였다. 일소당의 추억이나, 종로와 직접적 인연이 없어도, 한국의 예술과 오랜 시간과 함께 해온 그들만의 ‘기억’과 ‘음악’을 나누는 자리로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종로’라는 장소성이 출발점이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특정 지명에 대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전통예술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는 장으로 넓어졌어요. 예인 각자의 기억과 예술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구조로 바뀌었죠.❞

 

사진첩을 함께 넘기는 공연

‘일소당 음악회’는 일반적인 연주회와는 조금 다르다. 명인의 기예를 감상하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한 예인의 삶과 시간을 듣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연주와 대화가 함께 진행되는 토크 콘서트 형식을 취하지만, 그 중심에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일화들이 놓여 있다. 이 변화는 2024년부터 더욱 분명해졌다.

❝2022년, 2023년 두 해 동안 여러 명인들과 무대를 만들면서 관객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보게 됐어요. 그 순간은 연주 자체보다도 명인이 자신의 기억을 꺼내는 때였어요. 그래서 점점 이야기의 비중을 늘리게 됐죠. 예전에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대화를 넣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졌다고 할까요.❞

관객은 단순히 연주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예인이 지나온 시간을 듣는 순간, 음악은 전혀 다른 울림을 갖게 된다. 명인이 자신의 삶을 펼쳐놓는 순간, 관객은 한 예인의 개인사뿐 아니라 그 삶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환경까지 함께 보게 된다. 한 개인의 삶 속에 스승과 제자, 교육 제도와 시대적 환경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음악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오래된 사진에 있다. ‘사진첩을 함께 넘기는 공연’은 ‘일소당 음악회’를 다른 음악회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무대 위에는 악기와 소리뿐 아니라 예인들의 옛 사진이 함께 놓인다. 관객은 그 사진을 통해 음악이 태어난 시간과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누가 보면 도둑인 줄 알 거예요. 사진첩을 전부 꺼내서 몇십 년치 사진을 다 뒤져보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그분들도 오랫동안 펼쳐보지 않던 사진을 다시 꺼내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시죠. 우리는 그 사진들을 촬영하거나 스캔해 가져와, 기존의 자료들하고 비교해요. 그러면서 중요한 사진만 다시 골라 음악회의 흐름을 만들어요.❞ 


 

이 무대에 등장하는 사진 대부분은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개인 기록들이다. 유년 시절의 모습, 스승과 동료들과 함께한 순간, 수학하던 시절의 풍경들. 이런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하나씩 펼쳐질 때 공연장은 자연스럽게 한 시대의 풍경으로 채워진다. 그 순간, 관객과 예인의 관계도 달라진다. 그는 그 순간을 ‘감상이 관계로 바뀌는 순간’이라 표현한다. 그 순간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다. 예인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 공연의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무대

그는 이 프로그램의 기획뿐 아니라 공연의 사회와 해설도 맡고 있다. 공연의 사회자로 무대에 서며 그는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을 유지하려 애쓴다고 한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따라가기보다, 예인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설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해설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객의 귀에 길을 내는 안내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아, 저 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도록 돕는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예술감독으로서의 방향 설정이다. 한 시대를 살아온 예인에게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송현민은 바로 그 지점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예술가가 축적해온 시간, 예를 들어 전승의 계보, 교육의 궤적, 시대와 함께 변해온 방식을 중요하게 보려고 해요. 전통예술은 작품만 남는 예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남기는 예술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연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같은 산조라도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에 따라 소리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소당 음악회’가 전통예술계에서 수행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기록이다. 무형유산의 특성상 문헌만으로는 전승의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기록의 문제예요. 구술 채록이나 기록화가 중요한데, 의외로 전통예술계에는 체계적인 아카이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소당 음악회’는 공연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구술 기록을 만드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 음악회는 연주이면서 이야기이고, 동시에 사진 기록이기도 하다. 소리와 말, 그리고 이미지가 한 자리에서 만나며 한 예인의 시간이 천천히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일소당 음악회’는 공연인 동시에 사라져가는 무형유산을 기록하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문자로 남는 기록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식의 기억이다. 이와 관련해 그의 일화를 대신한다. 2024년 지성자 명인과 함께했던 무대에 대한 소회다. 

❝오랜 세월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명인의 고생담이 이야기 구석구석마다 놓였습니다. 탄탄대로의 삶이 아니었고, 눈물꽃이 피어나는 길가로 조심스레, 하지만 대담하게 걸어온 인생이었죠. 공연의 마지막에 선생의 젊은 시절 녹음을 마무리로 들어보는데, 선생의 노래가 들려오는 가운데 대화를 나누는 게 참 좋더군요. 그래서 물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렇게 고생을 하시면서 가야금과 함께 살아온 인생인데,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으실 겁니까?”라고요. 중간에 잠시 생각을 하시는데, 그 사이로 선생의 음반 음악이 들려왔어요. 잠시 후 “그럼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을 겁니다”라고 답변하셨어요.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린 공연장을 채운 음악을 조용히 들었어요. 관객들도 침묵을 지키면서, 그 예인의 다짐과 확신을 존중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냥 감동 받았던 순간,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일소당 음악회’가 남기는 것은 한 편의 연주가 아니다. 한 예인이 지나온 시간, 그 시간을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의 공기까지 함께 기록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난날의 추억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아카이브가 될 때, 그것은 박제되지 않은 한국 전통예술사의 단단한 역사가 된다. 명인이 사진첩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순간, 우리 전통예술사의 한 페이지가 작성된다. ‘일소당 음악회’가 계속 이어져야 할 이유다.​ 

김일송
공연문화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시작으로,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국제교류 정보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희곡, 평론, 아카이빙 등 공연 관련 도서 전문 출판사인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발레단 소식지 보내드림 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월간공연전산망>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김일송
공연문화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시작으로,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 국제교류 정보 플랫폼 <더아프로>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희곡, 평론, 아카이빙 등 공연 관련 도서 전문 출판사인 책공장 이안재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발레단 소식지 보내드림 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월간공연전산망>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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