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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봄
CHOICE
초이스┃소리 그리고 공간, 해체와 재조합의 횡단적 미학
리퀴드사운드 < Vocal Space ‘조각눈’ >
정우정


 

소리는 더 이상 무대 위 고정된 연주자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나 고귀한 그 무엇이 아니다. 물리적인 부피를 가진 채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이자, 관객 감각의 체계 안으로 침투하게 될 일종의 날 선 진동이다.

리퀴드사운드의 작품 궤적은 ‘경계의 탐색’이라 할 만하다. 2015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릴레이션>(2015)을 기점으로 <촉각콘서트>(2016), <동서고악 음으로 통하다>(2017), <긴>(2021), (2023), <초임계유체>(2023)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장르 간의 충돌과 화합이라는 화두를 집요하게 밀어붙여 왔다. 이들의 작업은 전통을 단순히 동시대적 감각으로 치장하거나 장식적으로 재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른 시간성과 미학적 체계가 부딪칠 때 발생하는 긴장과 균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감각의 층위를 포착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번 신작 <보컬 스페이스(Vocal Space) ‘조각눈’>(6월 5~6일, 서울남산국악당 초연, 연출 이인보)은 이러한 탐색의 연장선에서 소리와 공간의 관계를 보다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판소리’라는 견고한 전통의 양식을 빌려와 소리가 가진 물질적 속성에 주목하며, 그것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변이하는지를 실험한다.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날 선 소리의 파편들을 경험하는 행위로서 그 실재를 대면하게 만드는 시도이다. 이에 대해 이인보 연출가와 일문일답을 통해 전한다.

소리의 순수한 뼈대만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 <보컬 스페이스(Vocal Space) ‘조각눈’>은 어떤 작품인가.
“판소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판소리의 정수인 ‘눈대목’*을 서사적 맥락에서 분리해, 하나의 독립된 음향적 개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판소리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간의 예술’이었다면, ‘조각눈’은 그 시간 속에 박혀 있던 핵심을 파편화하여 공간 속에 배치하는 ‘공간의 예술’로서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동안 판소리가 고수의 북장단과 함께 긴 서사를 축적해 가면서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완결된 대목을 해체하여 지각을 탐색해 보는 것이다.”

- 그 ‘공간’ 안에서 소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관객과 만나게 되는가.
“우리는 판소리를 하나의 완성된 드라마로 전달하는 대신에 분절된 소리 단위들이 무대라는 좌표 위에서 어떻게 진동하고 충돌하는지에 집중했다. 전체적인 음악은 작곡가 주준영이 맡았고, 이혜진(판소리), 신유진(판소리), 구민지(정가)가 참여했다. 미세한 농음의 떨림이라던지, 음높이에 따라 공간적 배치를 하기도 하고, 시김새들의 표현 방식을 실험해 보기도 했다. 관객은 선형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대신에 공간 곳곳에 흩어진 소리의 조각들 사이에서 소리를 마주한다.”

- 결국 이 작품은 근원적인 소리의 부피를 감각하게 만드는 무대인가?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판소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소리’라는 물리적 실체의 경이로움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무대에서 소리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물질적 실체로 존재한다.”

- 전통을 다르게 보는 방식의 작업들은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차이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서사를 덜어낸 자리에 남은 것은 소리꾼의 날 선 호흡, 거칠거나 때로는 부드러운 질감, 공간의 벽면에 부딪혀 산란하는 잔향들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소리를 해체하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덜어내어(10%, 50% 씩의 실험들을 해보고자 했다!) 소리의 순수한 ‘뼈대’만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했다. 관객은 이 낯선 소리의 풍경 속에서 이야기가 아닌 소리의 밀도와 무게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판소리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소리라는 생생한 현상과 ‘대면’하는 감각적 사건에 가깝다.”

- 왜 낯설음, 해체, 이런 시도들을 하는 것인가?
“전통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나조차도 때로는 전통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나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아름다움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곤 했다. 그래서 익숙함이라는 막을 걷어내고, 해체와 낯설게 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싶은 것 같다. 관습적으로 전해오는 서사와 형식을 부수어냈을 때, 비로소 소리 그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프로젝트는 대중에게 친절한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예술의 원형과 직접 부딪히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일종의 ‘정직한 불편함’ 같은 걸 제안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대의 변화를 통한 음악의 전개
- 리퀴드사운드의 무대 디자인도 주목된다. 이번 작품에서 선보이는 원형 구조의 무대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휘순 작가가 설계한 이번 무대는 소리를 가두는 그릇이 아니라 소리의 움직임을 가시화하는 일종의 ‘유동적 좌표’다. 관객과 연주자가 동일한 원형 층위 안에 존재하며, 소리의 이동과 지향성을 공간과 몸으로 체감하도록 설계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음의 높낮이와 공간의 수직적 위치를 물리적으로 연결한 시도다. 고음역의 소리가 나올 때 실제 공간의 상부에서 파동이 시작되게 함으로써, 소리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청각 정보를 넘어 공간을 점유하고 움직이는 입체적 요소로 경험하게 하려 했다.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들이 재배열되며 공간의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기도 하는데, 관객의 감각 또한 고정되지 않고 소리의 궤적을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을 의도했다.”

- 무대의 유동적인 설정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각적, 공간적 설계가 음악의 구조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물리는가.
“이번 작업에서 음악과 공간은 별개의 요소가 아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의 농음이 지닌 떨림의 폭을 공간의 수평적 이동으로 변환하거나, 정가의 맑고 곧은 발성을 수직적인 층위로 배치하는 식이다. 무대 디자인이 소리의 경로를 시사하면, 음악은 그 경로를 따라 관객의 지각을 자극한다. 결국 시각적 공간의 변화는 곧 음악적 전개가 되며, 관객은 눈으로 보는 무대의 변모를 귀와 피부로 동시에 감각하게 된다. 이는 소리와 공간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그동안 리퀴드사운드는 여러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이번 작품은 이전 작업들과 어떤 점에서 이어지고 또 달라지는가.
“리퀴드사운드의 그동안 작업이 서로 다른 언어들이 충돌하고 섞이며 발생하는 ‘감각의 확장’을 탐구하는 일종의 수평적 이동, 또는 실험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판소리라는 수직적 과정 속으로 깊게 들어가고 싶었다. 판소리라는 익숙한 형식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다양한 소리의 층위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배열해 보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전 작업들과 연결되면서도 또 다른 방향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 전통은 이어가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해체와 계승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전통음악은 나에게 모국어와 같은 존재다. 그것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거나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장 익숙하게 사용해 온 언어가 전통음악일 뿐이다. 내가 이 언어를 만났을 때 다행히 좋았고, 그것이 우리의 창작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잠시 파리에 머물며 그곳의 언어를 체득했듯이 또 다른 매력적인 언어를 만난다면, 그 역시 우리의 표현 속에 들어올 것이다. 결국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사수하는 투쟁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삶을 살아내는 과정 그 자체다.”


리퀴드사운드가 전통을 대하는 방식, 즉 ‘해체’는 곧 ‘부정’이 아닌 ‘심층적 이해’이다. 서사라는 거대한 줄기에 가려져 있던 농음과 떨림, 장단 사이의 정적, 소리꾼의 몸이 만들어내는 비정형적인 음향적 질감들과 현대음 사이의 횡단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가.

공연의 본질적 기능은 소리가 관객의 지각 체계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보컬 스페이스 ‘조각눈’>에서의 소리는 판소리의 서사를 해체하여 얻어낸 조각들로, 공간 내 각각의 좌표에 전략적으로 배치된다. 이 때 소리는 더 이상 무대 위 고정된 연주자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정보나 고귀한 그 무엇이 아니다. 이는 물리적인 부피를 가진 채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이자, 관객 감각의 체계 안으로 침투하게 될 일종의 날 선 진동이다.

 

​2026 리퀴드사운드
  • 일시 : 2026. 06. 20. (토)
  • 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
  • 문의 : 02.6358.5500

* 눈대목: 판소리 한 바탕(전체 이야기)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극적으로 가장 뛰어나고 인기가 있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절정의 대목
정우정
음악평론가. 전통음악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으며, 음악과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전통예술의 현대적 변화와 공연 현장의 미학적 흐름에 관심을 두고 비평과 연구의 시선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정우정
음악평론가. 전통음악과 문화연구를 공부했으며, 음악과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전통예술의 현대적 변화와 공연 현장의 미학적 흐름에 관심을 두고 비평과 연구의 시선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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