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천이 타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
“산조는 ‘국악의 꽃’이요, 가야금산조는 ‘꽃 중의 꽃’이다.” 황병기 명인(1936~2018)이 한 말이다. 산조 유파별 전바탕 연주가 본격적으로 이어진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 산조 여러 유파가 연주될 때 빠지지 않는 산조가 있다. ‘성금연류’와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다. 이 산조는 ‘최옥삼류’, ‘최옥산류’,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라고 불린다.
이렇게 부르는 명칭에는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이 산조를 타는 많은 연주자는 저마다 개성이 있고, 모두 출중한 연주 기량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연주자에 의해서 이 산조는 가장 중요한 가야금산조의 하나로 부각되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정회천이다.
이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들은 정회천 연주는 매우 생동감이 느껴지는 산조였다. 정회천이 타는 이 산조는 여러 번 들은 바 있다. 비교적 최근에는 2024년 8월 16일 전주세계소리축제 ‘산조의 밤’에서 들었던 연주였다. 이때의 연주는 함동정월 명인의 1980년대 연주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번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들려준 연주는 1970년대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시기는 함동정월 명인도 젊었고, 정회천은 청년의 활기가 넘치는 시기였는데, 정회천 명인은 마치 그 시기를 생각하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산조로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불과 같은 에너지를 전달해 주었다. 그날은 마치 갑자기 밖에 비가 쏟아졌는데, 정회천의 가야금은 물의 기운을 불의 기운으로 모두 말려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정회천은 일찍부터 함동정월류로 이름을 알린 연주자다. 오래전부터 그의 연주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날의 연주를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정회천이 함동정월류를 얼마나 잘 타는가’라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회천은 이 산조를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앞에서 말했듯, 함동정월류를 잘 연주하는 사람은 많다. 각자의 시각과 음악적 감각에 따라 이 산조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많다. 그러므로 정회천만이 함동정월류를 잘 탄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정회천에게는 다른 연주자들과 구별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는 이 산조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산조를 이루는 네 가지 ― 가락·장단·성음·흐름
산조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가락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산조에는 적어도 네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락, 장단, 성음, 흐름이다. 가락은 무엇을 타는가의 문제다. 장단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문제다. 성음은 누구의 소리로 만드는가의 문제다. 흐름은 한바탕 전체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의 문제다. 이 네 가지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가락이 장단을 만나고, 장단이 성음을 만나며, 그 모든 것이 한바탕의 흐름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산조 연주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호흡이다. 가락과 장단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호흡이 없으면 산조는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산조의 긴 흐름을 어디에서 쉬고, 어디에서 밀고, 어디에서 풀어낼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산조에는 호흡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맥박이다. 호흡이 산조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생명이라면, 맥박은 산조를 앞으로 밀어가는 힘이다. 호흡이 길고 깊은 흐름이라면, 맥박은 순간순간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이다. 호흡이 없으면 음악은 메마르고, 맥박이 없으면 음악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회천의 연주에서 내가 느낀 것은 ‘호흡과 맥박이 동시에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스승에게서 배운 산조
정회천의 산조를 이야기하면서 김명환과 함동정월을 빼놓을 수 없다. 최옥산이 세상을 떠난 뒤, 최옥산제 산조를 직접 알고 있던 중요한 인물은 김명환과 함동정월이었다. 정회천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이 두 사람에게서 이 산조를 배웠다. 김명환에게는 장단을 배웠고, 함동정월에게는 가야금산조의 몸과 소리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것을 배웠기에 정회천의 산조에는 논리와 감성이 함께 있다. 산조는 악보만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아니다. 스승의 손을 보고, 소리를 듣고, 장단을 함께하고, 그 사람의 음악적 태도까지 받아들이면서 전해진다.
그래서 산조를 배우는 일은 가락을 배우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정회천은 젊은 시절부터 김명환과 함동정월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그들의 연주만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음악적 성격까지 접했다. 이것이 오늘날 정회천이 갖는 중요한 자산이다. 산조는 가락을 전하는 음악이면서 사람을 전하는 음악이다.
1970년대의 산조를 기억한다는 것
오늘날 많은 연주자가 함동정월류를 훌륭하게 연주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듣는 함동정월류와 1970년대의 함동정월류가 완전히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산조는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1960년대의 산조가 있고, 1970년대의 산조가 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산조가 있다. 같은 이름의 같은 유파라 해도 연주자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락의 배치와 호흡, 장단의 밀고 당김, 성음의 깊이, 한바탕의 흐름이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회천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사람은 1980년대 이후 자리 잡은 함동정월류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에 실제로 연주되었던 함동정월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회천은 그 시기의 산조를 직접 배웠고, 그 음악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시기의 산조를 기억하는 연주자로 이재숙(예술원회원)과 정회천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정회천이 타는 산조에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함동정월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의 함동정월류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정회천의 연주를 듣는 일은 한 명인의 연주를 듣는 일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산조를 다시 만나는 일이 된다.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산조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를 이야기할 때 내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이 있다. 이 산조에서 이른바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대목이다. 산조에는 각각의 유파를 특징짓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어떻게 타느냐를 보면 연주자가 그 산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듯한 대목은 특히 함동정월류의 역동적인 성격을 느끼게 한다. 평탄한 길을 달리는 말이 아니다. 자갈을 밟으며 말이 튀어 오르고, 다시 땅을 딛고, 또 앞으로 치고 나간다. 가락이 튀고 장단이 밀고 나가며 손끝의 움직임이 살아난다.
여기에는 호흡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다. 바로 산조의 맥박이다. 과연 이 대목을 누가 가장 잘 연주하는가. 이 글에서 굳이 그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함동정월류를 각자의 방식으로 잘 타는 연주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산조라도 어떤 연주자는 가락에서 강점을 보이고, 어떤 연주자는 장단에서 뛰어나며, 또 어떤 연주자는 성음이나 전체적인 흐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것이 산조의 매력이다. 다만, 이 대목을 들으면 정회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회천의 오른손과 왼손에는 오늘날의 연주자들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수법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방식의 손기술이 아니다. 1970년대 함동정월에게서 배운 음악적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면 ‘누가 더 잘하느냐’보다 ‘어느 시대의 산조를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물과 불, 바다와 산 ― 정회천은 불이고 산이다
‘최옥삼’과 ‘최옥산’이라는 표기는 모두 사용되어 왔다. 정회천은 특히 ‘최옥산’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 글에서도 그의 뜻을 존중하여 ‘최옥산제’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최옥산’이라는 이름을 바라보다가 산조를 듣는 또 하나의 감각이 떠올랐다. 바로 ‘산’이다.
평론가의 시각에서 보면 어떤 산조는 물과 같고, 어떤 산조는 불과 같다. 또 어떤 산조는 바다와 같고, 어떤 산조는 산과 같다. 물과 같은 산조는 흐른다. 가락과 가락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고, 장단과 장단 사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엇인가가 앞에서 끌고 간다기보다 음악 전체가 스스로 흘러간다. 바다와 같은 산조는 그 흐름이 더욱 넓고 깊다. 한 가락이 특별히 앞에 나서기보다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에서 방향을 바꾸었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게 펼쳐진다.
반대로 불과 같은 산조는 타오른다. 안에서부터 에너지가 생기고 어느 순간 불꽃처럼 튀어 오른다. 가락이 움직이고 장단이 살아나면서 음악의 에너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산과 같은 산조는 눈에 보인다.
음악의 덩어리가 분명하다. 가락의 윤곽이 있고, 장단의 골격이 있으며, 한바탕의 존재감이 크다. 산의 능선과 봉우리와 골짜기가 눈에 들어오듯 음악의 큰 덩어리가 눈앞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물과 산은 흐름과 존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와 산은 넓이와 덩어리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과 불은 에너지의 방향이 다르다. 물이 스며들고 흘러간다면 불은 치고 올라오고 번진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산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과 같은 산조가 있고 불과 같은 산조가 있으며, 바다와 같은 산조가 있고 산과 같은 산조가 있다. 이것은 우열을 가르는 구별이 아니다. 산조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를 바라보기 위한 하나의 구별이다.
내가 듣기에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는 물이나 바다보다는 산과 불에 가깝다. 가락의 덩어리가 분명하다. 음악의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그 덩어리 안에서 계속 에너지가 움직인다. 특히 ‘자갈밭에서 말달리는’ 대목에서는 그 성격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평탄한 길을 유유히 흘러가는 물의 움직임이 아니다. 자갈을 밟으며 말이 튀어 오르고, 다시 땅을 딛고, 또 앞으로 치고 나가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정회천을 불의 연주자이자 산의 연주자라 부르려 한다. 정회천의 산조에는 산처럼 큰 덩어리가 있다. 가락의 존재감이 분명하고 한바탕의 골격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산은 가만히 서 있는 산이 아니다. 그 안에 불이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가 있다.
앞에서 말한 산조의 두 요소, 호흡과 맥박도 여기에서 만난다. 산은 호흡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큰 덩어리와 긴 흐름이 있다. 불은 맥박이다. 순간순간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있다. 정회천의 특별함은 바로 이 둘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산처럼 존재하면서 불처럼 움직인다. 산조를 잘 탄다는 것은 수법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가락을 알고, 장단을 알고, 자기의 성음을 만들고, 한바탕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호흡과 맥박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정회천에게는 그것이 있다. 그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를 단순히 잘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산조가 지나온 한 시대의 호흡과 맥박을 기억하는 연주자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동정월 명인’을 한 모습으로만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1970년대의 함동정월류, 1980년대의 함동정월류, 1990년대의 함동정월류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귀 기울여 살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회천은 매우 중요한 연주자다. 그의 손에는 1970년대가 있고, 그의 산조에는 그 시대의 호흡과 맥박이 있다. 지금 정회천이 타는 최옥산제 함동정월류에는, 산처럼 남아 있는 한 시대와 불처럼 살아 움직이는 한 시대의 에너지가 함께 있다.
| 윤중강 | |
| 문화평론가이자 국악평론가로, 판소리·산조·민속악 등 전통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비평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강의와 집필, 공연 해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확장해왔다. 또한 주요 문화예술기관의 자문 및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며 국악 담론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 윤중강 |
| 문화평론가이자 국악평론가로, 판소리·산조·민속악 등 전통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비평과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강의와 집필, 공연 해설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가치와 의미를 확장해왔다. 또한 주요 문화예술기관의 자문 및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며 국악 담론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