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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가을
COLUMN
칼럼┃익숙한 것에 질문을 더하는 일
박민경


나는 전통연희를 오래 해왔다. 무대에 올라 북을 연주하고, 사람들과 공연을 만들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일은 익숙했다. 몸으로 익힌 것들이 있었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도 많았다. 그러던 중 연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기획’이라는 기술을 하나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공연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이해하고 직접 움직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획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여러 공연과 프로젝트의 기획과 운영을 직접 해보기 시작했다. 기획서를 써보고, 사람들과 일정을 조율하고, 예산을 짜고, 공연이 실제 무대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현장 경험이 쌓였다. 처음에는 하나씩 해낼 때마다 내가 기획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해볼수록 오히려 어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장면을 만들고 어떤 연희를 넣을지, 어떤 사람들이 함께해야 할지는 비교적 익숙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공연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필요한 공연인지, 관객은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막히는 순간이 많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공연으로 만드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아이디어를 하나의 기획으로 구조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연희자로서 가지고 있는 경험과 기획자로서 필요한 시선 사이에 아직 간극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단순히 현장 경험을 더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다른 기획자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질문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의 아이디어를 실제 공연으로 만들어가는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전농스쿨에 참여하게 됐다.

 

연희자에서 기획자로의 체질 개선

전농스쿨 1차 이론교육에서는 현재 전통예술 현장의 흐름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전문가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만들고 운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익숙하게 바라보던 전통예술을 조금 다른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전통을 과거의 것을 그대로 이어가는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내가 연희자로서 해오던 작업을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2차 멘토링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와 내가 만들고 있는 기획을 들여다보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준비하고 있는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멘토링은 기획안의 문장이나 형식을 고치는 것보다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왜 기획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멘토링을 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다. 우리 팀(연희점추리) 대표님이 내가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활동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며 ‘연희자에서 기획자로의 체질 개선’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들었던 말이었는데, 멘토링 과정에서 내 이야기를 설명하다가 문득 그 말을 꺼내게 됐다.

“저는 지금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체질 개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직접 입 밖으로 내고 나니 내가 그동안 기획을 하며 느꼈던 어려움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동안 기획자가 되려면 기획서를 잘 쓰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계속 채우려고만 했다. 하지만 내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만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표현할지를 생각하는 데 익숙했던 내가, 한 발 떨어져서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누구와 만나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했다. 연희자로서의 경험을 버리고 기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익숙하게 해온 방식에 새로운 시선을 더하는 과정이었다.

 

덜어내자 오히려 선명해졌다

공연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고 자주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왜 그 공연을 보러 갔는지,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보고 난 뒤 어떤 생각이 남았는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는 않았다. 공연을 보고 ‘재미있었다’, ‘좋았다’, ‘아쉬웠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멘토링을 통해 공연 관람 역시 기획자의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 공연을 볼 때면 왜 이 공간을 선택했는지, 관객은 어느 순간 집중하는지, 음악과 움직임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됐다. 공연을 보는 일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획을 위한 자료를 쌓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디어와 리서치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디어는 씨앗이고, 리서치는 그 씨앗을 키우는 물과 거름, 햇빛과 같다는 설명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디어에 새로운 것을 계속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기획이 완성되지 않는다.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는지, 그것을 뒷받침할 자료와 근거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준비하고 있던 <집 따라 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처음에는 남산골한옥마을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것을 담고 싶었다. 국사당, 물길, 여러 신들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흥미로운 소재가 떠오르면 하나씩 넣고 싶었다. 좋은 것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멘토링을 거치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여다보니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집을 지키는 신’과 ‘잊혀가는 공동체’에 가까웠다. 소재를 하나씩 덜어내자 오히려 작품의 방향이 선명해졌다.

굿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 과정에서 달라졌다. 동해안별신굿을 직접 관람하고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굿이 단순히 과거의 형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삶과 공동체를 이어가는 현재형의 의례라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신을 깨우고, 모시고, 사람들을 모으고, 안녕을 기원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려보내는 굿의 흐름 자체가 하나의 공연 구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 따라 온 것들>에서는 굿의 구조를 빌려 성주를 깨우고, 관객을 공간으로 초대하고,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을 만들고자 했다.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서울남산국악당의 공연장만을 공연의 배경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산골한옥마을에서 시작해 서울남산국악당으로 이어지는 이동 자체를 공연의 경험으로 만들고, 굿과 연희뿐 아니라 파쿠르라는 새로운 움직임까지 연결해 관객이 직접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구조를 고민하게 됐다. 

이런 변화에는 그룹 멘토링의 영향도 컸다. 다른 참여자들의 기획을 들으며 내 기획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기획들을 듣다 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더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창작 내용만 잘 만드는 것으로 기획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예산, 공간, 운영, 관객, 협력과 같은 현실적인 구조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나의 기획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만들까’를 고민했다면,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게 할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내가 연희자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 내가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배워야 할 것은 많다. 하지만 무대에 직접 서보고, 연습하고, 공연을 만들어본 경험은 기획자로서도 분명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만의 기획 방식을 찾아서

전농스쿨을 통해 기획의 정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은 막연하게 어려워하기보다 무엇을 확인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하기 전에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먼저 묻게 될 것 같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좋고 싫다는 감상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느껴지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기획 안에서도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아직 나는 연희자에서 기획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 여전히 서툴고, 때로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서툶을 단순히 부족함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필요한 것을 찾아 배우는 과정 역시 기획자가 되어가는 과정일 테니까.

나는 앞으로도 공연을 만들고 기획할 것이다. 내가 오래 해온 전통연희가 오늘의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 연희자로서 쌓아온 경험을 기획자로서 어떻게 새로운 공연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해보고 싶다.

전농스쿨이 끝난 지금도 답은 아직 많지 않다. 대신 이전보다 질문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겼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완성된 답을 갖는 것보다, 내가 가진 질문을 놓치지 않고 계속 확인해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희자에게 기획이라는 기술을 하나 더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획서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익숙하게 해온 공연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내가 가진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고, 하나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사람과 공간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아직 그 기술을 익히는 중이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이 보고, 듣고, 기록하고, 질문하면서 나만의 기획 방식을 만들어가고 싶다.

 

박민경
전통연희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획자이자 연희자로, 전통예술 창작단체 연희점추리의 기획과 한국민속촌공연단 연희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기획·제작·홍보 등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연희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며, 전통예술과 관객을 잇는 다양한 창작과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박민경
전통연희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획자이자 연희자로, 전통예술 창작단체 연희점추리의 기획과 한국민속촌공연단 연희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기획·제작·홍보 등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연희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며, 전통예술과 관객을 잇는 다양한 창작과 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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