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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가을
REVIEW
리뷰┃전통의 올곧은 전승, 예맥의 창조적 계승
청어람전통춤보존회 <유지숙·임정민의 춤>
김호연


한국에서 전통적 가치를 지닌 춤들은 근대 이후 새로운 의식 속에서 변용을 거듭하였다. 이는 제한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객과 만나며 변화를 보이기 시작함에 기인한다. 정재(呈才)는 궁중이나 교방에서 극장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종목의 전승과 양식의 정화(精化)를 이루었고, 민간에서 이루어지던 춤들은 대중과 접촉을 통해 무대예술로 재구성되거나 전문적인 예술로 양식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흐름은 무대예술로 구조적 변용인 동시에, 전승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하는 내재적 동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는 여러 지역의 춤 어법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유파로 정립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한국 전통춤의 지속적인 체화와 확장을 가능케 한 미학적 기틀이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선도적 예인들이 군집을 이루어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열어갔으며, 전통춤의 동시대적 전승을 주도하였다. 이 같은 전승 체제의 정립은 문화유산으로 인정되어 춤의 정신적 가치와 원형 보존을 견인하며, 자연스럽게 후학 양성과 전승 활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전범(典範)으로 이매방과 그의 뜻을 따르는 예인 집단을 들 수 있다. 이매방은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권번의 함국향에게 춤을 배우며 춤길에 들어선 이래, 이대조 등 여러 스승을 사사하여 승무, 살풀이춤 등 그만의 독보적인 아우라를 지닌 춤 세계를 구축한 한국 전통춤의 대표적 인물로 인식된다. 이러한 면모는 그가 전통춤을 독창적인 예술 양식으로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학 양성을 통해 한국 전통춤의 외연과 내공을 함께 다지며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해 낸 점에 기인한다. 이매방 사후 후학들 역시 주체적인 실천을 통해 춤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전통의 저변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그 미학적 계보를 굳건히 이어가고 있다.

 

 

두 축의 조화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진 <유지숙·임정민의 춤>(2026년 7월 31일)은 이매방 춤의 본질이 동시대 생명력과 만나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연행으로 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구현해 낸 소중한 자리였다. 이는 이매방과 진유림, 그리고 그의 제자들로 단단히 이어지는 전수일맥(傳授一脈)의 예맥(藝脈)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현현(顯現)하는 미학적 실상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규모의 화려함보다 묵직한 실천적 춤사위가 어떻게 깊은 예술적 울림으로 응축되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무대였다 할 수 있다.

이번 무대는 청어람전통춤보존회가 이매방 춤의 원형을 굳건히 지키는 한편, 끊임없는 재해석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예술적 지평을 넓혀 가고 있음을 유감없이 들어낸 자리였다. 더불어 이매방 춤의 다채로운 수용 양상을 확인하면서, 진유림에 의해 창안된 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4대에 걸쳐 이어져 온 예맥(藝脈)의 견고한 지속성을 구현한 무대였다. 그래서 이날 무대를 채운 ‘승무’, ‘연흥무’, ‘호남검무’, ‘살풀이춤’, ‘규장농월(장고춤)’은 전통의 본질을 지켜내는 축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축이 조화를 이루는 현장이었다.

먼저 진유림의 ‘승무’는 이매방 승무의 본질인 유려하면서도 엄격한 공력 그리고 맺고 푸는 북가락의 정수를 충실히 발현한 무대였다. 진유림은 국가무형유산 승무 및 살풀이춤 이수자이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일가를 이루었으며, 청어람전통춤보존회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춤의 올곧은 전승과 독자적 체화(體化)를 실현해 온 예인이다. 이러한 행보는 승무와 살풀이춤 등 전통춤의 엄정한 원형을 계승하는 동시에, ‘허튼 법고’를 비롯하여 ‘대신무’, ‘연흥무’, ‘규장농월’ 등 전통의 미학적 본질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확장해 낸 그의 창작 및 재해석 작업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의 춤 바탕은 이매방에 그 본원(本源)을 두면서, 전통의 체화 방식에 있어서는 동일함과 다름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독자적 미학이 드러낸다. 이는 음양의 조화, 은현(隱現)과 강유(剛柔)가 교차하며 선명하게 빚어내는 미학적 긴장감에 기인한다. 특히 승무의 법고과장은 염불과장에서 감정을 내면화한 구도(求道)의 과정을 거친 뒤, 응축된 에너지를 타악적 긴장감으로 대담하게 분출해 내는 서사적 절정이 핵심이다. 여기서 진유림은 이매방 춤 특유의 선 굵은 북가락 속에 담대함과 세밀함을 교차시키며 전통의 본원을 주체적인 춤 어법으로 완숙하게 구현해 냈다.

특히 이날 연행된 승무는 긴 호흡의 완판을 보여준 무대였다. 그런데 그동안 진유림의 춤이 겉으로는 화려함과 강건함을 드러내고 내부로는 이를 유동적으로 풀어내는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성향이 강했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유연한 춤선 속에 단단한 내공을 축적해 내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깊이를 인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기교를 드러내기 위한 화려한 동작을 절제하는 대신, 정교하게 다듬어진 호흡을 통해 내면의 기(氣)를 침착하면서도 깊이 있게 발현하여 고도의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무대의 완급을 조율하는 긴 장삼의 흩뿌림과 맺음과 풀림의 세밀한 동선 구성은 과시적 움직임 없이도 장내를 압도하는 묵직한 중량감을 확보한 것이다.

 

창조적 갱신의 과정

이어진 무대에서는 진유림이 창안한 ‘연흥무’가 유지숙과 임정민에 의해 연행되었다. ‘연흥무’는 전통춤의 본질적인 춤사위를 고스란히 내재한 채, 봄기운이 머금은 화사한 생동감과 서정적 정취를 가득 담아낸 춤이다. 여기에 부채가 선사하는 유연한 궤적을 따라 춤사위는 부드럽고 풍성하게 펼쳐지지만, 결코 흥에 휘둘리지 않고 밀고 당기는 완급의 호흡을 통해 깊은 절제미를 품어내는 매력도 존재한다.


 

이 무대에서 유지숙과 임정민은 서로 다른 예술적 표상과 개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춤의 합을 이루어냈다. 특히 두 사람의 춤은 과거의 춤사위를 단순히 답습하고 반복하는 이습(肄習)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춤의 본질적 가치와 미학적 특질 위에 동시대적 감각을 투영하여 단순한 재현의 차원을 넘어서는 각자의 독자적인 춤 언어를 구축해 냈다. 이는 전통의 전승이 보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의식과 조응하며 끊임없이 확장되는 창조적 갱신(更新)의 과정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호남검무’는 호남 민속춤의 풍류적 기운과 정교한 춤사위 그리고 검(劍)이 자아내는 고도의 역동성이 접목되어 검무 양식의 미학적 정수를 실증해 보이는 종목이다. 여기서 검의 예리한 선(線)은 춤에 서슬 푸른 긴장감과 기백을 더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그것이 고도의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둥글고 유연한 사위와 깊은 호흡의 감화(感化)가 필수적이다. 특히 선명한 완급의 대비와 맺고 끊는 절제미는 춤의 입체감을 점층적으로 끌어올리며, 끝내 호남춤 고유의 깊은 흥과 멋을 피워낸다.

노혜민, 반재희, 허윤서가 함께 펼친 장쾌한 3인무는 이러한 호남검무의 역동성과 조형미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 무대는 이매방에서 진유림 그리고 유지숙, 김정민을 거쳐 그 제자들에게 이어져 온 춤의 계보와 전승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세 무용수의 춤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가 축적해 온 호남춤의 미감과 춤사위가 오늘의 무대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임정민의 ‘살풀이춤’은 살풀이가 지닌 기미(氣味), 즉 맺고 푸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특한 기운과 맛을 고스란히 드러낸 무대였다. 살풀이춤의 미학은 단지 슬픔이나 한(恨)을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맺힌 것을 푸는 그 순간의 몰입 그리고 정서의 찰나 속에서 비로소 춤의 깊이가 완성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내면의 심리적 사유와 깊이 맞닿아 있다. 

임정민은 이 내면의 흐름을 강건한 내공으로 풀어내었다. 유려한 움직임 밑바탕에는 중심을 단단히 잡는 공력이 작동하고 있었으며, 맺고 푸는 호흡은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넘어 춤의 정서를 한층 겹겹이 확장시켰다. 특히 수건을 타고 확장되는 공간적 궤적은 신체 파동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단전에서 끌어올린 절제된 호흡을 통해 묵직한 정서적 울림을 남겼다. 이렇게 임정민의 ‘살풀이춤’은 단순히 한(恨)을 푸는 차원을 넘어, 내면의 사유와 정서적 긴장을 춤의 동력으로 전환해 낸 모습이었다.

 

풍류의 집약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유지숙의 ‘규장농월(장고춤)’은 맑고 경쾌한 장구 가락에 응답하는 다채로운 춤사위와 경기민요 노랫가락과 ‘창부타령’의 풍류가 집약된 무대였다. 특히 은근히 배어나는 교태미와 묵직한 내공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악가무(樂歌舞)가 지닌 미학적 격조를 독창적인 춤 언어로 완결해 내었다.

이 춤의 특징은 악기와 춤이 단지 박자를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대등한 호흡으로 교감한다는 데 있다. 특히 악기의 경쾌한 가락 속에서도 춤은 중심을 잃지 않으며,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어 관객의 본성을 자극한다. 유지숙은 이러한 조화 속에서 아늑하고 오묘한 깊이를 더하며, 깊고 그윽한 아름다움인 유현미(幽玄美)의 진수를 감각적으로 구현하였다.

여기에 발 놀음에서 발현되는 아기자기한 맛과 교태가 돋보이면서도 그 바탕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담아(淡雅)한 기품이 흘러넘친다. 악기의 경쾌한 가락 속에서도 춤은 중심을 잃지 않으며,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완벽한 합을 이루어 보는 이의 본성을 자극한 것이다.

  

이렇게 유지숙은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몸짓을 보여주는 춤꾼으로 기억할 수 있다. 내면의 본질인 ‘질(質)’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표현인 ‘문(文)’에 눌리지 않고, 외형의 꾸밈 역시 내면의 깊이를 가리지 않는 조화로움이 그의 춤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경쾌한 가락과 교태로운 발 놀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기품은 바로 이 문과 질의 완벽한 균형에서 비롯된다. 결국 유지숙은 화려함과 절제,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묵직하고 그윽한 춤의 본질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이처럼 이번 공연은 이매방에서 진유림 그리고 그의 제자로 이어지는 예맥(藝脈)이 전통의 원형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그 미학적 DNA를 어떻게 ‘창조적 전통’으로 발현되는지 그 정당성을 선명하게 보였다. 또한 이번 무대는 화려한 외식(外飾)보다 질박하면서도 진솔한 예도(藝道)의 마음이 돋보인 자리였다. 스승을 기리는 제자의 지극한 정성에서 비롯된 이 무대는 춤맥이 동시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전승되고 무대 위에 현현(顯現)하여 관객과 깊이 교감하는지 그 단단한 진정성을 마음으로 전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김호연
한국 공연예술을 공부하고 있으며 춤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근대무용사」, 「춤평론 어떻게 할 것인가」, 「춤현장의 감성적 발화」등의 저서가 있다.
김호연
한국 공연예술을 공부하고 있으며 춤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근대무용사」, 「춤평론 어떻게 할 것인가」, 「춤현장의 감성적 발화」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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