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이 꺼진다. 공연장은 고요해지고, 관객은 숨을 고른다. 무대 위에는 불을 담는 대형 그릇과 크고 작은 원형의 싱잉볼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반원형 무대 위의 원형 카펫, 원형의 징, 원형의 대북. 순환과 회귀를 상징하는 이 형상들이 관객의 상상력을 조용히 자극하는 사이, 첫 번째 소리가 시작된다.
6월 5일과 6일,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린 ‘국악위크’ 무대 〈사이...소리...숨...>은 그렇게 시작됐다. 음악가 원일이 기획·연출·작곡을 맡은 이 공연은 ‘사운드 리추얼 앙상블(Sound Ritual Ensemble)’이라는 낯선 형식을 표방했다. ‘화려한 연주’도, ‘창작곡 발표’도 아니었다. 소리가 생성되고 울리고 사라지는 그 과정 자체를 관객과 함께 의식(儀式)으로 치르는 무대였다.
달아나는 사람
원일이라는 이름 앞에는 늘 수식어가 붙는다. 피리와 타악 연주자, 작곡가, 지휘자, 연출가, 영화음악감독,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음악감독. 전국체전 개·폐막식 연출 등등. 그러나 그가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따로 있다. ‘달아난다.’ 그리고 ‘차이(差異).’
❝포획되지 않고 달아나서 거기서 벗어나 다른 걸 할 수 있는 능력, 이게 나한테 중요합니다. 특히 전통은 재현이 중심이 되는 음악일 수밖에 없어요. 전승과 전통 자체가 장악하는 힘이 워낙 큰 장르인데, 거기서 벗어나면서도 그 중심을 완전히 이탈하지는 않은—그런 영역에서 늘 살아온 사람이에요 나는.❞
그가 작년에 만든 사업자 이름도 ‘다라나(DARANA)’다. ‘달아난다’의 연음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도주선(ligne de fuite)’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도주는 도망이 아니다. 기존의 포획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능동적 운동이다(지난 4월 원일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이호철북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문예북흥’ 시리즈에서 <질 들뢰즈, 괴물의 사유>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원일은 앙상블 ‘바람곶’을 정리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에 합류하던 시절, 남산 인근 인문학 강학원에서 명리학을 공부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철학의 세계에 심취하게 된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99년에 이미 김지하 시집을 읽고 22분짜리 곡을 썼고, 동학사상에서 창작의 근거를 찾았고, 존 케이지의 작품 <4'33">에서 침묵이 빚어내는 소리에 깊이 매료되었다.
10년간 국제영성음악제인 화엄음악제의 총감독을 지내기도 한 그에게 이러한 탐구 여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보라고 볼 수 있다. 니체의 철학에서 받은 영감은 ‘디오니소스 로봇’이라는 예술적 실천으로 이르게 된다.
❝니체의 책을 읽다가 벌떡 일어났고 니체 책은 결국에는 작품까지 갔죠. 그 작품의 제목이 디오니소스 로봇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2022년도에 통영국제음악제 위촉으로 초연을 했어요. 백남준 선생을 디오니소스 로봇으로 보았습니다(웃음). 작년 가을까지 프랑스 영국 등 세계 11개국에서 계속 공연을 했고 올해 12월에 다시 가장 적은 인원 버전으로 하게 됩니다. 그게 저한테는 책을 읽고 나서의 영향, 저를 뼈 때린 후에 저의 리액션으로서의 작품이었죠.❞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철학을 만나면서 정당해지는 게 있어요. 나 혼자서는 공허한 진리가 되기 쉬웠던 것들에 철학적 언어가 붙는 순간—그 설득력이 달라지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냥 계속 해왔던 것 같기도 해요.”
시나위, 개념으로 불러내다
‘시나위’를 말하지 않고 원일을 이야기하는 건 홀연 그 맥락을 잃는다. 그가 오래도록 붙들어온 핵심 개념인 시나위는 전통 음악 양식으로서의 시나위가 아니라, ‘창작하는 연주자’들의 음악 원리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예술 철학 개념으로서의 시나위다. 그는 여기에 ‘신·아·위(神·我·位)’라는 개념을 덧대었다.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자아가 생성하는 영성이 살아있는 음악을 창조한다고 믿는 그의 신념이 응축됐다.
❝연주자 중심의 창작—그게 나의 콘셉트에요. 작품이 연주될 때마다 깨어 있는 연주자의 해석과 콘셉트에 따라 이전과는 또 다른 음악이 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시나위-하기’입니다. …… 작가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정당하게 드러내는 것, 그게 시나위죠. 음악 행위를 통해 결국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영성, 신명, 흥 같은 내면의 에너지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예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동안 그는 이 개념을 오케스트라 전체에 실험했다. 악보를 받아 연주하는 단원이 아니라, 스스로 창작하고 반응하는 연주자로서의 단원. 음악평론가 이소영은 이를 두고 “자생성을 잃고 죽어가는 음악을 ‘음악-인간-세계’라는 홀리스틱(holistic)한 관계성 속에서 다시 살렸다”고 평했다. 오케스트라와 시나위, 지휘자와 즉흥이라는 모순처럼 보이는 조합을 현실로 만들어낸 실험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사이...소리...숨...>은 그 실험의 어디쯤에 놓이는가. 들뢰즈의 리좀(rhizome)은 수평적 생성의 철학이다. 중심 뿌리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식물의 구조처럼, 위계도 지시도 없이 각 지점이 서로 연결되며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생성된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의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원일은 변신이 일어나는 ‘사이의 지대’에 주목하고 공연을 설계했다. 최소한의 약속만 주어진 열린 구조 안에서,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피어났다. 상호 얽히고 생성하며 그리고 사라졌다. 그것이 이 공연의 본질이었다.
소리의 숲을 일구다
이번 공연의 출발점은 명진스님의 싱잉볼 소리였다. 원일은 작업실에서 싱잉볼 소리를 듣다가 “진짜 내 몸이 다 울렁울렁 하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 원일은 그때까지와는 다른 무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도깨비 풍류’를 오래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건 또 너무 예측 가능한 원일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사운드 리추얼’이라는 콘셉트를 생각하게 됐어요. 들뢰즈도 ‘생성은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하잖아요.❞
공연 이름 ‘Cy_樂’은 중의적이다. 사이(間), 사이클(Cycle), 사이버(Cyber) - 전통과 현재, 가상의 층위를 가로지르는 동시대적 의례의 장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공연 구조는 ‘열림-흐름-공명-전환-머묾-회귀’의 여섯 단계로 설계됐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는 ‘칠흑’ 장면도 있다(하나의 감각을 제거함으로써 나머지 감각을 극대화한다는 발상은 예술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1999년 취리히에서 문을 연 암흑 레스토랑 ‘Blindekuh’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의 식사를 통해 미각과 촉각을 극대화하는 경험을 상시 제공하고 있다). 재현되는 전통 악곡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초연이고, 즉흥이 섞여 있다.
공연에는 원일의 피리·타악·사운드 메이킹을 비롯해 성악 김보라, 거문고 황진아, 생황 한지수, 그리고 명진스님의 싱잉볼이 함께했다. 이들은 저마다 색깔이 뚜렷한 창작자들이다. “소리보다는 이 사람들 자체를 주목해왔어요. 이번에 처음 함께하는 분들이고, 그 의외성이 묘한 화학 작용을 했죠.” 이번 조합은 의도적으로 낯선 ‘사이’를 만들어내는 선택이었다.
❝모두가 창작자이면서 연출자이면서 감독이기도 해요. 창작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나에게 국악은 뭐지? 전통은 뭐지?’라는 질문과 탐구의 과정, 그 결과물이죠.❞
듣는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은 낯선 시간 속에 놓였다. 다큐멘터리
명진스님은 싱잉볼 하나가 울리고 사라지는 잔향 속에서 조용히 말했다.
❝소리는 지나갑니다. 소리는 지나가지만, 소리를 들은 나는 남아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 존재합니다.❞
원일은 이 공연의 핵심 키워드를 ‘알아차림’이라고 말한다. 리추얼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관객들이 체험하게 하는 거죠. 뭘? ‘나는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걸 알아차리게 하는 것. 그걸 위해 하는 거예요.❞
공연을 본 한 관객은 “물리적으로 숲속에 내가 있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받았다”고 했고, 또 다른 관객은 “우주에 있다면 바로 이런 소리가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역동적인 명상을 경험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고요하지만 불덩이가 가슴을 치는 감각. “진흙탕에서 신음하는 정체불명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특별한 음향 효과를 제외하면 마이크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었다. 증폭이 멈춘 자리에 찾아온 정적은 소리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생태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에 가까웠다. 연주자의 손끝과 입술에서 발생한 파동이 객석의 숨결과 섞여 사라지는 찰나의 ‘사이’를 공유하는 순간, 관객은 구경꾼에서 의례의 공동 주체로 전환된다. 원일은 소리를 재현하는 대신, 소리가 생성되는 현장에 관객을 직접 끌어들이고 오직 ‘지금, 여기’라는 날것의 감각 속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 설계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지금, 이 소리와 함께 존재하는 나의 호흡은 어떠한가.”
그것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리추얼이었다. 원일이 이 공연 콘셉트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처음 실현하고자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는 통 자체가 너무 좋습니다. 빛과 소리, 이 두 가지로 승부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특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 콘셉트와도 딱 맞고요.❞
10주년, 차이를 만드는 자리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원일에게 의뢰한 것은 약 9개월 전이었다. 개관 1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시점, 국악위크라는 기념의 자리에 그를 부른 이유를 원일은 이렇게 해석했다.
❝차이를 원했을 것 같아요. 다른 극장이라면 명인전 공연이 상식적일 수도 있는데, 돈화문국악당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차이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하셨겠죠.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는 전적으로 나한테 맡기셨어요.❞
서울남산돈화문국악당 사업총괄이사 김영신 역시 “예술가의 예술 세계를 믿고 따라간다”며 기대를 표했다. 두 차례 공연은 모두 매진됐다. 원일은 이 콘셉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국 음악의 영성, 요가와 명상 수요 증가,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 돈화문국악당의 위치 등 상설 공연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음악을 잘한다는 것을 내세우는 공연이 아니라, 소리 자체가 가진 치유력으로 관객과 만나는 공연이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함께 경험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간절함이라는 연료
![[크기변환]_0909_DSC6062 2.jpg](http://sgtt.kr/assets/data/20260617043754_cwyclso.jpg)
원일은 새벽 3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고 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생각하고, 소리를 구상한다. 예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는 젊은 창작자들과 경쟁하고, 처음 만나는 다섯 명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무대를 만든다. 인터뷰 말미에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명했다.
❝나는 항상 간절해요. 신비의 순간을 만들고 싶죠. 공연장의 불이 꺼지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설레게 해줄 무언가가 눈앞에서 벌어지길 바라죠. 나는 잘 감동합니다. 누군가의 불안함이나 진심이 느껴지면 그냥 눈물이 나요. 이런 감정을 관객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건 간절해야 가능하거든요. 늘 간절함. 터뜨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광기도 있고요…. 후배 예술가들에게도 늘 말합니다. 살아남아야 한다고. 살아남고자 하는 그곳에 무기와 방법론과 간절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불이 꺼지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기관의 자리도, 안정된 직함도 아니다. 오직 그 간절함 하나로 그는 계속 달아나고, 계속 생성된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지금도 하고 있고, 그것이 분명한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때 가장 기쁩니다. 현장에 창작자로 산다는 것. 이렇게 연습하다가 또는 공연이 끝나고 혼자 살포시 무언가를 찾아가는 그런 느낌… 끊임없이 샘물을 파고 있거든요. 나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행동하고, 그게 되게 기쁜 거죠. 나한테 아직 그런 생각이 주어지는 것. 그리고 그렇게 달아나는 나. 그럴 때 또 안 보이는 지점이 보이거든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소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진동인지 여운인지 알 수 없는 것. 그것이 이 거대한 도시 서울의 한복판 돈화문국악당이라는 울림통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기적이 일어났을까. 이런 기적의 순간은 예측 가능한 시간에 오기도 하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의 목적지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다. ‘모든 시공간에 존재하는 바로 나 자신’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시작은 어디에나 있다. 언제 어디에나 준비되어 있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민기의 노랫말이 스쳐 지나갔다.
“… 밤과 낮 그 사이로… 이만치 떨어져 바라볼 그 사이로
… 비켜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생전에 김민기 선생은 원일을 “이 시대의 보배 같은 음악가”라고 말했다. 그 말이 새삼 다르게 들리는 밤이었다.
불은 꺼졌고,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 주홍미 | |
| 문화예술기획·컨설팅. 일상과 예술, 삶과 철학 사이의 ‘사이’를 즐겨 탐색한다. 경기문화재단 예술본부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 예술TV Arte 공연기획본부장 등을 지냈다. |
| 주홍미 |
| 문화예술기획·컨설팅. 일상과 예술, 삶과 철학 사이의 ‘사이’를 즐겨 탐색한다. 경기문화재단 예술본부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 예술TV Arte 공연기획본부장 등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