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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6 여름
REVIEW
리뷰┃답습 대신 과감한 자기표현과 창의적인 시도
서울남산국악당 <2026 젊은국악 단장 쇼케이스>
장지영


최근 국내 공연예술계의 공공 지원은 신진과 중견 사이에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청년예술가도약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일회성 제작비를 지급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험할 수 있도록 창작 전 과정을 함께 고민하는 인큐베이팅 방식이 주를 이룬다. 전통예술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서울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이다.

2018년 시작된 ‘젊은국악 단장’은 음악, 무용, 연희 등 전통예술 기반 청년예술가의 작품 개발을 밀착 지원하는 핵심 플랫폼이다. 초창기 경연 형태였던 이 사업은 현재 워크숍과 컨설팅을 통한 작품 디벨로핑, 쇼케이스를 통한 가능성 검증 단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전문가와 관객의 의견을 반영하여 최종 본공연 무대에 오를 팀을 가려내는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지난 5월 23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2026년 ‘젊은국악 단장’ 쇼케이스에는 그간의 치열한 과정을 거친 청년예술가 5팀이 참여했다. 팀마다 컨설팅과 워크숍을 거쳐 무대에 올린 15분 안팎의 쇼케이스는 단순한 결과 발표회가 아니었다. 이는 향후 60분 분량의 정식 본공연 제작으로 이어질 징검다리이자, 예술가들의 뜨거운 중간 실험실이었다.


흥겨운 잔치판으로의 도입
피리밴드 저클 <New Brass Breath>

피리밴드 저클은 피리, 저피리, 대피리, 태평소 등 전통 관악기를 주축으로 베이스, 드럼, 퍼커션을 결합한 한국형 관악 밴드다. 지난 2021년 결성된 이들은 창작 국악계의 대표적인 등용문으로 꼽히는 제16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2022년)와 제8회 청춘열전 출사표(2023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기량을 검증받은 팀이기도 하다.

이들이 다루는 피리는 크기는 작지만 음압이 세고, 애절함과 거친 야성미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어 국악 앙상블의 핵심 악기로 꼽힌다. 2010년대 후반부터 피리 고유의 매력을 살리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 피리 앙상블 단체들이 잇따라 등장했는데, 피리밴드 저클은 다소 엄숙하고 진지했던 선배 세대의 단체들과 확실한 차별점을 둔다. 이들은 록, 레게, 펑크 등 대중적이고 강렬한 서양의 리듬 속에 전통 선율을 감각적이고 유쾌하게 녹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저클은 ‘HORN’, ‘나침반’, ‘내게 사랑 평화’, ‘닐리’, ‘뿜뿜빠’ 등 총 5곡의 레퍼토리를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기본이 되는 향피리를 시작으로 무대의 바닥을 낮고 묵직하게 지탱하는 저피리와 대피리, 그리고 공기를 찌르며 화려한 리드를 이끄는 태평소의 호흡이 무대 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냈다. 정적인 여타 국악 앙상블과 달리, 멤버들이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재치 넘치는 퍼포먼스를 곁들인 덕분에 객석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잔치판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흔들리는 중입니다”
안무가 김성 <자람의 기술 RE:GROW>

김성은 한국 창작춤 분야에서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눈에 띄는 신인 안무가다. 현재 무용단 ‘Murmur Project(머머 프로젝트)’를 이끌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어휘를 탐색하는 그는 전통과 창작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의 ‘젊은국악 단장’ 도전이 두 번째라는 사실이다. 그는 지난 2025년, 식물이 땅에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자라나는 경이로운 과정을 인간의 삶과 성장에 은유한 솔로 작품 <자람의 기술>을 선보였다. 당시 무용의 몸짓에만 의존하지 않고, 춤과 소리의 긴밀한 협업 위에 연극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융복합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이 공연은 그의 이름을 평단과 관객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올해 김성이 들고 나온 무대는 전작을 한 단계 더 확장한 3인무, <자람의 기술 RE:GROW>였다. 작품은 ‘비행의 불시착’, ‘싹 틔우기’, ‘새싹들의 춤’, ‘함께 휘어지기’라는 네 개의 유기적인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부제인 ‘RE:GROW(다시 자라나다)’가 시사하듯, 안무가는 성장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흔들림’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흔들리는 중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청년 세대와 동시대 예술가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내면의 불안, 방황, 고뇌를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대지 위에서의 뿌리내림과 위태로운 흔들림,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일어서는 숭고한 과정이 전작보다 훨씬 더 거칠고 단단해진 무용수들의 춤선, 그리고 국악에 기반을 둔 밀도 높은 사운드를 통해 강렬하게 시각화·청각화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감정을 국악의 가사로
창작아티스트 오늘 <다들 그러고 삽니다>

창작아티스트 오늘은 민요와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두 명의 전통 소리꾼과 작곡가 겸 건반 연주자, 그리고 퍼커션 연주자가 모여 2019년에 결성한 국악 그룹이다. 이들은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감정을 국악의 가사로 솔직하게 치환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2000년대 후반부터 국악계 젊은 소리꾼들은 박제된 고전 서사에서 벗어나 일상의 해학과 풍자를 찾기 시작했다. 이는 인디 신에서 말맛과 일상성을 극대화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가수 장기하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후 젊은 소리꾼들이 구어체로 일상을 노래하는 경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창작아티스트 오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현대인들이 직면한 취업난, 사랑의 낭만과 아픔, 일상적인 스트레스 등의 무거운 주제를 위트 넘치는 대사 같은 가사와 대중적인 팝 사운드로 버무려내며, 평단으로부터 ‘국악팝’이라는 신선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Mr.척’, ‘남의 떡’, ‘표류병’, ‘오늘노래’ 등 4곡은 타이틀인 <다들 그러고 삽니다>를 완벽하게 대변했다. 특히 ‘Mr.척’에서 흘러나온 “여유 있는 척, 쿨한 척, 있는 척, 없는 척, 다 가진 듯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데, 이 양반 사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척’으로 버티는 사람이로다”라는 가사는 관객의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나머지 세 곡 역시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재치 있는 노랫말이 돋보였다.


두 이질적인 악기가 뿜어내는 대비와 조화
작곡가 박윤지 <맥(脈) - for Piano & Large Drum>

박윤지는 국악과 서양음악을 토대로 전통의 감각을 현대적인 무대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곡가다. 평소 전자음향과 미디어아트, 심지어 무용필름까지 결합하는 시도를 통해 자신의 작업 스펙트럼을 적극적으로 넓혀왔다. 

그가 이번에 선보인 <맥(脈) - for Piano & Large Drum>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서양 고전 음악을 대표하는 선율 타악기인 ‘피아노’와 국악의 원초적인 힘을 상징하는 ‘큰북’을 위한 작품이다. 박윤지는 무대 위에 피아노와 큰북을 정면으로 마주 세우는 시각적 배치를 통해, 두 이질적인 악기가 뿜어내는 대비와 조화를 대담하게 실험했다. 

‘시간의 춤’부터 ‘되감긴 시간’까지 총 6악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살아있는 생명의 박동과 흐름을 뜻하는 ‘맥(脈)’이라는 제목처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악기를 통해 소리의 흐름과 반복, 그리고 그 정적 사이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과 균형의 감각을 담았다. 건반을 두드려 맑고 날카로운 파형의 선율을 만드는 피아노, 그리고 가죽을 울려 가슴 깊은 곳을 타격하는 묵직한 공명의 큰북은 서로 다른 맥박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소리들은 공중에 흩어졌다가 다시 겹쳐지며 시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를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피아노의 앞판을 완전히 제거해 해머가 현을 직접 타격하는 타악기적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노출한 점과, 북을 치는 연주자의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시청각적으로 대단히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동시대적 감수성과 연극적 상상력을 결합한 ‘거문고극’
거문고 연주자 윤희연 <I.Am>


윤희연은 거문고를 단순한 반주 악기나 소품으로 축소하지 않고, 극 안에서 ‘감정의 주체이자 서사의 중심’으로 활용하는 연주자다. 전통적인 거문고 병창이나 산조 형식을 탈피한 그는 동시대적 감수성과 연극적 상상력을 결합한 ‘거문고극’ 장르라는 참신한 실험을 이끌어오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I.Am>은 그가 시도하는 거문고극의 대표작으로, 수림문화재단의 희곡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싹을 틔운 작품이다. 전문 작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윤희연 본인이 직접 전체 서사를 구성하고 대본을 집필했다. 작품은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이 아기를 할머니에 맡기며 겪는 고민, 그리고 손주를 지극한 사랑으로 키우는 할머니의 마음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실제로 예술가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윤희연 자신의 삶과 고민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다. 

<I.Am>은 기획부터 극작, 연주, 연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홀로 무대를 책임지는 진정한 의미의 ‘1인 창작 음악극’이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프롤로그부터 4장 플롯까지만 보여줬지만, 거문고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실험 정신이 매우 참신했다. 다만 아쉬움도 명확히 남았다. 전문 작가가 아닌 연주자 본인이 직접 대본을 쓰다 보니 전체적인 서사의 힘이 약하고 구조적 완성도가 다소 느슨하게 느껴졌다. 아울러 전문 배우가 아니기에 대사 전달력이나 감정 연기 측면에서 미숙함이 보였고, 극적 서사에 치중하다 보니 도리어 거문고 본연의 음악적 깊이가 약화되는 딜레마를 노출했다. 


전통예술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  

모든 쇼케이스 무대가 끝난 후, 전문가 심사 점수 80%와 관객 평가단 점수 20%를 정밀하게 합산한 최종 결과가 5월 27일 발표됐다. 오는 8월 60분 분량의 정식 본공연으로 확장되어 관객을 만날 최종 선정작은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다들 그러고 삽니다>와 안무가 김성의 <자람의 기술 RE:GROW>였다. 대중적인 문법과 위트 있는 가사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창작아티스트 오늘과, 전작의 한계를 극복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서사를 밀도 높은 무용으로 시각화한 안무가 김성은 전문가와 관객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선정의 희비는 갈렸으나, 이번 쇼케이스 무대에 오른 다섯 팀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이들은 안전한 전통의 답습 대신 청년 예술가 특유의 과감한 자기표현과 창의적인 시도를 보여줬다. 전통예술의 미래를 짊어질 이들이 열정을 가지고 다시 도전할 무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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