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달에 가다니, 그것부터 엉뚱한 이야기 아닌가요. 저는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에게 엉뚱한 농담을 던지고 싶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희자들의 몸도 엉뚱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광대생각의 재담극 <열매달>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최여림의 반론이다. 그러니까 질문은 이랬다.
“새가 날아서 달에 간다는 설정까지는 그래도 동의가 되었어요. 물론,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하지만 바다에 사는 오징어가 달에 흘러간다는 설정에는 쉽게 동의 되지 않더라고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인터뷰 내내 팽팽하게 이어졌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게 아닐까 싶다.
전통기반 어린이극 전문단체, 광대생각
<열매달>은 ‘우리나라 전통연희를 소재로 하여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창작 연희극과 놀이 중심의 예술교육으로 관객들이 우리 전통연희를 더욱 쉽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작품이다. 단체를 이끄는 이는 연희자이자 연출가인 선영욱이다. 동시에 그는 연희집단 The 광대의 부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연희집단 The 광대는 풍물, 탈춤, 남사당놀이 등 한국의 민속 예술을 전공한 연희자로 구성된 공연예술단체다. 연희집단 The 광대의 대표는 안대천인데, 흥미롭게도 그는 광대생각의 단원이기도 하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민현기, 김용훈 등의 단원들이 두 단체에서 모두 활동하고 있다. 두 단체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같은 이들로 되어 있어, 첫 질문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연희집단 The 광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은 ‘광대생각’으로 제작하는지 물었다. 그러니까, 연희집단 The 광대의 단원들이 어린이를 위한 연희극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이름인지. 아마도 그게 패착이었던 듯싶다. 인터뷰에는 <열매달>의 작가 김정운과 연출가 최여림, 그리고 광대생각의 기획자 조수빈이 참여했는데, 세 사람은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광대생각은 연희집단 The 광대 단원 중 특히 어린이 공연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 단원이 별도로 다른 예술가들과 모여 시작한 단체입니다”
연희자들의 생태계에 무지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연희자가 다양한 단체에 적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온 무지함이랄까. (나름대로 항변의 말을 보태자면, 공연계 데이터가 집적된 플레이디비(PLAY DB) 사이트에는 광대생각이 연희집단 The 광대에서 파생된 단체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무튼, 광대생각은 2014년 창단하여 어린이 환경극 <북극곰 이야기>,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 도마뱀>과 동물 탈놀이 <만보와 별별머리>, <연희 판타지아>, 그리고 예술교육 <연희 놀이터>, <덜미야! 넌 누구니?>, <안녕? 물방울!>을 제작한 올해 12년 차의 중견 단체다. 창단 작품인 <만보와 별별머리>로 2014년 전통연희 활성화 사업 창작연희 작품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그리고 <문둥왕자>로 2016년 전통연희 활성화 사업 창작연희 작품공모 제작지원작품 부문 인기상을 받은, 전통연희 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단체다.
새와 오징어, 달과 열매, 이 기묘한 조합
이들이 이번에 제작해 선보이는 <열매달>은 서울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 사업으로 지난해 10월 쇼케이스로 먼저 선보였던 작품이다. 주인공은 ‘하양새’와 ‘오징어’. 이 드넓은 지구에서도 마주치기 어려울 듯한 두 동물(?)이 달에서 조우한다. 하양새는 친구들과 높이 날기 시합을 벌이다가 달에 이르게 되고, 바다에 사는 오징어는 이리저리 물결에 휩쓸리다가 달까지 가게 된다. 사실,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바로 이 오징어의 달세계 여행부터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거기서 우리의 대화는 다시 한번 어긋났던 것이다. 제일 앞에 인용했던 질문 아닌 질문과 반론 아닌 반론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새와 오징어가 달에 갈 수 있는 상상력을 발동할 수 있다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양새는 황무지 (같은) 달에서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하양새는 그 새싹이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앗으로 온 달이 푸르게 숲으로 되는 꿈을 꾼다.
달에 새싹이라니! 열매라니!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논리적일 이유는 없다. 시적 허용이 가능한 게 예술이니, 달에 꽃이 필 수도 토끼가 살 수도 있다. 하물며 새와 오징어라고 못 살 리가. 어느 순간, “엉뚱한 상상”이라는 그들의 말에 스스로 동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아무튼, 이어지는 이야기에선 오징어가 등장한다. 흘러 흘러 달에 다다른 오징어는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새싹을 먹으려 든다. 이때부터 하양새와 오징어의 반세기가 넘는 전쟁이 시작된다.
쇼케이스 무대를 관람한 연극평론가 황승경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무대 언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가족극은 말로 하지 않고 환상으로 보여줄 때 큰 감동이 형성된다. <열매달>은 새싹을 매개로 어린이 관객을 주체적 자기성찰로 이끌어내는 상상 유희의 공간을 마련한다. 푸른 새싹들로 뒤덮인 열매달을 보여주는 것이 <열매달>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그는 말이 아닌 환상으로 보여줄 때 감동이 형성된다고 하였지만, 이 작품은 재담극이다. 하양새와 오징어의 대화 사이사이 연희자들이 끼어들어 둘의 대화를 설명하기도 하고, 추임새와 같은 반응을 더해주기도 한다. 다만, 청각적 언어가 아닌 시각적인 환상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가 큰 무대 세트를 세우거나 무대장치를 이용할 수 없는 쇼케이스의 형식적 제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게 궁금했다. 본 공연에서는 시각적인 요소가 더 추가될 예정인지. 실제로 최초의 기획서에는 <열매달>을 오브제극화 할 것이라는 계획이 나와 있다. 그래서 물었고, 이에 대해 답변 또한 예상을 빗나갔다.
“오브제가 뭘까요? 처음에 오브제극이라고 했던 건, 상상력을 확장하고 같이 만들어간 상상력을 무대랑 객석이랑 같이 공유해보겠다는 의도에서 사용했던 것 같아요. 뭔가 사물들로 가득 찬 오브제극이 아니라. 일례로 상모를 돌린다면, 상모도 하나의 오브제가 될 수 있겠죠.” 연출의 말을 작가가 받는다. “예를 들어서 장구가 새가 될 수 있고, 징이 오징어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실물의 것을 가져와서 그대로 세트화시키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악기든 뭐든 상징적으로 쓰겠다는 의미에서 오브제극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별을 보며 <열매달>을 보아도 좋겠다
언급했듯, 광대생각은 지난해부터 서울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로 활동 중이다. 가족 친화형 공연을 제작하려는 공연장 측의 의지와 어린이 공연 전문단체로서 광대생각의 방향성이 맞아 이루어진 사업이다. 그러나, 사업 2년 차를 맞은 올해 위탁 운영사가 바뀌었다. 다행히 운영사가 바뀐 후 열린 운영자문위원회에서는 어린이 대상 콘텐츠의 중요성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예상, 어린이 대상의 콘텐츠 개발에 힘을 실었다.
그러는 한편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위치한 지리적 특수성을 살린 콘텐츠의 개발도 힘주어 이야기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창덕궁 앞이라는 위치적 매력과 한옥이라는 공간적 매력을 살려 대중에게 소구할 만한 일종의 브랜드가 되길 희망하는 한편,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 인근 직장인과 노년층을 위한 콘텐츠 역시 개발하기를 희망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작가 김정운이 반기는 눈치다. “저희가 거리에서 이동형 공연도 제작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 문화재에서 공연하고 싶은데, 그게 어렵거든요. 문화재를 이용하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받기가 어려워요. 문화재청이나 다른 기관에 허락을 맡아야 하고, 허가를 받는대도 제한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상주단체 사업을 하면서 공연장 주변의 다른 곳에서도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완전 베스트일 것 같아요.”
여기에 최여림 연출이 말을 보탠다. “<열매달>도 운동장에서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학교 운동장도 좋고, 공터도 좋고요. 해가 질 무렵, 이렇게 딱 노을이 들 때 시작해서 밤하늘이 까맣게 내려왔을 때 끝나는 거죠. 달이 떠 있으면 더 좋겠고요. 그런 시공간 안에서 마을 사람들은 마실 나왔다가 편하게 둘러앉아서, 어린아이들은 막 깔깔거리고 뛰어다니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요.”
그런 동네 풍경을 떠올리니 하양새와 오징어가 달에 사는 이야기가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 운동장이, 공터가 아니면 어떤가. 서울돈화문국악당 앞마당에 별을 보며 <열매달>을 보아도 좋겠다. 그런 풍경도 좋겠다.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 <열매달>
- 일시 : 2025. 9.26 ~ 27.
- 장소 : 서울돈화문국악당
- 출연진 : 광대생각
- 문의 : 02.3210.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