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별신굿의 풍경
풍요를 기원하는 봄이나 가을, 동해안 일대 해안 마을에서 별신굿이 연행된다. 과거에 비해 굿을 하는 마을의 수는 적지만, 별신굿이 펼쳐지는 기간 동안은 일상을 전복하는 의례이자 축제를 감각하게 된다. 예술이 꽃피는 순간이다. 이러한 동해안별신굿이 2025년 6월 6일부터 7일까지 이틀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되었다. 보존회원들이 로비를 지나 극장에 들어서며 지신을 밟고 만복을 축원하며 시작한 공연이다.
동해안별신굿 국가무형유산 지정 40주년을 기념해 공동기획된 <남산은 본이요>는 동해안별신굿의 전체 굿거리를 얼러 연행하는 것이 기획의 주안점이었다. 다만 별신굿 현장에서 용왕굿이 중요한 데 반해, 이번 연행에서는 심청굿, 장수굿, 손님굿, 원래굿이 두드러졌다. 제단을 등지고 관객을 바라보는 무녀, ㄷ자로 앉아 무녀를 둘러싼 5명의 악사만 노출된 무대 위 공연이니, 각 굿거리를 연행하는 무녀의 특기에 흠뻑 빠져보기 좋은 데다 무녀를 바라지하는 화랭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닷가 마을에서의 굿판을 상상하며 이들의 연행을 주목했다.
별신굿은 장단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장단만 볼 수도 없다. 5장으로 구성되는 청보장단은 타악 가락과 무가가 순서대로 교차하는 형식이고, 각 무가의 서사를 따라서 전체 5장이 순차적으로 변주된다. 무녀가 관객(단골)과 소통하고 축원하는 5장은 굿판의 흥취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장이다. 각 굿거리가 끝나고 무녀가 제단으로 가서 신에게 술을 올릴 때, 악사들은 사자(사제)채를 낸다. 무녀의 서사 연행이 끝난 뒤 신이 좌정하는 엄숙한 때의 정적을 역동적인 타악으로 넘어서니 그야말로 동해안별신굿만의 세계가 감각되는 순간이다. 이 굿을 보고 있자니 푸너리·청보장단·제마수장단·사자채를 축으로 한 별신굿의 연행 구조가 쉽게 이해된다. 매력적인 굿판이다.
이 굿판의 분위기는 유쾌하다. 신의 내력을 풀어내고 풍요를 기원하는 경건함은 축제의 풍경 그 자체로 포착된다. 그래서 신과 함께 하는 동안 피어나는 연행자들의 대화가 귓가에 더 스민다.
“우리는 밥보다는 박수 먹고 산다 아이가.”
남도민요와 판소리 눈 대목을 특유의 섬(목청)으로 구사한 무녀 김동언이 성주굿을 하던 중 심심찮게 뱉는 재담이다. 동해안별신굿, 그러니까 마을 굿의 매력은 연행자와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있다. 이른바 유쾌한 밀땅이 굿판의 기제다. 화랭이는 장구를 두드리며 화답한다.
“그렇죠. 밥보다 박수가 좋죠.”
굿이라는 전통공연예술의 모국어에 빗대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단골을 맞는 예인집단의 포용력은 현재 별신굿의 양식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굿판의 할머니들은 연구를 위해 방문한 인류학자 사이먼 밀즈에게 “양키, 노래 한번 시켜봐라”고 하며 굿판에 팝송을 불러냈고(사이먼 밀즈는 영국 사람이다), 판소리 단가, 경기소리, 트로트, 강남스타일에 말 춤의 등장은 이 굿판에서 예삿일이다. 언젠가 연행 주체의 정체성이 견고해지며 별신굿이라는 튼튼한 뼈대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세대를 거쳐 다양한 유행을 수용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별신굿의 전승 주체는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동해안 굿 세계를 넘어 새로운 예술세계로 지평을 넓히기 시작했다.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2-1호로 동해안별신굿이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김석출・김정희・김용택 등 동해안 김씨 집안의 화랭이들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주목받았다. 《Shamanistic Ceremonies of the Eastern Seaboard》(JVC, 1993), 《Nanjang : A New Horizon》(King Records, 1996), <무악 동해오구굿>(삼성뮤직, 1995), <동해안 별신굿과 오귀굿>(국립국악원·KBS, 1999) 등 음반은 국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주요 교재가 될 만큼 자산으로서 가치가 높고, 드러머 사이먼 바커(Simon Barker)가 김석출을 찾아나서는 다큐멘터리 <땡큐 마스터 킴>은 여전히 대중에게 회자된다.
세습무, 학습무로 이어지는 동해안별신굿이라는 기틀
예인집단이자 무속 집단인 동해안별신굿 전승 주체를 소개할 때는 세습무라는 설명이 붙는다. 동해안별신굿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동해안 일대에서 무업을 하던 이들이 일가를 이루고 대를 물려 뻗어가던 그 예술적 감각과 기·예능이 김씨 집안에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제, 그 집안에서 이어온 감각은 국악을 전공한 학습무에게 전승되고 있다. 그러니 굿판이 현재하는 한, 동해안별신굿이라는 감각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질문해 볼 일이다.
“처음에는 그저 어른들의 패턴을 배우고 그대로 따라 하면서 기초를 닦아야 해요. 그런 후에 업그레이드해야 하죠. 이 과정은 꽃에 비유할 수도 있어요. 꽃은 꽃봉오리가 활짝 피기까지 많은 단계를 거쳐야만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아!’ 하고 감탄하지요. 그게 내가 걸었던 길이고, 모든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에요.”1)
故김정희의 회고를 읽어보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모을 만하다. 꾸준한 노력 끝에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비단 예술뿐이겠는가. 세습무의 장점은 지난한 수련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견디게 해주는 환경에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 어머니, 고모, 삼촌이 성장해온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만큼 직접적인 이해도 없을 것이다.
1세대로부터 3세대로 이어지는 김씨 집안의 예인들이 그러했듯, 4세대에서 5세대로 향하고 있는 전승 주체의 구성원들도 뿌리를 두고 줄기를 뻗어나가는 역사를 쓰며 약진하고 있다. 그 비결은 여전히 가족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함께하며, 삶의 은유가 굿판에서 어우러지며, 엄격할 만큼 뿌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학습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해안별신굿보존회의 진중함에 있다. 사설과 곡조를 따로 외우기를 반복해 자연스러운 무가를 구사하고, 장구를 치기에 앞서 굿판에서 형성되는 긴장을 익히는 그들이다. 앞으로의 40년, 그렇게 또 하나의 전통의 결이 새겨질 것이다.
전승 공동체의 삶의 대화가 오가는 별신굿판. 예술가들이 날것의 세상과 만나는 장이다. 부드럽게 무녀의 연행을 배려하는 것이 화랭이의 미덕이라면, 무녀의 미덕은 단골과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니 이 굿판은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별신굿이라는 틀거지의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다.
‘변방에서 묵묵히 지켜온’ 전통예술의 월경 <남산은 본이요>
그들을 소개하는 글을 보자니 ‘변방에서 묵묵히 지켜온’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시대가 그러했듯 무속인은 천대받았다. 그래서 그럴까, 별신굿판에서 우는 소리를 이르는 시설체, 공수를 내리듯 호령하는 토구름과 같은 창법은 예인집단의 삶을 닮았다. 하지만 변방의 예인집단은 이미 우리 전통 문화권 전역에서 그 기·예능을 탐닉하도록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 집단 특유의 풍경 속에서 우리 전통예술의 여러 갈래가 연행된다. 각 시기와 지역성으로 대표될 수 있는 국악의 면모가 동해안별신굿 연행 집단에 의해 독창적으로 해석되는 다채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이 굿판의 두 번째 즐거움이다. 동해안별신굿의 위상은 그 예술성과 공동체의 문화를 읽어가는 입장에서 입댈 게 없다.
이제 울산을 기점으로 웃대 남대를 가르는 예인집단의 활동 권역을 구분할 이유는 사라졌지만, 예인집단의 집요함은 비단 굿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승 주체 구성원들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무대 위에서 발현된 예술은 그것을 보는 관객에게 충분한 생기를 품게 한다. 이것이 오늘 <남산은 본이요>를 통해 굿판의 현장성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한다는 기획의도가 함의하는 바다. 예기치 못하는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스치듯이, 부딪히듯이 무대 위의 굿판도 긴장의 순간이다.
동해안별신굿은 그렇게 동해안 일대의 문화가 한 집안에서 예술 연행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줄기는 다시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은 채 다음 세대의 예술 속으로 뻗어간다. 그 길목에서 만난 (사)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보존회 40주년 기념 공연. 참 반가웠다.
정원기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한국음악학 연구자이다. 제주도 무속음악을 연구하고 있으며 내친김에 일본, 오키나와, 대만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있다.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차세대 예술가, 2024 일본국제교류기금(JF) 선정 아티스트. 현재 웹진 공진단 블랙의 블랙토커로 활동하며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