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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5 여름
피플┃그녀의 이름에 담다
프로듀서 김이끼
2025.06.17


전통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인터뷰 후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잠시 망설였다. 전통예술 분야의 변화를 한동안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김이끼 프로듀서를 만나기로 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푸릇함과 생명력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녀와 한 시간가량 나눈 차분했던 대화의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정리한다.

 


 

 새로운 세대의 시선에서

- 독립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을 졸업하고 ‘정가악회’에서 프로듀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2년 정도 근무했을 때 정가악회가 활동을 멈추기로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 기획자가 되었네요. 독립적으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처음엔 국제교류 일을 맡아서 단체의 해외 초청 공연 때 투어 매니저 역할을 했습니다. 정가악회 내 팀인 악단광칠도 해외 활동을 많이 했는데, 해외에 나가보니 늘 보던 아티스트들을 계속 만나게 되더라고요. 몇몇 예술가들만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걸 보면서, 해외시장은 열려 있고 협력 가능성도 많은데 왜 특정 예술가들만 초청받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프로듀서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고 그렇다면 나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 같이 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직 젊은 창작자들이 지속적으로 초청받는 건 쉽지 않고, 국내 활동도 병행해야 하니 해외 진출에만 집중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공법으로 안 되면 측면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축제나 극장보다는 플랫폼처럼 형성된 현장을 찾았습니다. 즉흥음악이나 전자음악 창작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외 플랫폼을 연결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작년이었네요. 그 결과로 올해 6월에 ‘엠비언트 판소리’를 하는 노은실 소리꾼과 네덜란드에 갈 예정입니다. 노은실 창작자와는 작년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축제나 극장뿐 아니라 새로운 현장과 플랫폼을 찾는 데 관심이 많고 열려 있는, 실험음악 현장이 다양한 네덜란드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공연만 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협업이 가능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를 만나 유기적인 협업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재미있을 것도 같았고요.”

 

- 국악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기획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나요?

“가야금을 오래 연주했어요. 국악예고를 졸업했고, 당연히 실기 중심의 대학에 진학했죠. 대학에서 예술경영, 영상, 영화 전공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내가 너무 한 우물만 파고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나이만큼의 시간을 가야금으로만 채운 것 같은데, 그 외의 것들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휴학했어요. 제 삶을 다른 것들로도 채우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중 세종학당재단의 지원으로 키르기스스탄에 6개월간 인턴십을 가게 되었고, 세상에는 가야금 말고도 할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가야금 없이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다른 가능성을 본 셈이죠. 

   가야금을 잠시 내려놓으니 여러 중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로 돌아와서 부전공으로 예술경영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로듀서로서의 새로운 길을 시작하게 되었죠. 전통예술 현장의 생태계를 새로운 세대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자보다는 시장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게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전통예술 기획자? 맞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 독립 기획자의 삶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가악회에서 일할 때는 월급을 받았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지금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단체가 그런 구조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네요. 제가 지금은 회사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저의 경제적 안정과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 욕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예술적 충돌을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넓어지게 되는데, 김이끼 프로듀서는 어떤가요? 

“누군가 저에게, 전통예술 기획자 아니세요? 라고 물으면, 맞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다고 봐요. 생각해보면 저는 장르를 계속 넘나들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2023년부터는 아이돌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서 라인 PD로도 작업하고 있고, 영상 매체의 비주얼 작업을 경험하면서 미적 감각도 쌓고 있고, 또 뮤직비디오 제작 PD, 프로덕션 매니저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인적 인프라도 생겨 자연스럽게 협업 이야기도 해요. 마찬가지로 그분들에게는 전통의 이미지가 신선하게 다가와선지 새로운 작업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시는 것 같고요.”

 

- 국제교류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는 비행기를 내 돈 주고 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나고 신기했던 것 같아요. 독일 투어가 시작이었죠. 베를린과 드레스덴 투어였는데, 베를린의 우파 파브릭(ufaFabrik)과 협력해 정가악회 공연을 했던 게 저의 첫 국제협업이었습니다. 한국의 극장이나 재단처럼 소속 단체가 모든 걸 다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 기획 인력과 현지 프로듀서가 함께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그런 방식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해외와 연결하며 독립 기획자로서의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나의 명확한 정체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전통예술이 저의 정체성이었고, 전통을 단순히 외국인들이 신기하게만 보는 게 아니라 깊이 있는 음악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획자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재단 같은 기관에 들어가서 일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제 색깔을 찾으려면 독립적으로 일하는 게 맞겠다고 느꼈고, 아직 젊으니까 더 도전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여겨요.”

 

- 어떤 예술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나요? 나만의 작업 방식이 있을까요?

“저는 황진아 거문고 연주자, 노은실 판소리 소리꾼, 그리고 제 또래인 강태훈 거문고 연주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요. 해외에 아티스트를 소개할 때 전통예술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피아노나 첼로를 연주하듯이 이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건 거문고, 가야금, 대금일 뿐이고, 이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방향은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기획자로서 ‘전통’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는 음악이 아니라, 그 전통에서 가져온 재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예술가들과 작업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판소리와 엠비언트가 섞여서 중요한 게 아니라, 엠비언트로 어떤 매력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판소리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주목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가악회에서 인연을 맺은 황진아 연주자가 단독 공연을 준비한다는 걸 알게 되어 이야기하다가 함께 작업을 시작했어요. 서로 소통이 잘되고, 일하는 방식도 잘 맞아서 이후 미국 투어도 같이 가고 단편영화 작업도 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켰어요. 노은실 아티스트의 경우는 먼저 직접 연락을 주셨네요. 다른 프로듀서분들은 어떻게 일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공연뿐 아니라 전시, 영상, 아트 필름 등 다양한 방식으로의 확장을 고민합니다. 공연 투어에서도 공연만이 아니라 워크숍 등을 제안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런 식으로 황진아 연주자님의 앨범을 기초로 3년 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다른 아티스트분들도 저와 작업하면서 자신의 곡을 가지고 다양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연락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기획자로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년에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에서 일했습니다. 축제 관계자들과 아티스트들, 관객들까지 열정적으로 일하고 호응하고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자연스레 이런 사람들과 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미나 유럽은 소수의 에이전시가 유통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남미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도 했고, 멕시코에서 일한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연결이 이어지면서 남미 시장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젠가는 남미 전문 에이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남미 축제만 다 다녀도 5년은 필요할 것 같아요.”

 

 

 

 

“메뉴판을 만들어 놨습니다”

 

-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전통예술 분야에는 많은 기획자분들이 계시지만, 뭔가 연대하는 구심점은 없는 것 같아요. 끈끈하지 않더라도 느슨한 연대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전통예술 분야에 자리 잡은 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전에 공연은 꾸준히 있었잖아요. 연출과 PD의 역할이 다르듯, 기획 PD와 제작 PD가 다르고, 조연출과 기획 보조의 역할도 다른데, 아직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가 단순히 기획서 작성과 교부 신청, 홍보, 티켓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전문성이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공연 제작 과정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 있는데, 아직 모두에게 명확히 약속된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자원이 부족해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원래 그런 구조가 아니라 상황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면 좋겠어요. 일의 양과 강도에 맞게 사례비가 책정되는 구조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선배 프로듀서들이 너무 열심히 다 하셔서, 다음 세대인 저는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열심히 하지만, 상대방이 상황과 조건을 알고 일하는 것과 모르고 일하는 건 다릅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활동해야 다음 세대도 생길 수 있겠죠. 제가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제작 과정에서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자도 저도 모두 노동자이니까요. 우리가 건강하게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함께 작업하는 예술가분들에게도 늘 이야기하고 있지만요.

   저는 독립하면서부터 메뉴판을 만들어 놨습니다. (웃음) 행정 지원만 원하는 경우, 홍보, 마케팅, 티켓 판매, 제작 전반 등 업무별로 비용을 적어놨어요. 제작 과정에서 어떤 논의를 하고 프로듀서의 크리에이티브한 역할까지 메뉴판으로 만들어놓은 셈이죠. 프로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함께 일하는 예술가분들도 알아야 하니까요.”

 

가야금의 세계에만 오래 머물렀던 자신의 삶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과감히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김이끼 PD. 그녀는 자기 일과 함께 일하는 예술가에 대한 열정이 넘치면서도 독립 기획자의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당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은 시작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미 다음 세대 기획자들이 좀 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희망적이었다. 그녀는 태초에 바다에서 자라 지상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이끼처럼, 하나의 장르와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남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양분으로도 생명을 이어가는 이끼처럼, 예술 생태계에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야심차면서도 아름다운 꿈이 그녀의 이름에 담겨 있었다.

 


박지선
박지선은 독립 기획자로, 프로듀서 그룹도트에서 콜렉티브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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