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술가를 발굴해 신작 제작을 지원하는 ‘젊은국악 단장’의 지원 방식이 달라졌다. 60분 길이의 공연을 지원하기 전 20분 이내의 ‘쇼케이스’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선정 규모를 기존 3명(팀)에서 4명(팀)으로 늘려 더 많은 인원에게 1차 제작지원을 제공하고, 그중 쇼케이스를 통과한 2팀을 추가 지원해 본 공연의 우수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신청을 통해 관람 가능한 올해 쇼케이스는 6월 28일 오후 5시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린다. 창작 컨설팅과 창작워크숍으로 곱게 ‘단장’한 4명(팀)은 소리꾼 강나현, 거문고 창작자 김민영, 안무가 김성, 현악트리오 TRIGGER(트리거)다.
“작은 숨소리를 조명하고 싶은, 소리꾼 강나현입니다”
강나현
‘씩씩’ 숨을 몰아쉰다. 증기기관차처럼 호흡이 가빠지는 와중에도 ‘씩씩’하게 내달린다. 강나현이 고른 제목 ‘SickSick’엔 이런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다.
“쇼케이스 20분이 저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어요. 아픈 시절의 제 모습을 담았죠. 두더지 같은 모습과, 3등만 하는 만년 동상의 심경, 마지막엔 이 길이 어떻게 흘러갈지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마음을요.”
그래서 세 곡이다. 청년 예술가로 살아남는 과정의 흔들림을 전자음악과 결합해 내보인다. 이른바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내는 감정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강요형 창작 판소리 퍼포먼스’다. 첫 곡엔 두더지처럼 굴속에 숨으려는 자기 습성을, 두 번째 곡엔 나가는 족족 3등만 하는 결과론적 동상 헌터의 처지를 녹였다. 마지막 곡은 미래에 대한 기대다.
한 소절을 소개해달란 부탁에 그는 세 번째 곡을 꼽았다. “내 길은 말이지 올라가다가도 다시 굴에 숨더라도 크고 작은 꽃들과 돌멩이들, 산들바람과 금방 지나갈 폭풍, 배고픈 고양이와 길 잃은 강아지, 여린 사람들이 머문 길이면 좋겠다 …”
정동극장 판소리 뮤지컬 <적벽>의 ‘정욱’ 역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강나현은 실연자인 동시에 전통 판소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온 창작자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와 함께한 <체공녀 강주룡>, <해녀탐정 홍설록> 등에선 공동작창 겸 출연자였고, 인디국악그룹 ‘신수동 3평’에선 작곡, 작사, 보컬을 넘나드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왔다. 특히, 2024년의 <아홉수 가위>는 창작자로서의 분기점이 됐다.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각색, 작창, 실연을 모두 해낸 1시간짜리 소리극이다. 긴 글을 쓰면서, 갈피 잡는 법을 배웠다.
“국악계에 이렇게 재밌는 소리꾼이 있었어?” 곧 선보이는 쇼케이스를 비롯해, 앞으로 만들어 갈 정성 어린 공연들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이다. 다양한 표현 방식을 찾아나가는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숨들의 이야기에 힘을 보태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얌전한 미치광이랄까요, 연주자 김민영입니다”
지난여름 한 공연에서, 김민영은 무당방울을 소위 ‘미친듯이’ 흔들었다.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다원예술에 도전한 <여섯 개의 불가능>에서다. 거문고 연주자인 그는 전자음악과 정가에 처음 도전해 정체성을 넓혔다. 약에 대한 신봉을 표현하려 택했던 오브제와 퍼포먼스로 ‘얌전한 미치광이’, ‘방울 흔드는 기독교인’ 칭호를 얻었다.
새로운 시도는 이번
에도 이어진다. 거문고에 전자음악을 접목하고 보컬도 직접 맡았다. 반면 음악을 홀로 책임졌던 지난 공연과 달리 동료들이 합류한다. 편곡과 사운드디자인, 믹싱은 건반을 중심으로 전자음악을 해온 피슈(Pishu, 전 피아노 슈게이저)가 맡았다. 연주는 타악 조봉국, 드럼 최요셉이 함께한다. 공연 주제는 ‘내면의 양면성’이다. 단점도 있지만 유연한 가능성을 지닌 플라스틱처럼, 우리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성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 큰 가능성을 마주하자는 일종의 권유다.
첫 곡 ‘타령(가제)’은 전통 타령을 바탕으로 국악인 자아와 현대음악에 이끌리는 자아 사이의 갈등을 풀어낸다. ‘더 비자르(The Bizarre)’는 간혹 마주하는 낯선 자신을 향한 호기심, ‘플라스틱’은 강렬한 목소리로 외치는 일종의 자기 극복 선언을 녹였다. 마지막 ‘멜팅 포인트(Melting Point)’는 가능성을 마주하는 기쁨을 표현한다.
김민영은
쇼케이스를 확장해 스페인을 찾는다. 10월 22일엔 바르셀로나 문학 비엔날레 ‘코스모폴리스(Kosmopolis)’ 개막공연, 11월 9일엔 카나리아제도 산타크루스데테네리페에서 열리는 예술축제 ‘케록센(KEROXEN)’ 공연을 앞두고 있다.
“시작은 느리지만 더 단단하게 도달하는, 안무가 김성입니다”
김성 <자람의 기술>
무용가와 소리꾼의 듀엣이라니 조합이 독특하다. 기반은 한국무용이지만 창작과를 나온 김성이 전통의 강자 김나니와 밀도 높은 협업을 택했다. 현대적 연극을 주로 해온 드라마터그 전강희는 글을, 타악연주자 조한민은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실험적이 되는 이유가 뭘까요?(웃음) 우선, 저는 ‘식물’이 돼보기로 했습니다. 생명의 성장에 대한 첫 아이디어가 식물의 입장에서 받는 정성을 글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된 거죠. 전강희 선생님 영향이 컸어요. 그걸 안무로 표현하는 저로서는 그 안에 어떤 감정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몸 자체가 감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소리꾼 김나니는 한복을 벗는다. “일상과 가까운 진솔한 모습이 나왔으면 해서 판소리 말고 ‘노래’ 혹은 ‘말’을 해주시길 바랐어요. 의상도 마치 집에 있는 김나니랄까요. 처음엔 식물의 주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이 작품에서 그의 역할은 어떤 의미인지 유추해보시면 재밌을 것 같아요.”
곡을 쓰기로 한 조한민은 종이 찢는 소리를 녹음해 보내왔다. “장단이나 연주에 능한 분인데 그뿐 아니라 엠비언트 사운드라든지, 일상의 소리를 직접 녹음하면서 평소보다 실험적인 접근을 하고 계세요.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제가 설득당했죠(웃음). 움직임과 대사에 또 다른 영향을 주는 요소랄까요. 춤, 대사, 음악 3요소의 ‘핑퐁’을 잘 살려보고 싶습니다.”
김성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케이아츠(K-Arts)무용단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얼마 전 정기공연에선 <허,들,셋,넷,> 안무, 2024년 정기공연에선 <간격Ⅱ> 조안무를 맡았다. 시흥시립전통예술단 <미래의 기억>에도 출연자 겸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학교 활동이나 조안무 경력은 길지만, 단독 안무로는 ‘단장’ 쇼케이스를 통해 알을 깨고 나오는 셈이다.
“전통을 해킹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국악팀 트리거입니다.”
TRIGGER <小ciety>
‘TRIGGER’는 현악 연주자 이송희(가야금), 최현정(거문고), 박필구(아쟁)가 2021년 결성한 팀이다. 서로 영감을 주는 점화의 계기(trigger)로서 그 작용을 관객에게 돌려주자는 뜻이다. 활동 햇수로는 4년이 안 됐는데, 경력은 수두룩하다. 작년에만 대구문화예술회관 국악 인큐베이팅 사업 ‘점프업(JUMP UP)’ 대상, ‘21C한국음악프로젝트’ 금상을 연달아 수상했고, 세 번째 콘서트 <음류: 흐름의 기원’을 열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신진국악실험무대에선 <카오스모제>를 공연했다.
이번 쇼케이스에선 신작 <小ciety(소사이어티)>를 공개한다. ‘사회’를 뜻하는 ‘society’ 앞글자를 음이 같은 ‘작을 소(小)’로 바꿨다. 불통으로 인한 갈등을 사회 문제로 보고 해법을 ‘시나위’에서 찾는다.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는 음악 형식으로부터 ‘소통과 교감’을 꺼내든 것이다.
첫 곡은 소통과 화합의 ‘의미’에, 두 번째 곡은 시나위 ‘형식’ 자체에 방점을 뒀다. 우선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에는 창부타령 가사를 이용한 언어유희를 담았다. “쉼표(,) 하나만 찍으면 ‘놀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 못 노는데’로 180도 바뀌더라고요. 시작을 연주자들의 ‘말’로 열어서 형식만 대화일 뿐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 뒤 음악으로 이어가려 합니다.”
두 번째 신곡은 ‘네겐트로피(Negentropy)’다. “물리학에서 ‘엔트로피’의 반대말이라고 하더라고요. 시나위의 음악적 특성을 잘 반영해서 해체된 기존 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팀 대표로 인터뷰를 가진 아쟁연주가 박필구는, 음악 자체에서 시야를 넓혀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전반적 분위기나 오브제, 대사를 사용해 ‘퍼포머’로서 한걸음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전언이다.
2025 젊은국악 단장
윤대성
심리학과에서 뇌를 들여다보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무용신(Scene) 한가운데 착지했다. 그래서 외부자로, 때론 내부자의 시선으로 공연예술을 바라본다. 한국춤평론가회 최연소 회원이자 월간 <댄스포럼> 편집장이다. 저서로는 서울시 발간 『한량무』, 국립무용단 발행 『국립무용단 60년사』(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