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일, 창덕궁 돈화문을 길 하나 사이에 둔 주유소 자리에 소박한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바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시작이다. 북촌부터 창덕궁을 지나, 돈화문로를 연결하는 국악의 길, ‘전통음악의 중심지를 복원한다’는 포부와 함께 문을 연 돈화문국악당이 이제 곧 열 돌을 맞는다. 본 지면에서는 서울돈화문국악당 지난 10년의 발자취와 의미를 돌아보고, 이후 10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살펴본다.
자연음향과 장소성, 국악예술의 거점
2016년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당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자연음향’이었다. ‘맨 뒤 객석에서도 판소리가 쩡쩡’, ‘국악 본연의 소리 담는다’, ‘자연음향 그대로… 서울돈화문국악당 개관’, ‘마이크 필요 없는 자연음향 국악당’ 등 개관을 알리는 언론 주목도는 대부분 ‘자연음향’에 있었다.
우리 소리를 서양식 공연장에서 연주할 때 드러나는 한계는 일찍부터 아쉬움으로 제기되어 왔던 터, 서양 음악과 본질적으로 다른 국악 본연의 전달 방식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자연음향’을 표방하며 2007년 개관한 서울남산국악당 객석 규모로 인해 자연음향만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개관은 또 다른 기대를 품게 했다.
자연음 그대로의 국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것은, 국악을 한층 깊게 접하고 싶은 관객들이 늘어났다는 시대적 방증일 것이다. 앰프와 스피커를 통한 증폭을 사용하지 않고, 잔향시간을 국악기에 최적화시키려는 등 세심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서울돈화문국악당이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에 이어, 이듬해 2월 국립국악원 우면당 역시 ‘자연음향 국악 공연장’으로 재개관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또 하나의 화제는 ‘장소성’이었다. 창덕궁 돈화문부터 종로3가역에 이르는 돈화문로는 ‘국악로’라는 이름으로 지정될 만큼 국악의 역사가 깊이 서린 곳이다. 1911년 세워진 첫 민간음악교육기관 ‘조선정악전습소’, 1955년 세워진 우리나라 첫 국악 공공교육기관 ‘국악사양성소’가 이 지역에 있었다. 이런 연유로 자연스레 국악인들이 모여들어 터를 잡은 곳에, 국악 전문 공연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창덕궁과 북촌, 인사동과 남산까지 엮어냄으로써, 잠재력 있는 문화콘텐츠로서 시민과 외국인 방문객까지 유입할 수 있다는 도시적 비전에도 맞닿아 있다.
돈화문국악당은 전문성 있고 수준 높은 국악 공연 문화에 대한 목마름과 우리 문화유산을 한 단계 높은 문화콘텐츠로 확장 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국악 전통 예술의 또 다른 거점이자 상징으로 개관했다고 볼 수 있다.
10년의 발자취
개관 초기 서울돈화문국악당의 프로그램을 보면 이러한 시대적 기대에 부응하고자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다. 정통 국악의 맛을 선보이는 <국악의 맛>, 우리 국악의 현주소와 미래를 그려보는 <미래의 명곡>, 국악에 힐링과 휴식을 접목한 <낮잠 콘서트>, 시민 국악동호회에 무대의 기회를 제공한 <시민 국악 주간> 등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자연음향의 장점을 살려 정통성과 예술성, 깊이를 두루 갖춘 순도 높은 공연부터, 창작국악 공연, 시민의 일상에 스며드는 프로그램까지 다채로웠다. 극장 자체 제작도 있었다. 음악극 <적로>는 대금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이야기를 그려 큰 호응을 얻으며, 공연장의 자체 제작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소성’을 살린 프로그램도 뺄 수 없다. <운당여관 음악회>와 <돈화문 나들이>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운당여관’은 인간문화재 23호 박귀희 명창이 운영한 한옥 여관으로,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동시에 1958년부터 1989년까지 국수전, 국기전 등 주요 기전(棋戰)의 결승 대국이 열린 한국바둑의 산실이기도 했다. <운당여관 음악회>는 운당여관이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모여드는 사랑방이자 창작공간이었다는 점에 주목, 공개모집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장르의 예술가를 선발해 무대에 세웠다. <돈화문 나들이>는 배우와 소리꾼들이 돈화문로를 따라 직접 관람객을 인솔하며 이곳에 얽힌 국악사와 인물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들려주는 체험형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온라인을 통해 공연을 생중계하는 등 새로운 방안을 찾는 시도를 지속하면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대표적인 기획 프로그램이 정착되기도 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일소당 음악회>는 장소성을 살린 대표적 공연이다. 과거 창덕궁 근처에 위치하던 ‘일소당’의 이름을 따서 옛 예인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했다. 특히 공간의 기억을 통해 그 안에 켜켜이 새겨진 삶과 예술을 소환하는 방식은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장소성을 의미 있게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조대전>도 서울돈화문국악당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산조의 전승과 동시대적 계승을 함께 탐구하며, 다양한 유파와 명연주자들을 한자리에 망라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전통음악 기반의 실내악 창작과 현대적 감각의 융합을 시도한 축제형 기획공연 <실내악 축제>, 서울과 경기 지역의 전통 소리를 중심으로 한 <서울소리 잡가> 등도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국악 인플루언서들의 <국악 플러그인>, <돈화문 전통생활문화축제> 등의 관객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 속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또 다른 전환점
자연음향을 갖춘 국악 전문 공연장이자, 풍부한 지역적 콘텐츠를 갖춘 공연장. 유서 깊은 전통을 만날 수 있는 곳이자, 시민들이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낮은 문턱의 공연장. 주변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 인프라를 활용해 무형의 문화콘텐츠, 나아가 상품으로서도 소구할 수 있는 공연장.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이렇듯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업고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시도와 성취를 거듭해 왔다.
지난 11월 11일 서울돈화문국악당 운영자문위원회에서도 서울돈화문국악당 10년의 의미와 향후 방향에 대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장재효 자문위원은 “지난 10년간 다양한 공연을 통해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노력했고, 그 공연들이 하나의 모범으로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해 온 점을 잘 알고 있다. 대표 프로그램인 <산조대전>은 그런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서울돈화문국악당과도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변화의 속도에 너무 신경 쓰기보다는 <산조대전>과 같은 무게감 있는 프로그램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넓혀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더했다. 강효주 자문위원은 돈화문국악당의 장소성에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강남에 국립국악원이 있다면, 강북 지역에도 국악 전용 공연장이 생겼다는 의미가 있었다. 부근에 국악로가 있고, 고궁과 인사동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연장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며 장소적 특성을 더 확장 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 김봉영 자문위원은 국악당 프로그램이 국악의 본질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지금껏 전통 공연과 일반시민을 위한 체험 모두 균형 있게 잘 해왔지만, 우리 전통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원래 공연, 체험, 교육 사이에 경계가 없다. 무대와 객석 사이 선 긋는 공연이 아니라, 체험과 교육, 참여가 곧 공연으로 이어지는 국악의 본질을 살렸으면 좋겠다. 조금 작지만, 국악당 야외마당의 장점을 살리면 가능하다”는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김영길 자문위원 역시 “해외에서 우리 음악이 주목받는 데에는 수백 년 내려온 전통성과 함께 즉흥적이고 샤머니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주목받는 즉흥 음악이 이미 우리 국악 안에는 흐르고 있다. 국악의 즉흥성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공연을 통해, 국악당의 무게감을 살릴 수 있다”며 국악의 즉흥적인 특징을 살린 기획의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원나경 자문위원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을 기획한다면 어설프게 전통과 퓨전이 섞인 것보다는 전통성 있는 것이 더 소구력 있다”고 강조한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개관부터 다양한 공연들을 함께 해 왔던 예술가들은 돈화문국악당이 왕이 행차하던 ‘돈화문’의 무게만큼이나 우리 전통의 중심을 지켜주길 바란다. 다만 우리 전통이 박물관 유리벽 안에 든 유물이 아니라, 사람과 소리가 허물없이 어울리고, 예술가와 향유자가 서로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그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본래 우리 국악의 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불과 백 년 안쪽만 떠올려도, 우리 국악은 작은 방, 마루, 마당에서 어깨를 마주하며 부르고 듣던 것이었고, 그러다 어린아이들이 두드려도 보고, 따라 불러도 보는, 말 그대로의 일상이었다. 동네 어귀에서 듣던 소리를 지금은 공연장이라는 구분된 공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소리 본연의 모습과 멋까지 후대에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전해진다.
품격과 친숙으로 한 발 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지난 10년을 굵직한 대표 기획 프로그램들과 키워드로 톺아보았다. 그러나 돈화문국악당의 시간을 채운 것은 글이나 숫자로는 채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저, 방문객 몇 명이라는 수치로 미처 담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몇십 명의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국악이 이들의 삶에 언제 어떻게 꽃피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며, 국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외국인이 우연히 지나다 멈춰 서서 들은 국악 선율이 남길 잔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국악을 접한 시민들 또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선보이며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던 예술인들, 이들이 서로에게 보낸 땀과 박수 소리가 서울돈화문국악당의 10년을 지탱해 온 힘은 아닐까 싶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두 열쇳말은 ‘품격’과 ‘친숙’이다.” 개관 당시 김정승 초대 예술감독의 일성이다. 두 열쇳말은 여전히 돈화문국악당이 추구해야 할 역할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통문화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 누구에게나 예술의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친숙한 공연장,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앞으로도 견지해야 할 소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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