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과 위트 사이
2010년대 이후, 전통음악계는 ‘현악기’로 구성된 팀들이 강세를 보이는 추세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으로 구성된 트리거의 구성은 현악기로 이루어진 팀인 Hey string, 줄헤르츠, 힐금 등의 계보를 잇는다. 현악기 구성의 팀들은 주로 ‘스펙터클(Spectacle)’로 향하는 선율을 주된 모티프로 삼는다. 강렬하게 현을 뜯거나 긁는 질감을 들려주고, 3·3·2 혹은 3·2 박과 같은 불규칙 박을 통해 상승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은 음악적 특징은 ‘현악기’가 관객 또는 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게 하는 요소임과 동시에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진부하게 느껴지는 ‘클리셰(cliché)’이기도 하다. 트리거가 들려주는 음악 또한 이 ‘클리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물론, ‘스펙터클’ 형성에 의존하는 현상은 현악기 중심의 팀뿐 아니라 최근 전통음악계 창작 전반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탐구하고 또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트리거의 흥미로운 시도를 발견했다.
트리거의 음악은 시종일관 스펙터클을 드러내지 않았다. 종이상자를 쓰고 연주하는 비주얼 콘셉트는 키치(Kitsch)한 느낌을 보여주고,
진지하고 심오한 음악만으로 ‘예술성’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잦은 스펙터클의 형성, 불규칙한 박으로 나아가는 긴장과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 등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단 한 곡의 연주로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경우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요소겠지만, 긴 호흡의 공연 흐름을 만들 때는 관객이 쉴 수 있는 타이밍 혹은 좀 더 쉽게 창작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요소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중간에 삽입된 위트 넘치는 곡들은 관객이 공연을 감상할 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전략으로 작용했다.
‘시나위-하기’의 계승과 과제
트리거는 ‘시나위’라는 전통 즉흥 합주 형식에 뿌리를 둔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기악팀으로서 가장 쉽고 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창작 방식일 것이다. ‘시나위’는 서구에서 작곡 개념이 들어오기 이전, 연주자가 음악을 직접 창작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부터 이어온 공동 창작 방식이자 연주 형식이기 때문이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전통 창작 방식을 계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일지 모른다.
이들은 프로그램북에 시나위 연주 방식을 통해 “연주자들의 직관과 교감,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음악적 대화”를 펼치겠다고 썼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곡에서 다량의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곡에 다양한 음악 모티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곡 흐름 설계가 필수적이다. 자칫하면 한 곡에 담긴 언어가 많아지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흐려지거나, 역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태’나 ‘감정’을 표현할 때, 더욱 섬세한 전략이 요구된다. 악기로 표현하는 상태나 감정은 관객에게 전달되기 더욱 어렵고, 여기에 다량의 모티프까지 더해지면 모두 비슷한 분위기로 느껴질 위험이 크다. 창작자에게 가사가 없는 기악곡이 감정과 상태를 표현하는 게 더 쉽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이는 반대로 관객에게 의도에 맞게 전달하기 위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들의 연주에서도 다량의 모티프로 인해 음악이 쌓이지 못하고 흩어지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긴장과 충돌, 반복과 해소’를 한 곡에 담으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음악 구조의 탄탄함이 부족한 상태에서 곡의 분위기가 바뀌거나, 빈번하게 바뀌는 모티프로 인해 음악적 맥락 파악이 어려웠다. 곡의 창작과 연주의 뿌리를 ‘시나위’에 둔다면, ‘시나위’가 가진 하나의 선법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같은 장단 안에서 표현하는 다양한 선율과 시김새 등 ‘시나위-하기’의 장점을 제대로 계승할 필요가 있다. 모티프는 명확해야 하며, 그 변화는 치밀하고 신중해야 한다. 앞으로 계속 연주하게 될 레퍼토리를 미완의 상태에 두고 꾸준히 편곡해 나가면 좋겠다. 무대에 설 때마다 곡은 변화할 수 있다. 충분한 여지를 두고 음악의 모티프, 표현하고자 하는 상태와 감정을 더욱 탄탄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정가’의 음색은 매력적이나, 고정된 노래 부르기 방식은 자칫 지루함을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가창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노래 부르고, 곡 안에서 노래 위치를 변경해 보는 등 다양한 편곡의 시도가 음악 변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小Ciety에서 음악으로 소통하려면
무대는 곧 작은 사회를 형성한다. 트리거는 서울남산국악당의 ‘젊은국악 단장’ 사업에 참여하며 ‘무대’라는 사회에 나서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극장 관계자, 스태프, 멘토, 관객은 모두 무대를 통해 만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공연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무대 언어를 습득하고, 자신들의 음악 언어로 말을 건넸으며, 관객과 소통하고자 했을 것이다. 과연 소통은 잘 이루어졌을까? 모두 알다시피, 현재 우리 사회는 불통(不通)에 가깝다. 이 불통이 소통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고, 어떤 난세의 영웅이 나서도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손쉽게 이루어지는 혐오와 악마화, 둘로 쪼개져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속에서 트리거는, 우리는, 음악으로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무대라는 사회이든,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이든 소통할 방법은 하나로 귀결된다. 지난한 관계로 뛰어드는 것. 때로는 어긋나고, 뒤엉키고, 미워하고, 멀어지더라도, 끝까지 관계 안에서 머물고자 하는 것. 트리거 멤버들, 무대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이들, 음악 동료들, 관객들과 끊임없이 관계 맺으며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기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가진 다양한 맥락을 살피고, 경청하며, 나의 말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것.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 이러한 마음의 다짐이 ‘소통’의 첫걸음이자, 조건일 것이다.
어쩌면, 위에 언급한 소통의 조건은 시대를 역행하는 제안일지 모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휴식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가는 사회 풍토 속에서 관계 맺고, 소통하자는 제안이 무겁고, 또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와 음악을 나누고자 한다면, ‘관계맺기’는 불가피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홀로 ‘음악하기’를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관계 맺는 것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트리거에게 이번 무대는 관객과 관계 맺는 연습을 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음악가의 역할은 무대에서 연주하고, 박수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건넨 언어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관객이 그 언어와 충분히 공명하였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비평 자체가 이들의 음악과 관계 맺은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보내는 답신일 것이다.

젊은국악 단장, 관계 맺기를 배우는 기회
젊은국악 단장과 같은 사업의 최대 수혜는 결코 지원금이나 수상 경력이 아니다. 무대 위와 밖 사람들과 관계 맺는 기회를 얻는 것이 이 사업의 진정한 가치이다.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지, 그들이 들이는 품이 얼마나 감사한지 배우는 시간. 이 시간을 누릴 기회를 얻었다는 건 트리거에게 행운이었을 것이다.
특히 트리거의 무대는 소품과 조명 등 섬세한 디자인이 음악을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들이 기획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구현할 수 있도록 여러 도움의 손길이 닿았음을 무대를 보며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연에 참여하고, 이틀 간의 공연을 준비하며 고군분투했을 트리거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불통과 갈등에서 시작하지만, 화해와 조화로 나아가는 음악처럼, 이들의 음악 여정 또한 그러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 백소망 | |
| 음악그룹 아마씨에서 노래를 짓고, 부릅니다. 이따금 전통공연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공연을 만드는 데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
| 백소망 |
| 음악그룹 아마씨에서 노래를 짓고, 부릅니다. 이따금 전통공연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공연을 만드는 데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