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英才)’라는 말은 오랫동안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기능해 왔다. 사전적 정의는 간명하지만, 이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훨씬 복합적이다. 전통음악 교육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통음악은 기술의 습득과 감각의 체화가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야만 가능성이 드러나는 분야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영재’라는 호칭은 이미 완성된 능력을 보유한 존재처럼 들리곤 한다. 어린 연주자에게 이 호칭은 하나의 찬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달하지 않은 상태를 미리 규정해버리는 무게이기도 하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잠재성에 완결된 이미지를 덧씌우는 셈이다.
전통음악에서 영재라는 개념이 갖는 또 다른 난점은 ‘재능’이 개인의 선천적 능력보다 그가 놓인 환경을 더 깊게 반영한다는 점이다. 배움에 접근할 수 있는 여건, 안정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공간, 무대에 오를 기회, 좋은 악기를 갖출 수 있는 조건은 모두 재능의 발현을 좌우한다. 예술가의 성장은 특정한 시간을 견디고, 그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형성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결국 전통음악에서 영재는 ‘발견되는 존재’라기보다 ‘길러지는 존재’에 가깝다. 장단의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무대의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배움의 시간에서 무엇을 축적하는지의 차이가 영재성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크라운해태가 후원하는 <영재한음회>는 상당히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영재한음회>는 2015년부터 시작하여 2025년 현재 285회를 맞이하는 공연으로, ‘모여라! 한음 영재들’과 ‘한음 꿈나무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실력으로 수상한 영재들을 위한 무대이다. 매주 열리는 공연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무대를 구성하고 관객과 소통하며 영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차근차근 마련한다. <영재한음회>는 공연 결과 자체의 평가보다, 과정에서 감각이 구성되는 방식을 핵심에 둔다. 무대는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재능이 스스로 형태를 찾아가는 장으로 작동한다.
<영재한음회>가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성장의 장소를 연습실에서 공연장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연습실은 안전하고 밀폐된 공간으로, 실수를 통해 기술을 쌓아가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반면 <영재한음회>는 배움의 구조를 공연장이라는 열린 공간에 배치했다. 무대의 구조와 동선을 이해하고, 동료 연주자들과 호흡을 조율하며, 관객 앞에서 긴장과 흐름을 다루는 경험은 모두 음악적 능력의 외연을 확장한다. 이는 영재성의 또 다른 중요한 층위다. 재능을 구성하는 요소가 단순한 기술적 성숙이 아니라, 무대 전체를 이해하는 감각에까지 걸쳐 있다는 점을 <영재한음회>는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공연을 다시 바라보면, 학생들의 연주만큼이나 이 프로그램의 구조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핵심 질문은 “누가 영재인가”가 아니라 “영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에 가깝다. 그리고 그 답은 무대 곳곳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무대의 첫 장면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무대 뒤편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순서를 확인하고, 사회 대본을 손에 든 학생이 마이크를 테스트하며 긴장을 가다듬는 모습은 공연장에서 흔히 간과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재한음회>에서는 학생은 공연을 함께 구성하는 주체로 무대에 서기 때문에 준비 시간조차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 된다. 사회 진행, 무대 동선 정리, 다른 출연자를 배려하는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공연의 구조에 개입하는 실질적 훈련을 거친다. 개인 연습과 곡 해석에 집중되는 전통적 교육 구조에서 벗어나, ‘무대 전체의 작동 방식’을 체득한다.
연주가 시작되면 또 다른 층위의 축적이 드러난다. 장단을 붙잡는 힘, 소리를 밀어 올리는 호흡, 시김새를 만들어내는 감각은 같은 또래라 해도 각자 배운 시간의 질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정악의 호흡, 민요의 언어적 리듬, 산조의 즉흥적 흐름 조절 같은 장르적 특성 위에서, 아이들은 각자 쌓아온 방식으로 음악을 완성한다. 축적은 단일한 성장의 선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들이 겹쳐 만들어내는 표면처럼 느껴졌다.
공연을 보며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은 장면은 무대의 주체성이 조용히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무대에 처음 올라 긴장해 줄을 제대로 서지 못하는 어린 연주자에게, 조금 더 경험 있는 선배 연주자가 옆에서 팔을 가볍게 잡아 방향을 안내하는 모습이었다. 짧은 제스처에는 단순한 친절 이상의 감각이 스며 있었다. 연주자들이 하나의 무대를 공유하는 존재로서 서로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공간의 공동 소유를 인식하는 태도였다. 음악적 기술과 별개로 무대를 ‘함께 만드는 존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비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용, 정가 등 반주가 필요한 장르에서는 락음국악단의 연주자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어린 연주자들이 프로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는 경험은 연주적 지원을 받는 차원을 넘는다. 반주자의 장단 감각, 즉흥적 반응, 소리를 시간 위에 배치하는 방식은 어린 연주자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흘러가는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흐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배워온 ‘정답’이 실제 무대에서 어떤 형태로 변형되는지 몸으로 이해한다. 이는 향후 음악을 조직하는 감각에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공한다.
무대의 반복은 또 다른 방식의 학습할 수 있게 한다. 매주 공연이 열리지만, 반복 속에서 오히려 무대는 점점 더 정밀하게 구성된다. 스태프들은 동선을 다시 점검하고, 마이크의 높이와 위치를 학생과 함께 확인하며, 사회 대본을 살펴 작은 흐름을 조정한다. 학생들은 그런 과정을 매회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공연의 구조를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게 된다. 전통음악 교육에서 이런 경험은 귀하다. 개인 연습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공연이라는 전체 시스템을 학습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매회 공연은 화려함이나 과시적 효과를 지양하며,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었다. 학생들의 연주는 대체로 절제된 움직임 안에서 이루어졌고, 표현의 크기를 불필요하게 키우기보다 자신이 이해한 구조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태도는 때로는 담백하게 느껴졌지만, 그 속에는 각 연주자가 스스로 익힌 감각을 조심스럽게 배치하는 내적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무대의 표면을 장식하는 요소보다 구조를 유지하는 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무대였고, 이는 어린 연주자들이 음악적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인 조율과 집중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는, <영재한음회>가 지향하는 ‘과정 중심의 무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반복될수록, 연주자들의 감각은 조금씩 넓어진다. 한 무대가 끝나고 사회를 맡았던 학생이 조용히 대본을 정리하며 다음 순서를 확인하고, 출연자에게 다가가 차례를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모습은 그 확장의 과정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것은 음악적 기술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음악을 둘러싼 전체 구조를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는 능력’을 형성한다. 영재 교육에서 가장 쉽게 간과되지만, 가장 오래 남는 축적의 형태다.
<영재한음회>는 어린 국악인의 가능성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어떤 감각으로 전통음악을 이해하고, 어떻게 무대를 구성하며,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 결을 쌓아갈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작품의 난도나 기술적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무대가 미래의 연주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시간과 구조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능력의 조기 판단보다는 능력의 생성 조건을 만들고, 개별 재능을 선별하기보다 재능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그 구조는 아이들의 몸과 감각 안에 천천히 축적된다. 영재라는 단어에 기대어 불필요한 완성도를 요구하지도 않고, 지나친 예단을 통해 성장의 방향을 고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상태를 그대로 무대에 올리고,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순환 구조를 마련한다.
전통음악의 미래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제도 개편이나 장기적 정책을 떠올린다. 그러나 예술의 지속성은 결국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감각, 수행의 축적, 그리고 주체성을 스스로 확보한 연주자들에 의해 유지된다. <영재한음회>는 바로 이 점을 가장 기초적인 층위에서 실천한다. 재능을 선언하는 방식이 아니라, 재능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영재한음회>가 국악 생태계에 남긴 시간의 깊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