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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5 가을
CHOICE
초이스┃소리의 고유함으로 우러나는 축제를 응원하며
서울남산국악당 커넥트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
박종현


가을, 서울 그리고 소리

가을, 서울의 한가운데 서울남산국악당과 이를 품은 너른 남산골한옥마을의 이곳저곳에서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2025년 10월 8~9일)이 개최된다. 같은 자리에서 지난 두 번의 축제가 11월에 열리었던 것과는 달리 10월 초순, 한가위 연휴의 후반부로 당겨 이루어지는 이번 행사는 아마도 추석을 지나는 귀성객들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겨냥하려는 듯하다.

판소리에 기반한 다양한 공연과 더불어, 전통음악문화와 관련된 여러 체험 프로그램들이 한껏 높아진 하늘 아래 펼쳐질 전망이다. 감염병 사태 이후 공연계 및 축제판의 수많은 시도들이 고군분투하다 스러지고 마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이러한 중규모의 축제가 1, 2회를 넘어 ‘3’이라는 숫자를 달고 살아남은 것은 그 자체로 참 멋지고 다행인 일이다.

장르성의 희구와 저변의 확대라는 두 토끼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은 그 이름에서 보듯 판소리라는 한반도의 대표 전통 장르가 가진 넓고 깊은 현재를 축제의 장으로 꺼내려는 목적, 그리고 기존 한반도의 소리 연행자 및 애호가가 이루어온 장을 넘어서서 더 넓은 소리하기와 듣기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함께 포괄하고 있다. 장르 안과 그 깊이를 염두에 둔 전자의 목적과, 장르 외연 및 그 향유자의 지평을 넓히려는 후자의 목적은 각기 거대하며 때로 상충할 염려조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축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은 이 두 크고 어려운 과제를 함께 펼쳐보려는 야심찬 도전을 담고 있다.

먼저 ‘판소리 축제’라는 차원에 초점을 두어 보자. 흔히 추상적, 당위적 구호에 담겨 만들어지는 ‘국악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라, 판소리라는 한 장르가 수백 년을 거치며 만들어 내어온 고유한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축제로서 이 축제는 독연(獨演) 형태의 전통적 소리판을 여럿 펼쳐내는 한편, 소리에 기반하여 파생된 여러 장르 즉 병창이나 창극에 연한 여러 연행들을 프로그램에 포함하고 있다.

이틀 오후 내내 여러 세대·배경을 지닌 여성 소리꾼들이 차례로 다양한 전통 소리 바탕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한가위 판소리 한마당>(관훈동 민씨 가옥 및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그리고 두 번째 날 오후에 펼쳐질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이시웅의 강산제 심청가 완창(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등이 축제 프로그램의 중심에 자리한 가운데, 어린 고등학생 유망주들의 가야금병창 독연과 가온병창단, 중앙가야금병창단 및 세계가야금병창단의 병창 합주 등이 장르성의 자장 안에서 관객에 선보여지며, 판소리 합창과 같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도들도 이루어진다. 한편 야외 특설무대에서는 개막 공연의 <수궁, 길을 묻다>와 양일에 걸쳐 선보여질 <공중제비전> 등 전통 소리 바탕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소리극 작품들이 올려질 예정이다.

한편 한옥마을 속 전문 공연장 콤플렉스인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선보일 프로그램들도 판소리라는 장르가 품은 고유한 매력과 서사를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크라운해태홀에서 양일간 열리는 두 개의 연행은 ‘완창’과 ‘독공’이라는, 판소리의 역사와 소리꾼의 여정에 관한 키워드를 각각 품고 있다. 위에 언급되기도 한 소리꾼 이시영의 공연은 완창이라는, 장르사 속에서 비교적 최근에 확립된 연행 형태이기는 하지만 모든 소리꾼들의 경건한 도전이 향하는 어떤 ‘봉우리’로서 관객에게 건네어진다.

‘독공’은 소리꾼이 겪는 그러한 도전의 지난함, 나아가 성음을 빚고 매만지기 위한 수련의 숙명을 보여주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청년 소리꾼을 위한 ‘100일 독공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젊은 소리꾼 차혜지가,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성취를 춘향가 한판을 통해 드러낸다. 한편 국악당 내 체험실에서 이틀에 걸쳐 열릴 <고음반 감상회>는 조선 말기의 두 명창 박기홍, 박만순 명창의 소리를 한국고음반연구회 노재명 대표의 해설과 함께 전하며 현 판소리를 피워낸 옛 역사를 환기한다. 이러한 서사들 모두 단순한 ‘판소리 공연 모음’이 아니라 소리와 소리꾼의 ‘이야기’를 통해 장르의 본질을 되새기고 또 공유하려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즐거운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월드’, 그리고 ‘페스티벌’이라는 말 속에 숨은 저변 확대의 기획은 첫날 저녁의 메인 콘서트 그리고 폐막 공연에 특히 깃들어있는 듯하다. 주최 측인 세계판소리협회가 진행해온 내국인 및 외국인 대상 판소리 교육 프로젝트의 수강생들이 10월 8일의 메인 콘서트 에 올라 각각 <춘향가>와 <수궁가>의 눈대목을 부른다. 또 폐막 연행에서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소리를 가르쳐온 소리꾼 민혜성의 연출로 국적과 전문성, 장애 유무 등의 경계를 넘어서 꾸려진 합창이 이루어진다. ‘세계’ 혹은 ‘월드’라는 말이 붙은 거의 모든 전통문화 관련 프로젝트가 한류 혹은 국제문화교류 지원금 정책에 편승하려는 얕은 수의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 가운데, 실제 내국인 시민 및 외국 국적의 애호가를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이 ‘프로’들의 연출 속에서 축제의 가운데에 서는 일을 보는 일은 반갑다.
 
애호가이자 비평가로서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다양한 방문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천우각 야외무대가 철저히 판소리라는 장르를 염두에 둔 연행들로 가득 채워진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같은 자리에서 열린 제2회 축제를 관람객으로 찾은 바 있다. 위에 언급한 ‘두 토끼’를 잡기 위한 다채로운 노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 널찍한 야외무대에서 판소리 및 판소리 축제의 본질로부터 먼 레퍼토리들이 ‘전통’과의 ‘하이브리드’를 겉으로만 표방한 (소리꾼 한둘이 낀) 서양음악적 앙상블의 안이한 연행을 통해 펼쳐지는 모습에 씁쓸해했었다. 소리 기반의 극적 연행예술과 병창, 합창 등이 교차되는 이번의 야외무대 라인업이, 당위나 허상으로서의 대중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실재적인 잠재적 장르 향유자를 향하고 발굴해내는 데 있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라 여기기에, 훨씬 축제의 이름에 걸맞은 내용으로서 관객에게 다가설 것이라 생각한다.




판소리의 진수를 해마다 피우는 가을 축제가 되기를
수많은 잠재적 귀명창들이 거니는 서울 한복판에서, 야외 공연과 실내 공연이 모두 근처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축제의 장소는 귀하다. 특히 판소리를 주제로 한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이러한 장소성이 굉장히 그 장르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요하다. 판소리사 자체가 거리와 시장과 잔치라는 말 그대로 야외의 판에서 시작되어, 20세기를 거치며 무대·실내예술로 그 외연을 확장해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축제가 그 첫걸음부터 남산골한옥마을 및 서울남산국악당과 함께한 것은 참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전통 바탕과 창작 사설, 기본 판소리와 병창, 중창, 소리극 등을 실내 및 실외 무대에서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걸음까지를 버텨온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이 앞으로도 옛 서울의 자리, 깊은 가을의 풍경 속에서 판소리 장르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펼쳐낼 수 있기를, 소리와 소리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응원해본다.​

 

서울남산국악당 커넥트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
  • ​일시 : 2025. 10. 8~9(수·목) 19:30
  • 장소 :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 문의 :02.6358.5500 / http://www.sgtt.kr

 

 

박종현
전통음악 평론가, 인류학 연구자, 대중음악 창작·연행자이다.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평론부문을 수상하였다. 창작자로서는 독집 음반(<생각의 여름>)이 “EBS SPACE공감”의 <2000>에 선정된 바 있다.
박종현
전통음악 평론가, 인류학 연구자, 대중음악 창작·연행자이다.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제11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평론부문을 수상하였다. 창작자로서는 독집 음반(<생각의 여름>)이 “EBS SPACE공감”의 <2000>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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