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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山:門 2025 가을
REVIEW
리뷰┃이매방의 무향(舞香)을 되새기는 제자의 춤
김은희 <운초 김은희의 춤>
심정민


찰나의 감흥이 평생의 기억으로 새겨지는 춤이 있다. 대부분의 감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거나 퇴색되어 간다. 하지만 어떤 감흥은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져 끊임없이 잔향을 남기곤 한다. 바로 이매방의 춤이 그런 경우다. 이매방의 춤은 소우주적인 존재감을 뿜어냄으로써 보는 이에게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감흥을 선사했다. 특히 승무에서 생명력을 가진 마냥 휘날리는 장삼의 모양새는 범접하기 힘든 춤의 내공을 확인시키곤 했다.

이매방 타계 10주기를 맞이하여 이러한 스승의 춤을 40년 가까이 이어온 제자의 추모 공연이 있었는데, 7월 27일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진 <운초 김은희의 춤>이 그것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이매방 춤의 미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우봉 이매방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제자의 공연
1927년 전라남도 목포 출신인 이매방은 어려서부터 권번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대조, 박영구, 이청조 선생께 입춤,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을 배웠으며 중국의 경극 배우 매란방에게 깊은 영감을 받아 이매방이라는 예명을 지었다. 열다섯 살에 ‘명인명창 순회공연’에서 데뷔한 이래로 전국을 누비면서 공연 활동을 전개하였다. 무용연구소를 열어 승무, 살풀이춤, 검무, 한량무, 장검무, 태평무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매방의 춤 경력은 1987년 승무 예능보유자와 1990년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으면서 정점을 찍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보존해야 할 살아있는 문화재란 의미를 지닌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이다. 보유자 지정 이후 128명의 이수자가 배출된 가운데, 1996년 용인대학교 교수 임용과 2005년 목포 전수관 개원으로 교육적 전승이 더욱 확대되었다. 

2015년 작고 이후에도 전승자들을 중심으로, 춤사위와 함께 정신을 올곧게 이어받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번 <운초 김은희의 춤> 공연에서도 이매방이 생전 강조했던 정중동, 음양, 대삼소삼, 사방춤 등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매방은 생전 “배꼽은 중(中), 배꼽 아래는 정(靜)으로 암놈, 배꼽 위는 동(動)으로 수놈”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정중동은 음양(陰陽)의 원리로도 치환될 수 있다. 스승의 말을 곱씹고 곱씹어 김은희가 깨우친 춤의 원리는 ‘중(中)은 몸의 중심인 단단한 단전으로 어떠한 움직임을 할 것인지 정에게 명령하면, 정(靜)은 몸의 하체로 음(陰)이라는 여자의 성질로 중의 명령을 실행하고, 동(動)은 몸의 상체로 양(陽)이라는 남자의 성질로 정의 명령에 따라 동작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삼소삼(大衫小衫)은 호흡의 기법과 함께 춤의 강약을 나타내는 강도의 표현으로 크고 작음, 거침과 부드러움, 높음과 낮음, 역동성과 조용함 등의 질감을 의미한다. 

특히, “스승 이매방의 사방춤을 재현한다”는 공연의 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이매방은 생전 사방춤을 강조했다. 한성준이 전통춤의 무대화에 이바지했다면 이매방은 “나는 흙 묻은 춤을 춘다”라고 하면서 전통춤의 풍취 그대로를 이어가는 데 힘을 쏟았다. 전통춤이 극장 무대화(化)되면서 정면 지향적으로 변화할 때도, 교방 등에서 사방에 관객을 두고 추는 전통춤의 고유한 특질인 사방춤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관객이 어느 방향에서든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을 돌면서 원으로 회전하는 듯한 춤사위로 실현되었다. 김은희는 사방이라는 자연의 이치로 이루어진 이매방 춤의 특징을 재조명하고 더 나아가 점·선·원으로 순환하는 우리 춤의 원리를 담은 춤사위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

스승의 혼을 잇는 입춤과 살풀이 그리고 승무
40년 가까이 이매방 춤을 추어온 운초 김은희는 전통춤의 원형을 근거로 움직임의 본질과 원리에 대해 고민하고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여 우리 춤을 더욱 올곧게 전승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춤 인생을 망라한 <운초 김은희의 춤>에서는, 사방춤의 원리를 고스란히 내재한 대삼소삼의 춤을 추어내는 동시에 정중동을 점·선·원으로 해석하여 태극 음양의 춤길과 몸선으로 표현하였다. 춤의 입문 단계에서 추는 입춤과 춤의 법도를 두드러진 승무 그리고 감정과 즉흥적 요소가 돋보이는 살풀이춤을 완판으로 선보였으며 이매방의 주옥같은 말을 담은 생전 인터뷰 영상도 군데군데 함께 제시하였다.​



입춤은 춤에 입문하는 춤으로 기본기를 다지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춤에 들어가는 入과 몸을 바로 세운다는 立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허튼춤이라고 불릴 만큼 즉흥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음양의 에너지, 태극의 선형, 대삼소삼의 호흡, 다채로운 발디딤새 등을 갖춘 춤사위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매방 선생이 강조한 사방춤의 특징도 여실하다. 이매방은 생전에 “내 춤은 방안 춤으로 무대화되어서 사선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을 향해 추는 것이지. 사방으로 손님이 있으니까, 모두를 보면서 하지. 옛날 춤 그대로 하지”라고 말한 바 있다. 김은희는 1987년 이매방 문하로 입문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입춤의 기본 원리에다가 사방춤 특징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들꽃처럼 잔잔한 내음을 풍기는 춤을 교방에서 감상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춤으로, 맺고 푸는 동작의 반복을 통해 넋을 위로하고 승화시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흰 수건을 활용한 춤사위가 특징적인데, 본견으로 제작된 흰색 수건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다. 실제로 이매방은 “수건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말한 바 있다. 살풀이춤 자체가 일종의 즉흥무로 자신만의 정과 한, 멋과 쾌를 담아낼 수 있는 춤이다. 여기에,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대삼소삼의 구분이 명확한 호흡을 갖춘 데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강약의 흐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흡과 춤사위가 하나로 몸에 붙어 추어지는 느낌이 짙은 가운데, 꾸밈없이 긴 잔상을 남긴다. 

<운초 김은희의 춤>에서 선보인 세 개의 춤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춤은 승무였다. 이매방류 승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전통춤으로, 호남 권번 계열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전승된 것이다. 이매방이 췄던 전성기의 승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주곤 했다. 춤과 혼연일체 되어 공간에 수를 놓는다는 인상을 받았을 수 있었는데, 특히 힘들이지 않고 팔을 움직여도 장삼의 휘날리고 흩뿌리는 모양새가 마치 생명력을 가진 듯했다. 춤추는 이매방 선생 자체가 소우주적인 존재로서 무대를 지배했다고나 할까. 한국 춤의 정중동, 인간의 존재 의미, 생(生)의 윤회, 음양의 조화 등을 사유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은희가 춘 이매방류 승무는 아무것도 없는 점인 가장 낮고 작게 움츠린 자세(이를테면 무극의 상태)로 시작하여, 들숨과 날숨 같은 호흡으로 음양의 에너지를 생성하여 선이 나오고, 그 선의 끝이 서로 맞닿아 하나의 원을 이루기 반복하면서 순환하는 우주의 원리를 담아낸다. 이러한 점·선·원의 원리로 완성되어 밖으로 밀어내는 에너지로서 양과 안으로 잡아당기는 음이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채롭게 흩뿌리는 장삼 놀음, 섬세하게 이어지는 발디딤새, 강약과 장단을 살린 법고 치기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과 해탈의 과정을 표현한다.​

  

 
김은희는 밀양여자중학교 시절부터 박금술 선생을 사사했다가, 1987년 이매방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1997년 승무와 2002년 살풀이춤 이수자가 되었으며 이후 강습회 등을 통해 우리춤의 원리를 전수하고 있다. 2018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수요춤전>, 2021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춤 인생 60년 공연>, 올해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춤 인생 65년 공연> 등에서 스승의 혼을 담은 승무와 살풀이춤을 완판한 바 있으며 이번 공연 역시 그 연결선상에 있다. 

작년에는 국립무형유산원의 우수이수자로 선정되었으며 국가유산진흥원의 우수이수자 역량사업에 채택되어 살풀이춤의 점선원 원리를 도형으로 나타낸 무보를 작성하여 살풀이춤의 움직임 원리 이해 교수지도안을 제작하기도 했다. 올해 6월에는 춤 인생 65년을 맞이하여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춤 인생의 주요한 근간과 자산으로써 이매방 춤의 혼을 온전히 표현하고자 하는 김은희의 노력은 10주기 추모 공연에서 여실하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춤]과 [댄스포럼]에 고정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무용가들』(2019) 외 다수가 있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현재 [춤]과 [댄스포럼]에 고정지면을 가지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에서 심의·평가·자문 등을 맡아왔다. 저서로는 『무용비평과 감상』(2020)과 『춤을 빛낸 아름다운 남성무용가들』(2019)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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